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럽고 삼삼한 호기심, 이슬기

의뭉스럽고 삼삼한 호기심, 이슬기

엘르 2024-07-27 00:00:05 신고

〈삼삼〉은 갤러리현대에서 오랜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2015년부터 시작된 ‘이불프로젝트’부터 신작 ‘현판프로젝트’까지. 그간의 작품을 폭넓게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어떤 식으로 구상했나
몇 년 전부터 탐구해 온 ‘문’이라는 주제를 다르게 풀어낼 수 있는 기회였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 미술관을 공공장소로 생각하고 ‘문을 여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문의 안과 밖, 그 경계를 흐렸다고 할 수 있다. 갤러리에 가상의 구멍을 뚫고 빛을 가져와 전시장에 노을이 스며드는 장면을 떠올리고, 동쪽 벽을 살굿빛으로 도색했다. 모든 조명이 모시 단청 벽화를 향하게 하면서 벽에서 반사된 은은한 빛이 작품을 비추는 걸 상상했다. 벽 자체가 작품이 되면 어떨까 싶었다.

호기심이라는 욕구는 당신 작업의 근원적 동기다. 우연히 접한 지방 민요에 대한 관심으로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에서 노래의 기원을 찾았고, 통영의 누비 이불 장인과 멕시코 바구니 장인들을 만나 협업하지 않았나. 사람과 사물, 문화를 향한 순수한 궁금증으로 이불, 바구니, 문살 등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인 것은 다름 아닌 현판이다
2023년, 부모님 댁에 갔다가 대구박물관에서 조선 현판에 관한 전시를 봤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현판이 새롭게 보였다. 대문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 심지어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담겼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현판 위의 글자 역시 그래픽적 요소로 다가왔다. 한자가 아닌 한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출발점이 됐다. 보통 현판은 높게 걸려 있기 마련인데, 전시장에서 본 현판은 낮게 놓였더라. 가까이서 보니 글자 하나가 사람만 했다. 새삼 현판의 존재감이 강하게 다가왔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큰 나무처럼. 이는 현판이 말을 하는 상상으로 이어졌다.

당신의 현판에는 ‘쿵쿵’ ‘스르르’ ‘출출’ ‘부시시’ 같은 의성어가 새겨져 있다. 중요한 의미를 담은 기존 현판과는 대조적이다
현판 작업에는 전통 가옥에서 많이 쓰는 홍송을 사용했는데, 4cm 두께의 현판을 구현하려면 큰 나무가 필요했다. 그로부터 퍼져나간 상상에서 비롯된 단어들이다. 고질라처럼 거대한 나무가 소리치며 지나가고, 그 옆에 있을 법한 커다란 폭포에서 물이 ‘출출’ 떨어지는 장면을 생각했다. ‘쿵쿵’이나 ‘스르륵’은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 단어를 양각으로 새기고, 단청에서 백색 안료를 뜻하는 지당으로 기호화된 다른 글자를 겹쳤다. 그렇게 완성된 현판에는 ‘쿵쿵’과 ‘덕’, ‘스르륵’과 ‘쉬’, ‘출출’과 ‘쏴’, ‘부시시’와 ‘ㅎ(히읗)’이 공존한다. 이 단어들을 유추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불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덮고 자는 사람의 꿈에 영향을 미치는 주술적인 조각’이라고 한 적 있다. 당신의 현판은 사람들에게 어떤 조각일까
나무는 살아 있는 재료이고, 편안함을 선사한다. 내게 현판은 ‘만화 칸’ 같은 존재다. 크고 두꺼워 다소 위협적으로 보이는 나무 위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의성어가 적힌 모습은 꽤 즐길 만하지(playful) 않은가. 어지러운 세상에 재미와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전통 공예 장인들과 꾸준히 함께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협업’을 향한 본능적 끌림인가
현판 작업 역시 CNC 서각 장인, 단청 장인과 함께했다. 서각 작업은 기계를 이용하지만 무척 정밀한 작업이었다. 그 위에 중첩된 흰 글자는 단청 장인들이 직접 붓으로 그린 것이고. 흘림체 글자는 기계로, 기하학적 모양의 반듯한 글자는 손으로 쓴 것이라는 게 재미있는 부분이다. 단청 같은 전통 안료에는 목재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제 페인트로도 단청과 유사한 효과와 느낌을 낼 수 있다. 장인들도 처음엔 페인트를 권하더라. 나는 꼭 단청이어야 한다며 간곡히 부탁했다. 내게 그 두 가지는 엄연히 다를뿐더러 무엇보다 장인들과 함께하며 얻는 배움과 즐거움이 크다. 작업방식부터 공동체를 이뤄 생활하는 방식까지, 그들과의 협업은 미지의 세계를 조우하는 일과 같다. 작업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좋다. 내게 미술이란 그런 것이다.

협업을 잘하는 비결은
관찰과 열린 마음.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주길 요청하기보다 함께 논의하며 새로운 결과물을 만드는 게 더 좋다. 2001년, 파리 10구에 ‘파리 프로젝트 룸(Paris Project Room)’이라는 작은 대안 공간을 마련해 매주 새로운 전시를 열었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는 마르셀 왈라스(Marcel Wallace)라는 가상 인물을 공간 디렉터로 소개했는데 “나 마르셀 왈라스 만난 적 있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웃음). 이 경험으로 1 더하기 1은 3이 된다는 것, 협업을 통해 더 새롭고 재밌는 일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빛바랜 전통부터 지극히 평범한 사물까지, 이슬기의 작업은 현대미술로 보기 애매한 것들을 동시대 예술의 자리로 가져온다
기능을 가진 사물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봤을 때 “우아!” 할 만한 예술은 내게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흥미롭다. 누비 이불이나 바구니를 작품화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일상에서 사용하는 하찮은 사물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사물이 살아 있는 존재라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우리는 이 존재를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까? 사물과 새로운 교감을 맺는 방식을 꾀한 셈이다.

여러 작업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성애적 요소다. 몇몇 작품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강한 성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바가텔’은 핀볼 게임 기구로 여성의 신체와 성적 행위를 형상화한 것이고, ‘쿤다리’ 시리즈 역시 선사시대의 여성 생식기 표현에서 영감받은 것이다
성을 함축하고 기호화해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내겐 흥미롭다. 예부터 여자들이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헤프게 여겼는데, 이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실라나기그(Sheela-na-gig)’라는 중세시대 조각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지? 아일랜드나 영국 지방의 교회와 성에서 발견되는 조형물인데, 무척 과장되게 여성의 음부를 드러내고 있다. 너무 웃기면서도 새롭더라. “그래, 나는 여자야!” 하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같아서 ‘걸 파워’마저 느껴졌다. 꿈을 하나 말해 보면 언젠가 포르노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완전히 하드한 스타일로(웃음).

예술 작품의 엄정함을 의도적으로 비껴나가는 듯하다.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없는지
질 들뢰즈는 “표면이 더 깊다”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어느 수학자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됐다. 아코디언처럼 접은 종이를 생각해 보라. 표면 아래 깊이가 존재하지 않나.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전시장 벽에 그린 ‘모시 단청’ 역시 그러하다. 일반적으로 단청에서 잘 쓰지 않는 밝은색을 썼는데, 밝은색은 칠할 때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두고 장인들이 “붓이 잘 안 나간다”고 표현하더라. 가볍고 간단해 보이지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 셈이다. 물론 보이는 그대로 가볍게 즐겨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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