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할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던 올리비아 핫세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73세.
고인의 사망 원인은 유방암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장례식은 친인척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다.
이러한 비보에 전 세계 팬들과 업계는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아름다운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올리비아 핫세의 리즈 시절에 대한 관심도 모이고 있습니다.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의 사망 소식
지난 27일(현지시간), 미국의 언론들은 올리비아 핫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앞서 고인은 2007년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유방 절제 수술로 완치되었지만, 2018년 새로운 종양이 발견되어 사망 직전까지 투병한 것으로 전해진다.
핫세의 인스타그램에는 "올리비아 허시 아이슬리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함께 알립니다"라며 유족의 게시글이 공개됐다.
이날 유족은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 올리비아는 따뜻함, 지혜, 순수한 친절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준 놀라운 사람이었다. 고인은 생전에 예술, 영성, 동물에 대한 사랑 등으로 헌신이 가득 찬 삶을 살았다"라고 애도를 표현했다.
그러면서 "올리비아가 우리 삶과 산업에 미친 지속적인 영향을 기념하자. 이 어려운 시기에 많은 분들의 생각과 기도에 감사드린다"라며 "특별한 영혼의 상실에 애도하는 동안 사생활 보호를 부탁한다"라고 당부했다.
안타까운 비보에 세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 영화 팬들은 올리비아 핫세를 기억하고 나섰다.
특히 "우리들의 영원한 줄리엣", "그녀만큼 아름다운 여인은 없었다", "내면이나 외면이나 아름다웠던 사람" 등의 애도가 줄을 이뤘다.
또한 패션매거진 에스콰이어 코리아는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에 많은 이들이 슬픔에 잠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고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팝 코리아는 "이제는 그녀를 영상 속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의 아름다움과 연기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한, 프런트 A매거진은 "한 편의 영화로 전설적인 인물이 된 그녀는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라고 애도를 표했다.
실제로 핫세는 15세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해 골든글로브 신인상을 수상하며 스타덤에 올라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덕분에, 핫세는 아직까지 줄리엣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올리비아 핫세가 살아온 인생과 영화 작품
올리비아 핫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팬들 사이에서는 그녀가 걸어온 삶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핫세는 1951년 4월 17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영국에서 13살의 어린 나이에 단역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15살에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1968)'에 캐스팅되면서 주연 배우로 발돋움했다.
이 영화는 큰 흥행을 기록하며 핫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겼다. 할리우드 연예인들이 핫세를 만나기 위해 영국까지 방문했을 정도라고.
다만, 어린 나이에 스타가 되었던 탓일까. 핫세의 10대 시절은 종종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담배를 피우는 반항적인 모습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특히 1960년대의 소위 '비행청소년(Swinging Sixties)'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크게 방황했던 핫세는, 안타깝게도 방황심을 통제하지 못해 많은 명작 제안을 거절하게 되었다.
훗날 자서전에서 그는 이 시절을 회상하며 "너무 많은 일이 한 번에 일어났다. 하룻밤 사이에 슈퍼스타가 되었기에, 난 그것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기회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핫세는 배우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며, 세계 4대 미녀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연기력으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이외에도, '블랙 크리스마스(1974)', '나일강의 죽음(1978)', '마더 테레사(2003)', '관종(2015)' 등의 필모그래피가 있으며, 그는 총 51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한편, 올리비아 핫세는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1971년 배우 딘 폴 마틴과 결혼한 후, 1980년 일본 가수 후세 아리카와 재혼하였으며, 1991년에는 미국 가수 데이비드 아이슬리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 중에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핫세가 딘 폴 마틴과 결혼을 결심한 이유로 '자신의 눈동자 색깔을 맞췄기 때문이다'라고 밝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던 바 있다.
한 인터뷰에서 사회자는 핫세에게 "당신 같은 매력적인 몸매와 얼굴을 가진 여성을 얻은 남자의 비결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핫세는 사회자의 눈을 가리더니 "제 눈이 무슨 색인지 기억하시나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당황한 사회자. 이에 핫세는 "초록색이에요. 모든 남자가 제 가슴을 쳐다볼 때, 그 이만 유일하게 내 질문에 대답해 준 사람이었습니다"라고 설명한 일화가 아직까지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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