13일 방송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은 "한강, 시간이 흐르고 맛이 쌓이다" 편으로 꾸며진다.
태백산과 금강산에서 발원한 여러 갈래의 물줄기는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흘러 하나로 이어진다. 서울을 가로질러 서해까지 500여 킬로미터 한강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역사의 공간이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삶의 터전이었다. 60년대 이후, 한강 개발과 함께 풍경도 삶의 모습도 달라졌다. 물길 따라 시간이 흐르고, 맛이 쌓이고 한강이 품은 그 오래된 이야기들을 한국인의 밥상에서 만나본다.
■ 한강이 품은 고향, 밤섬 사람들의 그리움의 맛
서울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한강. 강을 잇는 서른 개가 넘는 다리 중 서강대교 아래 보이는 섬이 하나 있다. 밤을 닮았다 해서 ‘밤섬’이라 불리는 이 섬은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지만 한때 4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살던 섬마을이었다.
배를 만들던 목수들이 처음 정착했다고 알려진 밤섬에는 땅콩 농사를 짓고, 고기를 잡고 살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1968년, 홍수 예방과 여의도 개발을 위해 폭파되면서 섬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에겐 갈 수 없는 고향이 됐다. 밤섬이 사라지고 주민들이 대거 이주한 마포구 와우산 자락. 마을 사람들은 고향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마을 수호신을 모셔놓은 신당인 ‘부군당’을 옮겨왔다. 12살에 이주하기 전까지 밤섬에서 뛰어놀던 박은숙(78세), 박명숙(79세) 자매와 지효경(78세) 씨는 밤섬에서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모래 반 재첩 반’이라고 할 만큼 흔했던 재첩으로 끓인 재첩미역수제비와 모래찜질을 하면 큰 솥을 걸고 마을 사람들이 한솥 끓여 먹던 참게메기매운탕, 집마다 땅콩 농사를 지어 흔했던 땅콩죽까지 밤섬 사람들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추억의 음식들이다.
■ 한강에 기대어 살다 – 뚝섬 토박이들의 추억과 음식
성동구 성수동, ‘뚝섬’ 또는 ‘뚝도’라 불리던 이곳은 고기를 잡고, 나룻배가 모여들던 강변마을. 한강을 곁에 두고 살아온 뚝섬 토박이 신동욱(69세), 이은섭(68세) 씨에게 한강은 평범한 강이 아니란다. 심심하면 고기 잡으러 강으로 향했던 이들은 요즘도 틈만 나면 한강에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단다. 장어, 붕어, 쏘가리까지 없는 게 없다는 한강. 그중에서도 뚝섬 장어가 실하기로 유명했다는데.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운 장어 한 점에 옛 추억이 되살아난다. 저마다 품고 있는 뚝섬유원지와 뚝섬 나루터의 추억.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던 그 시절 뚝도시장도 최고 전성기를 누렸었다. 강남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서 장을 볼 만큼. 남대문, 동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 3대 시장으로 손꼽혔다. 새벽부터 일하는 일꾼들의 허기를 달래던 국말이떡, 맛이 좋아 ‘갈비’라고 불렸던 뚝섬의 채소까지.. 뚝섬 토박이들의 추억이 담긴 옛 음식들을 맛본다.
■ 마포 나루, 새우젓 골목에 고깃집들이 생긴 이유는?
육로가 발달하기 전, 한강은 물자와 사람이 오가던 뱃길이었다. 한강이 시작되는 초입 배알미 마을에서 평생 배 목수로 살아온 손낙기(96세) 장인은 전국에서 모여든 배들로 가득했던 한강의 모습을 기억한다. 수많은 배들이 오가던 한강 곳곳에는 물길 따라 배가 드나들 수 있는 나루터들이 자리를 잡았다. 소금과 새우젓, 고기를 싣고 온 배들로 가득했던 마포 나루도 그중 하나다. 물자가 오고 감에 큰 장이 서고, 물건을 나르는 일꾼들이 모여들며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배가 오고 가던 나루터에 다리가 놓인 건 1970년. 뱃길이 육로로 바뀌는 사이 골목의 풍경도 참 많이 달라졌다.
새우젓 골목마다 숯불갈비, 갈매기살, 껍데기 등의 이름을 내건 돼지고깃집들로 가득해진 것. 60년 넘게 마포에서 돼지고깃집을 운영해 온 문승필(86세) 씨는 마포 나루 주변에 목재소와 철공소들이 자리 잡았고, 일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기 좋은 것이 돼지고기였다고 말한다. 큰 대(大), 바가지 포(匏), ‘대포’라는 이름의 선술집들이 골목마다 자리를 잡았고, 안주로 인기를 끌던 양념돼지갈비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비법의 양념으로 버무려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운 양념돼지갈비가 유명해지면서 돼지갈비 이름에 ‘마포’라는 지명까지 붙었다. 새우젓 골목이 고깃집으로 바뀌고, 수많은 이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던 마포 골목의 추억 맛 이야기를 들어본다.
■ 한강대교, 강남 시대를 열다 – 압구정동 상가 사람들
한강 개발과 함께 뱃길이 오가던 자리마다 다리가 세워지고, 풍경도 삶의 모습도 빠르게 변해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온통 밭과 과수원뿐이었던 압구정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서 풍경도 사람살이도 달라졌다. 아파트와 함께 단지 상가로 처음 문을 연 신사시장은 바나나, 열대과일, 셀러리, 양상추 등 당시엔 귀한 과일과 채소도 쉽게 구할 수 있던 곳이었다. 백화점이 부럽지 않던 시절, 정종귀(86세), 양귀자(82세) 부부의 채소 가게는 밥 먹을 시간이 없을 만큼 밀려드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줄 55년 손때묻은 주판을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노부부에게 이 상가는 기회였고 평생의 터전이 되어주었다. 4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떡볶이집도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압구정동에 학교와 학원들이 많이 생기면서 학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순대와 떡볶이가 이제는 추억의 맛이 되어 사람들을 부른다. 1970, 80년대 빠르게 변해온 압구정동의 모습을 기억하는 신사시장 사람들의 추억을 만난다.
■ 강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 한강의 끝자락을 지키는 어부들
한강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전류리 포구는 서해로 나가는 마지막 길목이자 최북단 어장. 어로 한계선과 그리 멀지 않아 사전에 허가를 받은 배들만이 바다로 나갈 수 있다. 2년 차 어부인 심미섭(56세) 씨는 평생 어부로 살아온 아버지를 이어 한강 어부로 사는 것이 오랜 꿈이었다는데. 아버지의 만류에도 배를 물려받아 전류리 앞바다를 누비고 있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인 전류리는 12시간 간격으로 바뀌는 물때는 물론 거센 조류의 흐름 파악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도 풍부한 어장 덕에 계절마다 민물고기며 바닷고기며 풍부하다고. 봄을 앞둔 요즘은 참숭어가 제철이라는데 겨울에 특히 육질이 살아있어 맛 좋은 참숭어는 회로 썰어 먹으면 그만! 꼬들꼬들하게 반쯤 건조한 숭어에 손으로 뚝뚝 채소를 잘라 넣은 반건조숭어찜과 숭어매운탕까지 예전 같지 않은 바다 환경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곳을 지키며 살아가는 전류리 사람들과 추억의 음식을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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