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수억 원대 시세 차익이 보장되는 이른바 '로또청약'이 최근 연이어 시장에 등장하면서 청약 가점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있다. 무주택 15년·4인 가족 등 고가점 통장들도 청약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청약제도를 둘러싼 불신이 커지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현재 가점제를 중심으로 한 청약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3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공급되는 '청담 르엘'은 지난달 30일 청약 당첨자 발표 결과 모든 주택형의 최소 당첨 가점이 74점을 기록했다.
전용면적 59㎡ A·B타입, 전용면적 84㎡ A·B·C타입 등 5개 주택형 모두 74점으로 커트라인이 형성됐다. 74점은 5인 가구가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을 유지하고, 청약저축에 가입한 지 15년 지나야 가능한 점수로 5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만점에 해당한다. 이번 청약에서 최고 당첨가점은 전용 84㎡ B형에서 나온 81점으로 7인 이상 되는 가구만 받을 수 있는 점수다.
올해 모든 유형에서 74점 이상 커트라인이 나온 것은 청담 르엘이 처음이다. 앞서 8월 분양한 서초구 방배동 '디에이치 방배'는 10개 주택형 중 7개 주택형 최소 당첨 가점이 60점대였다. 7월 공급된 강남구 도곡동 '래미안 레벤투스'도 60점대에 형성됐다. '20억 로또'로 불린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역시 일부 주택형은 최저 당첨가점이 74점을 넘지 않았다.
청담 르엘 사례에서 보듯 치열해진 청약 경쟁으로 이미 강남권에서는 4인 가구, 15년 무주택 만점(69점)도 청약 안정권으로 안심할 수 없게 됐다. 한국부동산원이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일반공급 가점제 당첨자(7월 말 기준) 655명 중 가점 70점 이상은 220명(33.6%)이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에서는 70점 이상 당첨자 비중이 83%에 달했다.
갈수록 청약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청약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양가족이 청약 당첨 여부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행 청약제도는 달라진 가족형태와 인구구조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32점), 청약 저축 가입 기간(17점), 부양가족 수(35점)별로 점수를 매겨 합산 점수(총점 84점)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정한다. 부양가족 수가 많을수록 유리한 구조다.
이러한 청약 가점제가 위장 전입 등 편법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불법전매 및 공급질서 교란행위 적발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위장 전입으로 적발된 부정청약 건수는 2020년 134건에서 지난해 277건으로 107% 늘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기존 청약제도는 가점에서 불리한 예비 청약자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청약하지 않는 한 당첨이 사실상 어려운 구조"라며 "연령이 높을수록 유리한 구조가 아니라 연령대별로 골고루 당첨될 수 있도록 청약 제도로 개편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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