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후의 책들

한강 이후의 책들

바자 2024-10-22 11:03:03 신고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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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작품 세계는 넓다. 일생 그가 집필한 작품들을 되짚으며 공통적으로 발견한 세 가지 키워드를 건져 올렸다. ‘주체적 여성의 목소리, 생태적 사고, 역사를 기억하는 노력’. 비슷한 주제 의식에서 출발하면서도 외연을 한 층 넓혀가는 국내외 여성 작가들의 작품 다섯 권을 골랐다. 한강 작가가 가져다 준 울림이 오래 오래 남기를, 그 울림에 매료된 이들이 책 읽기를 멈추지 않도록.

기억 파헤치기 〈몸 번역하기〉, 캐시 박 홍
사진/ 마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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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언어와 몸의 경계, 충돌을 파고드는 캐시 박 홍의 첫 시집. 한국어판에는 영어 원문과 한국어 버전의 시를 병기했다. 이미 〈마이너 필링스〉로 한 차례 국내에서 주목받은 캐시 박 홍은 과거 자신의 기억이 모두 고스란히 몸에 남아있음을 알아차리고 토해내듯 쓴다. 모국어와 영어라는 언어 사이에서 고립되며 자신을 버려야 했던 비참함부터 미국 사회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가는 막막함까지. 영어와 한국어를 교차하며 낭독하거나, 〈마이너 필링스〉와 병렬 독서하면 매우 새롭게 다가올 것.

"나는 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 팔꿈치에서 코, / 정강이에서 눈, 목에서 가슴, 머리부터 발끝까지" - 시 '통과의례' 중

실컷 애도하기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진은영
사진/ 마음산책 제공
사진/ 마음산책 제공
등단 후 24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출간한 진은영 시인의 산문집. 진은영 시인은 지난 2019년 한강 작가와 함께 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했다. 책 읽기는 그가 예리한 사회적 감수성을 담아낸 시를 써 올 수 있던 자양분이자 고통과 슬픔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낸 숨구멍과도 같다. 진은영 시인은 앤 카슨이 오빠의 죽음 앞에서 기리며 쓴 책 〈녹스〉를 읽고 이태원 참사를 떠올린다. 책은 좋은 작품을 찾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게 해주며 삶의 어려움에서 지탱할 힘이 된다.

“다른 존재들을 구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거창하게 새로운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늘 하던 대로, 그러나 에너지의 방향을 조금 바꿔서, 매일매일 움직이면 될 뿐. 우리의 사랑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듯 구원도 혁명도 그럴 것이다.” -p.205

자연과 하나되기 〈떠오르는 숨〉, 알렉시스 폴린 검스
사진/ 접촉면 제공
사진/ 접촉면 제공
번역서의 원제는 ‘익사하지 않는다’는 뜻의 Undrowned. 흑인 여성의 정체성을 이야기해온 페미니스트 작가 검스는 바다를 누비며 고래와 돌고래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포유류의 세계를 만난다. 심연만큼이나 깊은 바다에서 우리는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페이스북에 올린 포스팅을 엮었기 때문일까. 깊은 바닷속과 삶을 교차하는 자기 고백적 이야기는 사적이어서 더욱 시(시)적이다. 책은 ‘흑인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에서 출발해 뿌리를 찾아가면서도 독자에게 뜨거운 사랑 고백을 멈추지 않는다. 아름답고 알쏭달쏭한 비유와 수사를 덧대어 겹치면서.

“호흡과 깊이와 여러분의 삶. 그것은 은밀함과 구체성, 당신만의 방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구 그 자체, 본래의 고요함입니다. 당신이 이미 가진 것입니다.” p.185

발자취 따라가기 〈진리의 발견: 앞서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사진/ 다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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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설을 설파한 과학자이자 천체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여성의 역사를 만나 우주보다 더 멀리 간다. 2020년 출간된 당시,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고 그 지평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개정 증보판이 출간되며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 마리아 포포바는 개인 블로그를 발전시켜 문예 비평과 콘텐츠 제작 플랫폼 ‘The Marginalian’을 운영해온 인물. 그는 지극히 남성주의적 과학 분야에서 없던 길을 내 걸어온 여성들의 이름을 외는 일, 역사를 발견하는 일만으로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전환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구의 표면에서 어느 정도 높은 곳에 이르면 폭풍우의 소음이 멈추고 천둥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그 드넓은 영역에서 천체는 영구하고 장엄한 고요 속에서 자신의 궤도를 돈다.” -p.128

완전하게 솔직해지기 〈가장자리를 위한 복수노트〉, 연혜원
사진/ 화이트리버 제공
사진/ 화이트리버 제공
활동가이자 젊은 연구자 연혜원이 쓴 짧은 희곡.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주인공 미현은 대통령을 향한 ‘복수’를 시도한다. 복수의 방식은 다름 아닌 가발 벗기기다. 여기서부터 웃음이 난다. 하지만 미현이 가발 벗기기를 계획하는 동안 대통령은 암살당한다. 과연 성공한 복수는 어떤 것일지 묻기 위해 암살자를 찾아가면서 극의 긴장은 고조된다. 18개의 짧은 막을 지나 가장자리에 선 사람의 복수에서 출발한 질문은 용서, 사과하는 마음과 뒤엉키고 섞인 채 모호해진다. 바로 그 혼돈 속에서 우리는 질투와 오해를, 앞으로 추동하는 화해와 사랑을 맞닥뜨린다.

“복수도 쉬엄쉬엄해야지. 지금 이 연극처럼.” – 16막, 혜원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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