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아는 맛이 무섭다

[윤건호의 예술의 구석] 아는 맛이 무섭다

문화매거진 2024-04-28 21:46:18 신고

▲ 아는 맛이 무섭다 / 그림: 윤건호
▲ 아는 맛이 무섭다 / 그림: 윤건호


[문화매거진=윤건호 작가] 직업병이 도진다거나 전공이나 관심사에 따라 예민해지는 부분들이 있다. 디자이너들의 폰트 배열에 대한 집착과 일러스트레이터들이 rgb로 인쇄된 노란색에 일으키는 경기, 아는 맛이기 때문에 몸에 배어 있고 참지 못하는 그런 부분.

나의 경우 이미지가 활용되는 방식, 그에 대한 인식에 예민함이 도진다.

우리 주변엔 사진, 디자인 포스터, 일러스트 포스터 등 프린트기를 이용한 인쇄물이 무수히 많다. 개인의 방, 집안 거실, 카페, 쇼룸 등 공간들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개성을 표현할 인테리어 ‘소품’으로 시각적인 이미지는 중요한 요소다. 인테리어용으로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만 ‘소품’으로만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보니 의미가 가벼워져만 가는 듯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지’는 그저 장식용으로 취급되는 것이 일반적인 듯 하다. 

흔히 ‘인스타 갬성’을 자처하는 공간들의 경우, 방문과 동시에 예민함이 발동할 때가 많다. 공간의 벽이 완성되어있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벽이 휑하게 비어있는 곳은 ‘애정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개성을 강조하는 시니컬함보단 별 의미 없는 ‘꾸민 듯 안 꾸민 듯’의 자세로, 무관심과 가벼움으로 와닿으니 그저 사업장 같을 뿐이다. 설득력을 갖춘 ‘빈 벽’의 공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무미건조한 감각만 전해주기에 달아나는 정을 따라 나도 나가게 된다.

이 지점, 어쩌면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과 그에 대한 인식의 결여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는 가볍게 활용하면 가벼움만 남는다. 디지털 프린트된 이미지가 갖는 최대 단점 중 하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정이 간소화되었다는 점이다. 잉크, 레이저 등 여러 방식이 있지만 그럼에도 디지털 프린트된 이미지가 작품으로써 밀도가 낮은 것은 기계적인 프린트 과정에 의도와 우연성을 담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형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간소화되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들여다볼 이유나 여지가 사라진다. 한 장의 이미지가 주는 에너지를 온전히 비주얼로만 느껴야하는 것이다. 사진 또한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도 하는 만큼 촬영과 현상의 과정에서 모두 빛을 활용하지만, 프린트에서는 굳이 빛이 없어도 된다. 이렇듯 본질이 줄어들고 시각적인 비주얼만 표현하게 되는 것이 디지털 프린트의 약점이다. 사진을 현상해봤거나 원화를 벽에 걸어본 사람들은 무슨 맛인지 알 것이다. 

고지식한 전통을 지키는 것에 별 관심 없어도 현상된 사진과 질감이 느껴지는 원화를 공간에 두면 그다음부턴 프린트된 이미지들로는 만족을 못 하는 몸이 되어버린다. 단순히 보는 것보단 개성과 감성을 담고, 나를 담는 감상적 요소를 두고 싶어진다.

‘보는 것’과 ‘감상’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 

이미지는 ‘보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소품’, ‘감상’으로 마무리하면 ‘작품’이 된다. 나를 대변하고 나와 공감하고 나를 아우르는 이미지로 공간을 채운다는 것은 장식을 넘어 ‘나’로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이미지에 고찰, 철학, 기술, 열정 등의 두터운 과정이 온전하게 담긴 작품들의 맛을 보고 나면 이미지 하나로 정이 붙었다 떨어졌다… 예민해진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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