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이끌면서 나는 과감하게도 '완벽을 추구하라'는 주문을 한다. 나 또한 완벽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하게 쓸 순 없어요. 하지만 완벽을 추구해야 합니다. 글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닐지라도 각자 나름대로 완벽을 추구하세요. 절대 대충 쓰면 안됩니다. 일필휘지로 끝내는 글은 없어요. '밀 퇴'(推)와 '두드릴 고'(敲)를 놓고 고심했던 당나라 시인 가도처럼 단어 하나 고르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세요." 대충 이 정도로 압박한다. 완벽을 추구하라는 건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나는 꽤 열정적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스스로 글쓰기 수업을 찾아오는 수강생들 역시 열정 많은 부류다.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열정은 끝까지 좇으면 완벽 언저리에 맞닿아 있다. 나의 에너지를 모아 그들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다. 일단 쓰고자 결심한 이들은 정말 정성을 다하기 시작한다.
완벽하고자 노력한다거나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요즘 들어 빛바랜 구호가 된 느낌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면 나를 돌보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는 인상을 준다. 고단했고, 지쳐버린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더 잘하고자 애쓸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어지기 쉽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적당히' 풍조에는 쉽사리 마음이 가지 않는다. 피겨퀸 김연아의 '클린한 연기'처럼 한 점 실수 없는 결과물을 깊이 동경하는 까닭일까.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완벽할 수도 없지만, 완벽을 향한 갈망을 버리고 싶진 않다. 더 나아지고픈 마음이 동반하는 열정과 노력의 활기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에서 만난 이들에게 어떡하든 최선을 다하라고 집요하게 주문한다. '빡세다'고 느낄 법한데도 의외로 반응이 좋다. 수업 시간 눈빛에서, 보내오는 글에서 열정과 노력을 읽는다.
완벽에 가까운 건 감동을 준다.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대충해선 결코 얻을 수 없는 진정성이 녹아 있다. 거듭 수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그렸던 세잔은 100번을 작업한 끝에 정물화 한 점을 완성했고, 인물을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다. 세잔이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고 싶었던 헤밍웨이는 자기 글을 200번 넘게 읽으며 고치고 또 고쳤다. 죽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냥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함께 수업하는 이들의 글을 기다리는 봄이다. 작가들은 말한다. 글을 쓴다는 건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 이야기를 듣는 일이라고.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쓰기 과제를 해야 하는 수강생들이 제 마음을 듣는 일에 정성을 다했으면 좋겠다. 단, 최선을 다하는 건 마감시간까지! 원고는 언제나 마감에 맞춰 도착해야 한다.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일을 끝낼 수 있는 원칙이다.
조민진 작가.
Copyright ⓒ 머니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