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드먼드 버크를 읽으라"···전태일은 '사랑'이라는 전순옥 관장

[인터뷰] "에드먼드 버크를 읽으라"···전태일은 '사랑'이라는 전순옥 관장

여성경제신문 2025-01-04 12: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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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옥 관장이 전태일 기념관에서 전태일 동상과 함께 찍은 사진 /이상헌 기자
전순옥 관장이 전태일 기념관에서 전태일 동상과 함께 찍은 사진 /이상헌 기자

누구나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실현하는 중요한 가치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웠다. 올해는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 항거한 그의 55주기다. 전 열사의 희생정신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자 역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전순옥 관장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다. 16세의 어린 나이에 오빠의 분신 사망을 확인한 그는 청년 시절부터 50여 년 노동 및 인권 분야에 매진하며 서민과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오고 있다.

영국 유학 시절 보수주의 철학까지 섭렵한 그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만큼이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를 좋아한다며 유발 레빈의 위대한 논쟁(Great Debate)이란 책을 권했다. 국내적인 보수와 진보 진영 간의 대립을 이념·철학과 동떨어진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진단하면서 강성 투쟁으로 얼룩진 국내 노동 현장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갔다.

전 관장은 "사용자가 노조 위원장의 월급을 주는 방식의 부당노동행위 규제(노동조합법 82조)는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 때부터 본격화한 것"이라며 정부 주도의 관변·어용 노조 정책이 강성 민주노총을 탄생시킨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노동조합법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만 규정한 배경엔 노동조합을 정부 입맛대로 움직이는 관변 노조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산업별 노조 책임자를 지정해 1961년 8월 30일 발족시킨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시작이다.

군사 정부가 노동 관계법을 개정해 노조 운영에 대한 행정관청의 개입 권한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전임노조의 활동비까지 기업에 떠넘겼다는 얘기다. 전 관장은 "노동은 특정 직업군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의 본질"이라며 "노동을 '생계 수단'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는 가치'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은 노동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일깨우는 공간, 전태일 기념관을 찾아 취임 3개월째를 맞은 전순옥 관장을 만났다. 그는 전태일 정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랑과 정의 그리고 나눔'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전순옥 관장과의 일문일답. 

전순옥 관장이 사무실에서 전태일 기념관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전순옥 관장이 사무실에서 전태일 기념관 설립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전태일 기념관의 설립 배경과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전태일 기념관 설립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된 과제였습니다. 최종인 이사장님은 '죽기 전에 기념관을 만들어야 태일이를 만나 할 말이 생길 것'이라며 설립을 추진하셨고 이소선 어머니 또한 기념관 설립을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전태일 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서울시가 2019년 기념관 설립을 주도하며 연구와 토론회를 거쳐 청년 전태일이 활동했던 청계천에 기념관이 세워졌습니다."

―앞서 기념관을 둘러보니 여러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던데 교육 및 전시 활동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다양한 교육과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대표적으로 '청바지(청소년 인권을 바로 알고 지키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 수료 강사들이 학교에 직접 파견되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60~70년대 노동 현장의 현실을 담은 소중한 역사적 자료들을 전시하며 방문객들에게 노동의 중요성과 인권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념관은 단순한 역사를 배우는 공간이 아닌 노동의 가치를 체험하고 스스로 인식할 수 있는 시민 친화적 공간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낼 때도 노동자뿐 아니라 소상공인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가장 화두가 되는 여성 노동 인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남녀 모두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임금을 받든 받지 않든, 생계를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대표적인 노동 약자입니다. 출산, 육아, 가사 노동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거나 임신을 이유로 직장에서 퇴사 압박을 받는 사례가 여전합니다. 출산과 육아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처럼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고 유연 근무제 등 정책적 지원이 강화돼야 합니다.

또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도 필요합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비난으로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하고 미혼모가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영국처럼 국가가 주거와 생활비를 지원한다면 여성 노동자들은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관장은 그러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시절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한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정치적 성과로 꼽았다. /이상헌 기자
전 관장은 그러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시절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한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정치적 성과로 꼽았다. /이상헌 기자

전 관장은 그러면서 제19대 국회의원 시절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한 것을 가장 자랑스러운 정치적 성과로 꼽았다. 

"소공인은 10인 미만의 제조업 사업체로 전국에 약 35만 개가 존재하지만 이들을 보호하고 지원할 정책은 매우 부족했었습니다. 주요 제조 품목으로는 의류, 안경, 주얼리, 가구 등 25개 업종이 포함되며 대기업 중심의 산업 정책 속에서 소공인 산업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그는 특별법 입법을 위해 서울시, 부산시, 경기도 등 주요 도시들과 협력해 전국적인 조사 및 연구를 진행했다. 전 관장은 "첫 번째로 한 일이 전국 소공인 현황 조사를 지자체와 함께 수행하는 것이었다"며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 여야 합의로 최단기간 입법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입법이 제대로 되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29번의 공청회와 토론회를 열며 전국을 돌았습니다. 안경, 신발, 주얼리 등 각 지역의 소공인들과 직접 소통했습니다.

국회의원 88명의 지지를 받았어요. 보통 12명의 서명이면 발의가 가능한데 전국의 소공인들을 지원하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죠. 2014년 12월 법안을 발의하고 2015년 4월에 최단기간인 4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관장 사무실에 걸려 있는 전태일 열사 추도문과 초상화 사진이다. /이상헌 기자
관장 사무실에 걸려 있는 전태일 열사 추도문과 초상화 사진이다. /이상헌 기자

―이곳 종로구는 주얼리 산업의 메카이기도 한데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큰 역할을 한 듯하다. 

"(웃음) 그렇게 봐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서울 종로에는 주얼리 지원센터가 있고 부산에는 피혁·신발 산업 지원센터가 있습니다. 대구는 안경 제조 산업을 중심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특별법을 통해 전국 주요 소공인 산업지에 센터를 설립했지요. 기술 교육과 마케팅 지원, 공장 현대화까지 지원하죠."

전 관장은 입법 활동을 통해 소공인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정책적 보호를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초기 예산 400억 원이 현재 1600억 원으로 증가했으며 전국 소공인 지원센터 설립, 전국 소공인 조직 결성, '소공인의 날' 행사 개최 등 여러 방면에서 성과를 이뤘다.

"소공인은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발전해야 대한민국의 제조업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어요." 

옥스퍼드 러스킨 대학에서 노동사회학 학위(Diploma)를 획득한 전 관장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주장하는 진보 학자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본 시리즈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88년도엔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은 한국에서 키우자'라는 사회운동을 펼쳤다. 이인재 전 의원을 비롯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인연도 신경림 시인 선생님이 단체명을 지어준 '정을 심는 모임'에서 맺어졌다고 한다. 

―전태일 기념관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전태일 기념관은 기존의 박제화된 이미지를 탈피해 시민 친화적인 공간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관람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며 전태일 정신의 본질을 강조할 계획입니다. 단순한 노동 투쟁가가 아니라 인간적인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다가갈 예정입니다. 다양한 세대가 인류애, 사랑, 정의, 나눔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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