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고영미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계선·조한창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함에 따라 '8인 체제'를 완성 한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심리·선고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면서 개헌론이 탄핵정국에 변화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당초 개헌에 적극적인 쪽이었던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계엄 사태 후 입장을 바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개헌 논의를 적극 주도하고 있다.
이처럼 개헌론을 두고 여야의 입장이 바뀐 가운데 개헌 논의를 빠르게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이 60%에 달하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후 예상되고 있는 조기대선과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이 6‧29 선언 후 3개월 만에 이뤄진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에도 빠르게 추진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개헌 추진’ 60%…4년 중임 대통령제 43%로 가장 많아
개헌 논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 봇물 터지듯 나왔다. 기저에는 5년 단임제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 구조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또 ‘87년 체제’ 이후 국민이 뽑은 대통령 8명 중 3명이 재임 도중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대에 오른 정치 현실도 반영됐다. 개헌을 필두로 한 정치 개혁이 ‘시대적 과제’라는 게 정치권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탄핵심판 대상이 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계기로 현행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음이 다시 한번 드러나며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지난달 29~3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늦어도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60%에 달했다.
‘만일 개헌을 한다면 언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지금부터 논의해 최대한 신속히 추진’ 답변이 34%,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완료된 후 추진’이 26%였다. 늦어도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60%에 이른 것이다. 반면 ‘차기 정부 출범 이후 추진’은 32%, ‘모름·무응답’은 8%였다.
이념 성향별로 봤을 땐 진보층(65%)이 보수층(55%)보다 빠른 개헌을 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지 정당별로는 국민의힘 지지층(53%)에 비해 더불어민주당 지지층(61%)이 차기 정부 출범 이전 개헌 논의 시작을 선호했다.
이어 권력구조와 관련해서도 4년 중임 대통령제 43%, 의원내각제 10%, 이원집정부제 2% 등 현행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여론이 현행 5년 단임제(33%)보다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경향신문이 여론조사기관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지난 28~29일 전국 18세 이상 성인 1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2025년 안으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응답이 38%를 차지했으며, 헌법을 개정할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개정을 꼽은 응답이 36%로 가장 많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정당 대표 등을 역임한 여야 정치 원로들도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기간 중 권력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춘 개헌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들은 결의안에서 최근 반복되는 대통령 탄핵 정국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과 단원제 국회의 충돌을 중단·조정하는 제도적 장치가 헌법상 전무하기 때문”이라며 “이 기회에 분권형 국가권력 구조에 관한 개헌을 추진해 극단적·소모적 정쟁을 해소해달라”고 여야 정치권에 요청했다.
이어 “‘선 개헌·후 정치 일정’의 원칙하에 대통령 탄핵 심판 기간 중 개헌을 마무리해 실종된 정치 질서를 회복, 제7공화국의 새 질서를 열어가달라”고 당부했다.
국민의힘 “개헌, 지금이 적기”
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저지 동력을 잃은 국민의힘은 이제 당력을 개헌논의로 돌리는 모양새다.
특히 새로 출범한 ‘권영세 비대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투톱 체제는 개헌을 당의 최우선 이슈로 띄우겠다는 입장이더. 권 원내대표는 지난달 13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의장이 중심이 돼서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은 지난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87년 체제(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가 만든 제왕적 대통령제는 유통기한이 지났다”며 “국민 여론 과반수가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고 썼다. 이어 그는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자신의 정치 스케줄이나 이익에 사로잡혀 개헌을 거부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최형두 의원도 지난 2일 “탄핵소추 기간 동안 여야가 개헌과 정치개혁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라며 “탄핵소추 기간동안 여야가 정치개혁을 해야 한다. 이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연초 국내 모든 언론이 개헌과 정치개혁을 얘기하고 있는데 국민여론조사, 원로, 학계 시민사회에서 개헌을 통해 광복80주년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토대를 쌓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했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개헌 필요성을 적극 제기했다. 대선 출마를 고민 중이라고 밝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정치 시스템 개편이 시대적 과제가 됐다”고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대신 의회 해산 권한을 주고, 이에 상응해 국회에는 내각 불신임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의원도 지난달 26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87년 체제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럴 때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이 헌법을 바꾸고, 가장 기본이 되는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반드시 필수적”이라고 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지난달 22일 MBN에 출연해 “조기 대선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개헌 논의는 굉장히 진지하게 지금 해 볼 필요가 있다. 1987년 체제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대통령) 4년 중임으로 개헌해서 5년 단임제의 폐해를 시정하되 (대통령이) 폭정으로 가지 못하도록 감시·견제하는 장치를 헌법 안에 많이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앞서 국민의힘 소장파 의원(김상욱·김소희·김예지·김재섭·우재준 의원)은 지난달 5일 대통령 임기단축 헌법 개정을 제안 한 바 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달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폐기 이후 윤 대통령의 탄핵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면서도 임기 단축 개헌과 조기 대선, 책임총리가 이끄는 비상 거국내각 구성 등을 정국 수습 방안으로 거론했었다.
민주당 “국면 전환용…개헌 언급은 내란 동조 세력”
개헌 논의의 또 다른 한 축인 민주당은 미적지근한 반응이다.
당초 개헌에 적극적인 쪽은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이었다. 특히 이 대표는 지난해 1월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올해 안에 개헌안을 마련하자”라고 제안했고, 계엄 사태 이전인 지난해 11월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내건 개헌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계엄 사태 후 개헌론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은 180도 달라져 이젠 언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지금 여당이 대대적으로 개헌론을 펼치는 이유에 ‘국면 전환용’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야권의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가 개헌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달 18일 국회에서 이 대표를 만나 “이제는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 게임인 대통령중심제가 우리 현실과 맞는지 검토할 시점이 됐다”며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 대표는 “국정 안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헌정 질서의 신속한 복귀”라고 말하며 개헌 논의에 선을 그었다.
이를 반영하듯 친명 의원들도 개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탄핵 후 조기 대선인데 (개헌을) 논의하기는 어렵다”라고 한데 이어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CBS라디오에서 “개헌의 ‘개’자를 꺼내는 것은 일종의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윤석열 임기를 자꾸 연장하려고 하는 음모 세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대표를 제외한 민주당의 잠재적 대선 후보들은 개헌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와 당권 경쟁을 벌인 김두관 전 의원은 지난달 20일 부산 강연에서 “개헌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놓치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도 지난달 1일 비명계 모임 '초일회'와의 만남에서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3개월만에 헌법 개정안 공포
헌법재판소가 2일 헌법재판관 8인 체제를 본격 가동하면서 헌재는 탄핵심판 심리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헌재가 6인 체제 굴레를 벗고 속도전에 나섬에 따라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는 늦어도 오는 4월 18일 전까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4월 18일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과 이미선 재판관이 퇴임하는 날로써, 2일 기준 107일 남았다. 두 재판관의 후임은 대통령 추천 몫이라 대통령 직무정지인 현 상태에서는 임명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럴 경우 대통령 궐위 시점으로부터 60일 안에 대선을 치르도록 규정한 헌법 68조에 따라 이르면 4월, 늦어도 6월에는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조기대선이 이르면 올해 4월, 늦어도 6월 실시 될 가능성이 점쳐지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시기가 너무 빠듯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직선제 개헌과정을 살펴보면 올해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도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87년 집권당 민주정의당의 대표였던 노태우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6‧29 선언’이후 7월 1일 여당(민정당)과 야당(신민당, 민주당 등)이 개헌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고, 7월 10일 국회에 개헌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개헌안 마련에 들어갔다.
10월 12일 여야가 합의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의결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대통령 직선제,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기본권 강화이었다.
이후 10월 27일 국민투표를 통해 투표율 78.2%, 찬성률 93.1%로 개헌안이 압도적으로 통과되었으며, 10월 29일 헌법 개정안이 공포되어 정식 발효되었다.
대통령 직선제 수용 발표 후 헌법 개정안이 공포되기까지 불과 3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김능구 “李, 7공화국 여는 핵심 돼야…분권형 개헌에 힘 써야”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달 7일 “87년 개헌 이후 정쟁 대결이 극심해지고 이로 인해 정치 불신이 커지고 있고, 그 원인은 대통령 한명이 아닌 제도에 문제가 있으므로 윤 대통령 하야, 탄핵에만 매달려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지난달 19일에는 “이재명 대표가 민주당을 일극 체제로 장악하고 있는데 어떤 명분을 내걸어서든지 개헌 안 하겠다고 하면 어려울 것”이라며 “미래의 대한민국을 여는 개헌에 동의하고 앞장서서 내년 봄에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서 7공화국을 여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이어 김 대표는 분권형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헌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라며 “분권형 개헌은 우리 정치권의 정치적 불신을 국민들한테 극복해 내고, 정말 새로운 선도국가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 데 필수적이고 탄핵 이후 국회에서, 정치권에서는 여기에 온 힘을 다해야겠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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