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에게 무대와 노래를 빼고 보니 느긋하고 나른한 남자가 서 있었다. 벌써 19년째 노래를 부르는 그의 무대 밑 일상은 어떨까. 지난 한 해를 함께 회고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현장 반응이 뜨거웠어요. 오늘 촬영 어떠셨나요?무척 재밌었습니다. <아레나>는 올 때마다 항상 재밌어요. 화보도 늘 좋았고요. 기대하는 마음으로 옵니다.
무대 위의 강렬한 아티스트가 아닌 일상 속 이승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가요. 일상과 비슷한가요?
추구하는 바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제론 귀찮음 때문에 옷을 잘 안 사요.(웃음) 사진 속 모습이 제 ‘추구미’예요.
휴일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세요?
나자빠져 있습니다.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요.
주로 집에 계시는군요.
나가는 걸 너무너무 싫어해요. 아까 촬영한 컷 중에 옆으로 누워서 팔 베고 있는 자세 그대로 5시간 정도 있어요. 그렇게 휴일을 보냅니다.(웃음)
제 휴일과 비슷하네요. 2024년 10월에 세 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하셨잖아요. <역성>은 어떤 의미를 갖는 앨범인가요?
음악인으로서 도달하고 싶었던 지점에 마침내 다다른 듯한 앨범입니다.
이승윤의 마스터피스일까요?
근데 제가 앨범을 낼 때마다 마스터피스라고 말해서요.(웃음) 그런 의미보다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만들고 싶었던 원형에 가까운 앨범이에요. ‘드디어 만들었다’ 하는 느낌이에요.
앨범 소개에 ‘거스를 수 없는 것을 거슬러보겠다는 마음가짐을 담은 앨범’이라고 하셨어요. 거스를 수 없는 것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너무 많이 있어요. 거대한 의미에서 보면 자연의 이치, 세상의 이치가 있죠. 작게는 본인이 속한 집단과 세계의 규칙, 더 작게는 자기 마음속에도 거스를 수 없는 것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것들을 한 번은 거슬러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만들었어요.
앨범과 동명 타이틀 곡 ‘역성’은 어떻게 만들었나요?
‘역성’은 메시지보다 노래의 규모를 먼저 잡았어요. ‘대곡으로 만들어야겠다. 이건 심포니다’라고 작곡할 때 생각했어요.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앨범을 만들면서도 쉽게 손을 못 댔어요. 한 번 시작하면 다른 노래들을 완성하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앨범 작업이 마무리될 때쯤에 메시지를 고민하다가 역성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역성을 담아낼 그릇이 바로 이 노래라고 확신했어요. 대곡으로 스케치한 곡에 메시지를 입혀서 결국 역성이라는 거대한 이야기가 나온 거죠.
요즘 음악은 점점 짧아지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유독 긴 곡을 많이 들려주세요. 긴 곡이 지닌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우선 긴 곡의 매력은 서른 번을 들어도 들을 게 많다는 점이고, 주인공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언가를 더 상상하게 되죠.
앨범을 듣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하고 싶은 이야길 대신 소리쳐주는 것 같아서요. 만드는 입장에선 어떤가요, 해소가 되나요?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는 건 콜라를 마시고 ‘카’ 하듯 청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껌처럼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어 있는 감정을 하나씩 떼어 작품을 만드는 일과 비슷해요. 나조차 몰랐던 마음의 파편을 언어화하고, 멜로디를 입혀서, 음악으로 만드는 거예요. 떼는 과정은 너무 힘들죠. 지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품이 완성되면 그 노래에 제 감정을 맡겨둘 수 있어요. 저와 조금 떨어트려서 미뤄둘 수 있는 감정이 생기는 거죠.
“외부에서 받은 질문을 내부에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솔직했던 곡은요?‘스테레오’. 우리는 편향될 수밖에 없지만 균형을 잡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가장 직설적인 노래라고 생각해요.
저도 인상 깊게 들었어요. 노래에 굉장히 많은 장치가 삽입됐는데 작곡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스테레오’는 제가 10년 전부터 아이디어만 갖고 있던 노래예요. 언젠가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가면서 음악의 장르가 바뀌며 흐르다가 스테레오로 펼쳐지는 노래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갑작스럽지만 개인적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것과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하나씩 꼽는다면요?
바뀌었으면 하는 건 키가 좀 커졌으면 좋겠고 피부 톤이 하얘지는 것?(웃음) 제가 짜증이 많은 것 같아서 자제하고 싶어요. 바뀌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그래도 짜증을 잘 내면서 살고 싶습니다.
외부적인 요소에서도 꼽을 수 있을까요?
바뀌었으면 하는 것은 방금 이야기한 ‘스테레오’ 노래로 대체하겠습니다.
가사를 보며 늘 궁금했는데 평소에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안 읽은 지 조금 오래됐어요. 요즘에는 1년에 두세 권 정도 읽습니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이 있나요?
세 권밖에 안 읽어서 어려운데요.(웃음) 유타 바우어의 <셀마: 행복이란>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그게 기억에 남네요.
제가 생각하는 이승윤은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나 질문이 많은 사람 같아요. 그런 예상을 했는데 실제론 어떤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저건 왜 저렇지?’ 하는 질문이 생겼을 때 ‘그러면 나는 그럴 때 어떨까?’ 하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받은 질문을 내부에서 고민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함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만을 세상에 난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감정을 다듬고 보듬으면서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긍정을 붙들고 싶은가, 어떤 부정을 안아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작업할 때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요?모든 매체에서 많이 얻어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나누는 채팅이나 사소한 경험에서도 얻고요. 커다란 영감을 한 번에 받아서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제 삶 전체에 조각조각 퍼져있는 것들을 틈틈이 모아서 담아냅니다.
작업의 동력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비롯하나요, 아니면 부정적인 감정인가요?
동기는 부정인 것 같아요. 긍정이 되길 바라면서 부정에서 시작하죠. 부정적인 감정만을 세상에 난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감정을 다듬고 보듬으면서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긍정을 붙들고 싶은가, 어떤 부정을 안아줄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음악 작업을 할 때 루틴이 있나요?
루틴은 일부러 정해놓지 않아요. 그래도 꼽자면 커피를 무조건 마시면서 한다, 정도?
원래 커피를 좋아하시나 봐요.
좋아하기보다는 연료죠.
현대인의 필수 루틴이긴 하죠. 그럼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는 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올해는 NBA랑 F1을 빠짐없이 봤어요.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게 그런 기능을 하는 것 같네요.
보는 것만 좋아하시나요?
F1은 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보는 걸 좋아해요. 농구 경기를 열심히 봤습니다.
최근 전국 투어를 마무리하고 연말에 진행될 서울 콘서트만 남겨뒀는데 이번 투어는 어땠나요?
이번 콘서트는 앨범과 연계해서 진행했는데요. 다들 안 믿어주시는 것 같지만 전 진심으로 이번 앨범을 내기 위해 혹은 이런 공연을 하기 위해서 음악을 시작했다고 느꼈어요. 그만큼 너무나 감사하고 뿌듯한, 스스로 정말 즐거운 공연이었습니다.
이승윤은 주관이 뚜렷한 가수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한 점이 좋게 느껴졌고요.
저는 계속해서 제 생각을 음악에 집어넣는 가수죠. 세상에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으니 아무 생각 없이 들을 수 있는 작품도 필요하다고 느끼지만요.
팬분들 역시 그런 부분을 좋아해주시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공연을 잘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까 좀 잘하는 것 같아요.(웃음)
아직 음악을 통해서 풀어보지 못한 감정이나 메시지가 있을까요?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없지는 않은데요. 말을 먼저 하고 다니면 노래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없지 않다 이 정도로 이야기하겠습니다.
곡을 처음 쓴 때가 17세쯤이라고 들었어요. 19년의 세월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음악 하길 잘한 것 같아요. 2023년까지만 해도 만약에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과거의 저를 볼 수 있다면 ‘기타를 잡지 마!’ 하고 소리쳤을 것 같은데, 2024년에는 앨범도 내고 공연도 하면서 살아보니까 기타를 잡길 정말 잘했다는 마음이 드네요.
인터뷰가 나가는 건 2025년 새해인데 2024년은 어떠셨나요?
2024년 한 해는 너무 다이내믹했어요. 2023년부터 시작해서 정규 앨범을 향해서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고요. 마음의 고점과 저점의 간극이 매우 컸어요. 결과적으로는 2024년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승윤의 한 해가 녹아 있는 앨범이네요.
무언가를 발표하면서 후련함은 처음 느껴봤어요. 3집 앨범이 나온 날은 굉장히 오래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2024년의 목표는 무엇이었나요?
앨범을 잘 내자.
성공적으로 이루셨네요. 2025년의 다짐은요?
우선 연말까지 살아보고 다짐해야 할 것 같아요. 끝까지 살아보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떤 아티스트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냥 기억해주시는 걸로도 감사한데요. 기억하고 싶으신 대로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설정하는 건 의미 없고 부여받은 의미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2025년 01월호
Editor : 유지원 | Photographer : 홍준형 | Stylist : 이필성 | Hair&Make-up : 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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