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학생들의 문해력 부족 현상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문해력이 부족하면 국어뿐 아니라 수학, 영어 등 모든 과목에서 학습 저하가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유아·아동기 시기의 문해력 학습이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아·아동기는 인간의 발달단계 중 발달과 성장 속도가 가장 빨라 이 시기 교육이 향후 청소년기 이후의 학습 수준을 크게 좌우한다는 주장이다.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를 통해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전반적인 언어 능력을 의미한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의 의미 이해를 넘어 비판적 사고, 추론, 정보 해석 등의 능력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학문을 배우기 이전에 먼저 갖춰야 할 역량이 바로 '문해력'인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문해력 수준에 따라 학습 능력에도 차이를 보인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서울대도 예외 아냐" 韓 학생 문해력 저하 심각…유아·아동기 기초 문해력 향상 시급
최근 머리 좋기로 유명한 한국인들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다. 지난 10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따르면 한국 성인(16~65세)의 언어·수리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OECD 국가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61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 성인의 언어 능력은 500점 만점에 249점에 그쳤다. OECD 평균(260점)보다 11점 낮은 수준이다. 2012년 조사 당시 한국 성인의 언어 능력 점수(273점)와 비교하면 약 10년 만에 24점 하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인들의 언어 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방증인데 일선 교사들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0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가 전국 초·중·고 교원 584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 문해력 실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생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저하됐다고 답변한 비율은 91.98%(저하 52.5%, 매우 저하 39.3%)에 달했다. 특히 해당 학년 수준 대비 문해력이 부족한 학생이 '21% 이상'이라고 답한 교원은 절반에 가까운 48.2%에 달했다. 도움 없이는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도 '21% 이상'이라는 답변도 30.4%나 차지했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불리는 서울대학교도 신입생들의 문해력 저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서울대는 내년부터 '대학 글쓰기 1' 수업을 듣는 신입생 전원에게 글쓰기 시험을 시행하기로 했다. 또한 '대학 글쓰기 1' 과목을 졸업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킨다는 방침도 함께 밝혔다. 사실상 모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글쓰기 시험을 보게 하겠다는 의미다.
신입생 글쓰기 시험 평균 성적이 불과 몇 년 만에 10점 넘게 떨어지는 등 재학생들의 문해력 상승이 시급하다는 게 서울대의 입장이다. 올해 서울대에 입학한 신입생 글쓰기 시험 평균 성적은 60.7점으로 2017년(73.7점)에 비해 13점 하락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관계자는 "최근 학생들의 국어 시험 점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대학 내에서도 큰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며 "글쓰기 시험은 이전부터 계속 시행 왔지만 최근 들어 학생들의 평균 점수가 크게 하락해 불가피하게 강제성을 부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육 분야 전문가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문해력이 낮은 결정적 이유로 디지털 매체 사용을 꼽았다.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의 대중화로 손 글씨 대신 키보드나 스마트펜 등을 이용해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문해력이 점점 감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 재직 중인 김민주 교사(29·여)는 "같은 내용을 필기하더라도 연필로 직접 쓰는 것과 타자를 입력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며 "문해력 향상에 있어서는 아날로그식 공부법이 더욱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아이 혼자 아닌 부모와 함께하는 소통 독서 중요…다양한 표현, 한자 교육도 효과적"
다수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아·아동기는 문해력 신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발달이 급속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학습 능력 성장 속도도 가장 빠르다. 유아·아동기에 대한 명확한 나이 기준은 없지만 통상적으로 만 4세부터 만 12세까지가 유아·아동기로 분류된다. 유아·아동기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차별화된 독서법'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의사소통에 중점을 둔 독서법이 문해력 향상에 가장 효과적이다.
아동 문해력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기초 문해력은 유아기 때부터 잘 쌓아두는 것이 중요한데 한글 해독을 서두르거나 다독만 시킨다고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다"며 "적어도 한 달에 한두 권의 책을 부모가 같이 읽고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방법으로 아이가 학습독서에 치우지지 않고 여가독서를 꾸준히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이에게 독서의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아이로 하여금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닌 부모님이 직접 등장 인물들의 느낌을 살려 책을 읽어주는 등 의사소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부모님과 함께 하는 책읽기를 통해 아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공감을 느끼게 해 아동기 이후에도 간헐적 독자가 아닌 열독자로 계속 남게 하는 것이 문해력 발달의 핵심 포인트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독서가 끝난 후 아이가 글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아이가 해당 내용을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과정을 되풀이 하는데 그것보다는 아이 스스로 글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언제가 됐든 본인이 직접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문해력 향상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서울 마포역 인근에서 문해력 향상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진아 원장(32·여)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때 색깔, 모양, 촉감 등의 어휘를 많이 사용해 사물에 대한 구체성을 가지도록 해줘야 한다며 "예를 들면 구두를 지칭할 때 그냥 구두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 까맣고 매끈매끈하고 뾰족한 구두라고 설명하는 식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인 말을 통해서 풍부한 어휘나 문장력을 익힌 아이는 글자를 익혔을 때 자신이 듣고 말하는 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쓰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강조했다.
문해력 증진과 관련해 '한자어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도 일부 존재했다. 한자어 비중이 많은 한국어는 같은 단어라도 사전적 의미 외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어린이 국어교습학원 강사로 활동하는 유지연 씨(31·여)는 "우리말은 한자어의 비중이 높은데 한자어는 고유어보다 의미가 훨씬 분화돼있어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유아·아동기에 영어교육에만 매진하는데 한자어 공부를 통해 언어의 유추능력을 키워주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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