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12·3 비상계엄'으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포고령'을 놓고 서로의 책임이라고 떠 넘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내란'의 증거로 거론되는 포고령 작성을 김 전 장관이 주도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김 전 장관 측은 윤 대통령이 포고령의 내용을 검토했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
여기에 계엄 선포 후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문건을 놓고도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과 수사기관의 내란죄 수사 과정에서 양측이 서로 책임을 회피함에 따라 '손절' 단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의 진실게임은 오는 23일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윤석열측이 증인으로 요청한 김 전 장관이 직접 증인으로 출석해 포고령 및 비상입법 기구 문건 작성 경위를 밝힐 것이라는 관측이다.
尹 "포고령 작성 김용현이 주도.. 옛날 포고령 잘못 베낀 것"
김용현 "대통령이 검토 후 '통행금지' 삭제도 지시"
윤 대통령은 21일 자신의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해 비상계엄 당시 발표된 포고령 작성은 김 전 장관이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에는 '국회와 정당의 일체의 정치 활동 금지', '미복귀 전공의 처단' 등의 내용과 함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처단한다"는 내용이 담겨 위헌, 위법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이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존재했던 예전 군사정권 시절 계엄 예문을 그대로 필사한 것을 피청구인이 수정한 것"이라며 "(포고령 1호는) 계엄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것으로 집행 의사가 없었고, 상위법 저촉 소지가 있어 실행할 수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 측은 지난 14일 헌법재판소에 낸 답변서에서도 "김 전 장관이 과거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을 당시의 문구를 그대로 베껴왔다"면서 "모든 절차를 평화적으로 신속히 진행하고 국회 해산 결의 시 종료하려고 했던 것인데 문구의 잘못을 (윤 대통령이) 부주의로 간과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반면 김 전 장관측은 당시 작성된 포고령은 윤 대통령이 직접 검토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포고령 작성 과정에서 관련 법전을 찾아봤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이 포고령 초안을 잡은 것은 맞지만 윤 대통령이 검토하고 통행제한 금지 조항을 삭제하라고 지시하는 등 구체적인 지침을 줬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 측 법률대리인인 이하상 변호사도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포고령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전 장관이 직접 초안을 작성했고 전체적인 검토는 당연히 윤 대통령이 했다"며 "(작성 과정에서) 어떠한 착오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정선거와 관련된 세력이 정치활동을 매개로 국회를 장악하는 현상이 발생하자 이들의 정치활동을 금지한다는 취지"라며 포고령의 내용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23일 헌재 4차 변론기일서 진실공방 전망
'비상 입법기구' 문건 놓고도 엇갈려.. 尹 "가물가물" 金 "내가 작성"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포고령 작성 주도권을 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은 불법 행위의 책임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다.
양측의 진실게임은 오는 23일 예정된 윤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김 전 장관 측은 20일 언론 공지를 통해 4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4차 변론기일에는 계엄포고령 등 내란 행위 핵심 증거를 두고 윤 대통령 측과 김 전 장관 측의 공방이 예상된다.
한편, 양측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이 최상목 당시 경제부총리에게 건넸던 '비상입법기구' 창설 문건(쪽지)의 작성을 놓고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해당 문건을 보면 '기획재정부장관'이라는 제목에 3가지 지시 사항이 담겨있다.
먼저,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안에 충분히 확보해 보고하고, 국회 관련 각종 자금을 완전 차단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또,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내용도 확인된다.
즉, 이 문건은 이번 비상계엄이 헌법상의 국민주권, 의회제도, 정당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이 있었다는 핵심 증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장관은 해당 문건은 자신이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단은 20일 "김 전 장관은 국회가 완전 삭감한 행정예산으로 마비된 국정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긴급명령 및 긴급재정입법권' 행사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대통령이 기재부 장관에게 이를 준비하고 검토하라고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도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비상입법기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창설 의도가 무엇인지'를 물었다고 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비상입법기구를 제대로 할 생각은 없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 부장판사가 '비상입법기구가 국회 기능을 대신하는가', '정확히 어떤 성격이냐'고 거듭 물었지만 윤 대통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野 "진실게임 관심 없어.. 법의 처단 받으라"
야당은 윤 대통령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16일 정책조정회의에서 윤 대통령을 겨냥해 "미치광이로 보여서 법원에서 심신미약으로 감형받으려는 것 같다"라며 "내란에 실패한 우두머리답게 깔끔하게 법의 처단을 받으라"고 직격했다.
조국혁신당 윤재관 대변인은 21일 논평에서 "위헌적 조항으로 가득한 포고령의 작성에 대해 비겁한 윤석열과 김용현이 폭탄 돌리기와 같은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누가 포고령을 작성했는지 진실게임은 중요하지 않다. 치졸한 책임 떠넘기기에 탄핵심판과 내란수사가 지연될 이유는 전혀 없다"며 "내란수괴의 대통령직 파면과 구속기소, 법에 의한 단죄에 관용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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