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안성재가 꿈꾸는 '궁극의 요리'는?

'흑백요리사' 안성재가 꿈꾸는 '궁극의 요리'는?

바자 2024-10-22 13:00:00 신고

셔츠, 팬츠, 슈즈는 모두 Bottega Veneta.

하퍼스 바자 모수 서울이 재오픈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안성재 오픈은 아마 내년 2월쯤이 될 것 같아요. 다른 장소로 이전하는데, 제가 원하는 색깔과 디자인 그리고 구조까지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생각입니다. 메뉴에 대해서는 사실 고민이 많아요. 제 생각에는 아직 모수에 와본 분들보다 와보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은 것 같거든요. 변화는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기존의 모수를 좋아해주신 분들이 기억하는 저희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간은 달라졌지만, 모수의 DNA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나갈 계획입니다.
하퍼스 바자 개업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유일한 메뉴가 할머니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약과 디저트라죠.
안성재 할머니께서는 ‘약과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약과를 직접 만들어 팔기도 하시고,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때는 그 약과 냄새가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되었죠. 가끔은 ‘왜 더 맛있는 다른 디저트를 하지 않냐’는 컴플레인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 약과가 제가 손님들에게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고집이자 모수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사실 할 수 있는 디저트야 수백, 수천 가지죠. 문제는 기준이에요. 그렇게 모수라는 브랜드를 키워왔고 약과는 그중 하나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7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새지만, 레시피는 그동안 10번 이상 수정되었어요. 저는 그런 종류의 변화를 좋아해요. 약과 위에 꽃이나 금가루를 올리거나 그럴듯하게 모양을 바꿔서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려는 변화는 지양하고 있어요. 저는 가장 단순한 플레이팅 안에서 가장 복잡한 맛을 구현하고자 하고, 이를 통해 손님들이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배고플 때 오셔서 배부르게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수에서의 경험이 그들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해주는 것. 즐거울 수도 있고, 재미있을 수도 있고, 아름답거나 행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면 좋겠죠.
하퍼스 바자 모수에서는 서버들도 따로 무용 수업을 수강하면서 전문성을 연마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안성재 한국에서는 서빙이 커리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조금 낮게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안무가나 배우, 의사처럼 외식업 특히 서비스 산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거죠. 레스토랑은 요리사만 잘해서 운영되는 게 결코 아니에요.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를 높이려면 우리 스스로가 멋져야 해요. 단순히 음식을 내놓고 ‘이건 뭡니다’라며 가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제스처와 움직임 속에 배려와 아름다움이 담겨야 하죠. 이를 위해서는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발레나 현대무용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움직임이에요. 그게 제가 무용 수업을 권장한 이유죠.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천지 차이니까요.

셔츠, 베스트, 재킷, 팬츠는 모두 Tranquil House. 슈즈는 Boss. 접시는 Hermè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완벽주의자죠?(웃음)
안성재 저는 스스로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곤 해요.(웃음) 손님들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지, 제 만족을 위해서 완벽을 추구하진 않아요. 물론 예전에는 꽤 자만했고 약간 나르시시스트였어요. 미쉐린 1스타, 2스타를 따고 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내가 최고다’라고 생각한 순간들이 있었죠. 하지만 오히려 일을 계속하다 보니, 내가 모든 걸 아는 게 아니구나, 더 배워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저의 멘토 셰프들만 봐도, 가장 멋있어 보일 때는 그런 경청의 자세를 보일 때더군요. 물론 제가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한창 젊은 셰프들은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지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에서 상위권에 오른 친구들이 ‘내가 최고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저는 박수를 쳐줍니다. 그래, 지금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면 나중에 더 성숙해질 거야. 인생에는 그런 단계가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지금 제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건 멋이 없는 거죠.(웃음)
하퍼스 바자 〈흑백요리사〉를 보면 ‘트리플스타’나 ‘요리하는 돌아이’ ‘나폴리 맛피아’ 같은 젊은 셰프들을 귀여워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선배의 마음이랄까요?
안성재 이 자식들이 지금 다 치고 올라오려고 하는데(웃음) 사실 정말 뿌듯합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친구들뿐만 아니라 다른 셰프들도, 요리하는 삶이 어떤 건지 알기 때문에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대한 해주려고 해요. 하지만 이게 선배 노릇을 의미하는 건 결코 아니에요. 제가 저의 업장이 있듯, 비록 셰프 경력이 1년밖에 안 된 친구라 하더라도 각자 자기 레스토랑의 사장이자 셰프잖아요. 제가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주방에서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이 주방 안에서 나이로 존중받을 거란 기대는 버려라. 요리사가 손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손님이 음식을 더 좋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나이, 성별, 경력 다 내려놓고 실력으로 평가 받아라.”
하퍼스 바자 파인 다이닝은 무엇보다 주방에서의 문화와 규율이 중요하다고 알고 있어요. 모수의 주방은 어떻습니까?
안성재 모수의 주방은 굉장히 엄격합니다. 저희 직원들은 저한테 말조차 함부로 걸지 못해요. 도라도 닦는 거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손님에게 나갈 음식을 앞에 두고 가볍게 행동하는 건 예의가 아니죠. 모든 건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믿어요. 누군가는 숨 막히는 분위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하호호 재미를 원한다면 다른 레스토랑으로 가는 게 낫겠죠. 우리는 그런 재미보다 요리에 집중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것에서 더 큰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니까요. 때로는 조금 더 강하게 말하기도 해요. “그걸 배우고 싶다면 입 닥치고 일해라. 나중에 이해하게 될 거다. 이건 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다.” 그러면 대부분 도망가죠.(웃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트리플스타나 원투쓰리같이 모수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다른 셰프들과 다르다는 게 명확해집니다. 일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요. 요리를 시작할 때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치는 것, 그걸 풀어내는 과정, 끝까지 마무리하는 태도까지요. 칼질부터 정리까지 방송에 나온 단정한 면면만 봐도 보일 겁니다.

재킷은 Cos. 셔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흑백요리사〉에서 요리하는 돌아이가 심사를 앞둔 중요한 순간에 “라면은 짝수부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니까 지나가는 말로 무심하게 “아주 바람직한 생각이네요”라고 말한 걸 보고 빵 터졌습니다. 평소엔 장난기가 있는 편인가봐요.
안성재 요리로 장난치는 건 정말 싫어하지만 평소엔 장난기 많죠. 살아가면서 그 정도 유머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집에 가면 거의 ‘바보 아빠’예요. 우리 가족 중에서 서열 제일 아래고요. 가부장적인 성향은 전혀 없고 아이들도 굉장히 자유롭게 자라고 있어요. 요즘엔 방송을 보고 저를 놀리기도 하고 흉내 내기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안에 저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하퍼스 바자 심사위원 안성재는 〈흑백요리사〉에서 가장 의외의 출연자이기도 합니다. 제작진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떤 비전에 공감했는지요?
안성재 일단 출연 제안 자체로 감사했고, 딱 두 가지 조건이 있었어요. 첫 번째, 저는 매일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셰프로서 제 직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 TV에서 비춰지는 셰프의 모습은 그들 업계의 자존심을 걸고 진정성 있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재미를 위해 가식적이거나 과장된 모습으로만 비춰진다고 생각했고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제가 출연해서 ‘저는 안성재이고 이렇게 대단합니다’라고 저의 명성을 더할 수도 있겠죠. 괜히 제가 똥폼 잡으면서 “네 음식은 맛대가리 없어” 하면서 접시 집어던지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건 제가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어요. 두 번째, 이 방송이 무조건 외식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그러자 얼마 후 제작진이 다시 연락이 와서 “안 셰프님이 원하는 걸 모두 반영하겠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방송하시는 분들을 다 믿지는 않아요.(웃음) 하지만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해주셨고 그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끌어주셨어요. 결과물도 그렇고 시청자의 반응, 외식업계에서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까지 모두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퍼스 바자 그렇게 누구보다 깐깐하고 공정하게 음식을 심사했습니다. 〈흑백요리사〉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요리는 뭔가요?
안성재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급식대가’의 음식이에요. 어쩌면 많은 이들이 그분은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을 것 같아요. 솔직히 저도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죠. 그런데 어머님께서 너무 귀여우신 거예요. 열심히 하시는데도 수줍어하시고, ‘이게 될까’ 하고 걱정도 있으신 것 같고, ‘괜히 나왔나’ 하고 후회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응원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오늘의 급식 메뉴는 무엇이냐고 비교적 따뜻하게 접근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마치 아이가 학교에서 배고플 때 급식을 막 퍼먹는 것처럼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맛있다’ 하면서 계속 먹었어요. 정신 차려보니까 반쯤 비웠더라고요.(웃음) 아직 심사해야 할 참가자가 몇십 명 더 남은 상황이라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멈추고 ‘보류’를 드렸죠. 어쨌든 먹고 몇 초 안에 결정을 해야 하니까요.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합격인데, 어마어마한 음식은 아니고 그냥 따뜻한 음식이잖아요. 한 번 더 생각해보자 했죠. 백종원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만약 백종원 대표님이 별로라고 심사했더라도, 제가 강하게 “아니에요, 그냥 합격 드립시다”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백종원 대표님도 그분의 요리 솜씨와 감성을 느끼셨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음식이 또 먹고 싶고 그렇네요.

셔츠는 Bottega Veneta.

하퍼스 바자 2004년, 패서디나 도로를 운전하던 24살 청년은 우연히 르 꼬르동 블루 LA 앞에서 새하얀 셰프복을 입은 한 무리를 보고 요리학교에 입학합니다. 셰프라는 직업이 너무도 대단하고 멋있게 느껴졌다고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 환상이 깨지는 시기도 분명히 있었을 텐데요.
안성재 환상이 깨졌다기보다는 그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어요. 오랫동안 ‘나는 절대 미쉐린 셰프가 되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저렇게 못하니까. 맨날 욕만 먹고, 힘들고, 레스토랑을 차릴 돈도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미래가 너무 어둡더라고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수를 오픈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요리에 대한 낙오자인가?” 하는 의심이 꺼지지 않았죠. 그런데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고 기회를 잡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노력하는 수밖에 없고요. 저도 그렇게 기회가 올 때마다 조금씩 잡아나갔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 순간 순간이 너무 긴장돼서 요리하다가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오고 그랬죠.
하퍼스 바자 스스로가 낙오자로 느껴질 만큼 미래가 불안정하고, 화장실에 가서 토하고 올 만큼 압박 속에 있으면서도 요리를 그만두지 않았던 이유는요?
안성재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저는 엄청난 흙수저이다 못해 눈물 없이 듣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어요. 노숙자로 살았던 적도 있어요. 집이 없어서 공원에서 자고 그랬죠. 어떤 사람들은 ‘요리사로는 돈도 많이 못 벌고 현재 상황이 어려우니까, 차라리 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현실적인 균형을 추구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신용불량자가 되든, 노숙자가 되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는 게 더 중요했어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하퍼스 바자 이상주의자 혹은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네요.
안성재 인정해요. 실제로 우리 직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인데, 우리는 이상을 좇는 사람들이고 그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건 각자에게 달려 있다고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장사’를 해야 하고 그게 잘못된 길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노력해서, 요리사가 되겠다고 처음 마음먹었을 때의 그 꿈을 현실로 만들라고요. 물론 그건 뼈를 깎는 일이겠죠. 만약 그 목표를 잃었다면 그냥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장사를 하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고 좋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요리사의 삶은 그와는 조금 달라요.
하퍼스 바자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안성재 인내심이에요. “Man’s virtue is patience”라고 참고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잖아요. 제가 방금 말한 이상주의도 우둔하고 바보 같은 게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하는 걸 전제로 해요.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는 것. 이 모든 건 결국 인내심이 있어야 가능해요.
하퍼스 바자 어떤 화가는 아틀리에에서 혼자만의 작업으로 자기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면, 파인 다이닝은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그렇게 나온 결과물도 매우 주관적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셰프의 입장에서 압박감은 없는지요?
안성재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저는 셰프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 음식을 먹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모수를 운영하는 거고요. 그러려면 팀이 필요하고, 팀원을 트레이닝하고, 그 안에서 문화를 형성해야 해요. 그러면서 삶이 복잡해지죠. (웃음)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을 즐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레스토랑에 갈 때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요리하러 가는 거죠. 그게 제 라이프스타일이니까요.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거의 반죽음일 걸요.(웃음) 그냥 좋아서 가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고요. 그래서 이상적이라는 말을 듣는 거겠죠. 이상을 좇아야만 가능한 삶의 방식일 테니까요. 행복한 요리사는 유명하거나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 주방에서 이 진리를 배웠네요.
하퍼스 바자 한국의 파인 다이닝 문화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의 셰프들은 자부심과 멋으로 일하는 장인들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안성재 한국 셰프들의 재능과 기술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셰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우리나라 외식업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식재료 수입·수출에 대한 법이 아직도 일제시대 때의 규제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외식 산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입·수출과 관련된 법들을 더 검토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외식 문화가 뒤처져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외식업이 확 살아나는 나라잖아요.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외식을 경험하는 건 노력만 하면 문화적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셔츠는 Jil Sander. 슈즈는 Zegna. 팬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요리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안성재 인내심이에요. “Man’s virtue is patience”라고 참고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잖아요. 제가 방금 말한 이상주의도 우둔하고 바보 같은 게 아니라 지혜롭게 대처하는 걸 전제로 해요. 지금 처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는 것. 이 모든 건 결국 인내심이 있어야 가능해요.
하퍼스 바자 어떤 화가는 아틀리에에서 혼자만의 작업으로 자기 세계를 구현할 수 있다면, 파인 다이닝은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고 심지어 그렇게 나온 결과물도 매우 주관적입니다. 완벽을 추구하는 셰프의 입장에서 압박감은 없는지요?
안성재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지만, 저는 셰프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 음식을 먹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모수를 운영하는 거고요. 그러려면 팀이 필요하고, 팀원을 트레이닝하고, 그 안에서 문화를 형성해야 해요. 그러면서 삶이 복잡해지죠. (웃음) 하지만 저는 그 과정을 즐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레스토랑에 갈 때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요리하러 가는 거죠. 그게 제 라이프스타일이니까요. 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하면 거의 반죽음일 걸요.(웃음) 그냥 좋아서 가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는 굉장히 행복한 사람이고요. 그래서 이상적이라는 말을 듣는 거겠죠. 이상을 좇아야만 가능한 삶의 방식일 테니까요. 행복한 요리사는 유명하거나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요리라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어떻게 하다 보니 주방에서 이 진리를 배웠네요.
하퍼스 바자 한국의 파인 다이닝 문화가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금 한국의 셰프들은 자부심과 멋으로 일하는 장인들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안성재 한국 셰프들의 재능과 기술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에요. 그런데 셰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우리나라 외식업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결부되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식재료 수입·수출에 대한 법이 아직도 일제시대 때의 규제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한국 외식 산업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입·수출과 관련된 법들을 더 검토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외식 문화가 뒤처져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넷플릭스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외식업이 확 살아나는 나라잖아요. 사람들이 지갑을 열고 외식을 경험하는 건 노력만 하면 문화적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하퍼스 바자 우승자 나폴리 맛피아의 요리를 보고 “요리의 멋을 안다”고 말한 적 있어요. 지금까지 나눈 대화의 요약이기도 할 텐데, 본인이 생각하는 ‘요리의 멋’은 무엇인가요?
안성재 제가 그렇게 말했어요? 너무 극찬을 했네요.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예전에 레스토랑에 포스터를 걸어둔 적이 있었는데, 내로라 하는 예술계 인사들이 와서 “저렇게 이상한 그림을 왜 걸어뒀냐”고 하시더라고요. Cyrk(contemporary Polish circus posters)라고 폴란드 서커스 포스터였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히틀러가 폴란드를 지배했을 때 모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지만 유일하게 자유로운 표현이 허용된 장르였죠. 어느 프랑스 작가의 파인한 추상화가 걸려 있어야 할 것 같은 공간에 해괴한 그림이 걸려 있다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그 포스터 안에 무언가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아주 선명한 색깔에 사자, 곰, 강아지가 각각 그려진 세 점의 포스터를 레스토랑에 걸었죠. 말하자면, 저는 가장 멋있는 건 가장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심사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 시대에 가장 멋진 요리는 가장 로컬화된 요리예요. 서울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요리, 거기에 각각의 셰프가 표현하고 싶은 서브 컬처를 자유롭게 가미한 것이 가장 멋스럽죠. 완성도가 조금 부족할지라도 깊이 고민하고 마침내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다면 과일 한 접시일지라도 그게 가장 훌륭한 요리일 수 있어요.

재킷, 팬츠는 Cos. 슈즈는 Giuseppe Zanotti. 셔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그래서 항상 물어봤군요. 이 요리는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웃음) 방송을 보는 내내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미션 주제이기도 했는데요. 당신의 인생 요리는 무엇인가요?
안성재 어려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생 요리는 없어요. 농구선수가 작년 챔피언십을 우승했다고 내일 있을 게임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요리예요.
하퍼스 바자 추억에 젖을 시간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거군요.
안성재 예전에 한번 추억에 젖었다가 혼쭐난 적이 있거든요.(웃음) 제가 만든 요리를 너무 뿌듯해하면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셰프가 “너 지금 뭐 해?” 하며 어이없어 하더군요.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 빨리 다음 요리 만들어야지!”
하퍼스 바자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 나오는 구절인데 어쩐지 비슷한 의미였을 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아마추어는 영감을 찾지만 프로는 그냥 아침에 일하러 나간다.”
안성재 그렇네요. 저도 누군가 물어보면 그냥 요리하러 간다고 말하지만 거기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죠. 네, 넷플릭스도 그냥 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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