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린 칼럼] 예술이라는 뻔뻔함

[김세린 칼럼] 예술이라는 뻔뻔함

문화매거진 2024-10-22 11:24:23 신고

▲ 톨스토이의 저서. 가장 심각해 보이는 표지로 골랐다 / 사진: 교보문고 홈페이지
▲ 톨스토이의 저서. 가장 심각해 보이는 표지로 골랐다 / 사진: 교보문고 홈페이지


[문화매거진=김세린 작가] ‘예술’은 꽤 근사하다. 내 입으로 내뱉기에 과히 근사해서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그 말이 혀끝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그것을 추구하는 내가 예술이라는 비장한 심판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무한하고 아득한 시공간 앞으로 순간 이동을 하게 되는 심정. 내가 하는 걸 예술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늘 머릿속 구상과 이상의 구체성을 확인한다. 작업은 내면의 갈등과 물음을 시각적 표현으로, 스타일로 구현해 내는 일이다. 흔히들 ‘작품’이라 부르는 작업의 결과물은 내게 만족의 대상인 동시에 나의 게으름과 보잘 것 없음을 비추는 자기반성의 거울이다. 사실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나의 사물들일 뿐이지만 편의상, 또는 나를 예우해 주시는 감사한 분들로 인해 대외적으로 ‘작품’이라 칭하곤 한다. 그래도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 번씩 그 표현에 담긴 질소 포장에 혀를 잘근 씹는다. 그렇다고 해서 적절히 부를만한 다른 이름을 찾기에도 애매한 일이다. 

어쨌든 계속해서 나아가는 과정에 있음을 의식하기에 타협한 명칭이 ‘작업’이다. 과정도, 그 결과물도 ‘작업’이다. 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스스로를 이렇게 애매한 형태로 얼버무려 칭하고 있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굳이 그래야만 하나 싶지만서도 최대한 과장의 껍데기를 거부하고 싶다. (그거라도 입고 싶을 때도 물론 있다) 어쨌거나 그렇거나 나의 소망과 궁극은, 그래도 예술이다.

한때는 본인을 추호의 거리낌도 없이 예술가라 칭하는 자신감을 보유한 사람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들은 대체로 예술이 뭔지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행동한다. 당시에는 그들이, 그런 모습이 정답 같았지만 예술은 뭐고, 또 예술가란 뭘까. 이제는 예술이 뭔지 안다고 확언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게 됐다. 예술이라는 전제 앞에서는 별것 아닌 말도 괜스레 의미심장하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그런 점이 예술이 뒤집어쓰고 있는 한 바가지의 환상적 면모일 것이다. 이 환상은 우스갯소리로 전락하거나 고귀한 혁명이 되기도 한다. 그 격차는 대체로 심각하다. 

백남준은 예술이 사기라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예술이 사기라면 사기 치는 본인도 속게 만든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야만 한다.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기 위해서는 때로, 꽤 자주 찾아오는 실낱같으면서도 강력한 확신에 기꺼이 속아야 한다. 그래야지만 그 확신을 실제적으로, 가시적으로 구현해 나갈 수 있다. 나만 알 수 없는 마음에 타인을 설득하고 끌어들이려는 노력. 내 눈에 보암직한 것을 궁금해 하지도 않는 남들에게 계속해 들이미는 일. 스스로 엄청난 사기꾼이 되기로 마음먹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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