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10년 전 오늘, 진실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10년 전 오늘, 진실과 함께 침몰한 세월호

머니S 2024-04-16 06:1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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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았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사진. /사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가 10주기를 맞았다. 사진은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사진. /사진=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참사 이후 10번째 봄이 돌아왔다.

지난 2014년 4월16일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다. 수학여행을 위해 제주로 떠나던 여객선 세월호가 안산 단원고 학생과 선원, 여행객 등을 태운 채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지만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에도 유가족은 여전히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간절한 마음으로 명확한 진상규명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를 덮친 비극… 그날의 재구성

지난 2014년 4월16일 안개를 뚫고 무리하게 출항한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뉴시스 지난 2014년 4월16일 안개를 뚫고 무리하게 출항한 세월호가 침몰했다. 사진은 지난 15일 경기 안산시 4.16 민주시민교육원에 마련된 단원고 4.16 기억교실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는 시민들. /사진= 뉴시스
세월호는 지난 2014년 4월15일 밤 9시 짙은 안개를 뚫고 인천항을 출항했다. 안개로 다른 여객선은 모두 출항을 취소했지만 세월호만 유일하게 인천항을 출발했다. 적자에 시달리던 해운사가 여객·화물 운임 등 수천만원의 손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이준석 선장은 평소 세월호를 몰던 선장 신모씨가 휴가 중이어서 투입된 '대리선장'이었다.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는 유난히 조류가 빨라 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하필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지날 당시 조타실 지휘를 박한결 3등 항해사 맡았다. 늦은 출항을 고려치 않은 근무 시간표로 초보인 박 항해사가 운항을 맡게 됐다. 위험 지역은 선장이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당시 이 선장이 침실에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검찰 조사에 따르면 당시 세월호는 맹골수도에서 크게 선회했다. 이때 화물이 움직여 선박이 기울었고 화물적재구역 측면문과 선미 차량 출입문을 통해 물이 들어왔다. 당황한 항해사의 조타 미숙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강해성 통신관과 이준석 선장은 물이 범람하는 상태임에도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다. 또 일부 선원들은 승객 구조조치는 하지 않은 채 캔맥주를 마시며 해경의 구조를 기다렸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라 승객은 선실에 머물렀지만 이 선장과 선원들은 배를 떠났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해경은 탈출한 선원들을 먼저 구조했다. 해경이 선내에 들어가 승객들을 직접 구조하거나 탈출에 대한 방송이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큰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결국 침몰 이틀째인 4월18일, 세월호는 침몰해 수면 아래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사라진 7시간, 돌아오지 못한 304명

지난 2014년 사건 당일 세월호 희생자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든 채 세월호 참사와 관련 언론의 오보와 선정보도를 규탄하고 있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 /사진= 뉴스1 지난 2014년 사건 당일 세월호 희생자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오보가 나왔다. 사진은 지난 2014년 5월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든 채 세월호 참사와 관련 언론의 오보와 선정보도를 규탄하고 있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들. /사진= 뉴스1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11시3분 사상 최악의 오보가 나왔다. 해당 소식이 들어오자 단원고 학생들의 학부모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해군 함정도 동원해 구조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도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이 역시 오보였다. 실제 현장 인근에는 해경 소속 경비정 한척과 민간 어선들이 전부였다. 치명적인 오보로 구조 작업은 더욱 지체됐고초기 대응에 혼선을 유발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였다.

현장과 이를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의 혼선으로 유가족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당시 사고자의 가족은 강당에 모여 구조 관련 소식을 기다렸지만 현장 상황이 브리핑하는 정부 관계자의 말과 크게 다르자 불신은 점점 커졌다. 결국 구조 작업과 경위에 대한 음모론과 허위성 글들까지 판을 치며 생존자 구조를 위한 골든아워는 모두 소진됐다.

여기에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는 초기에 사실상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행적을 감췄다.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세월호 참사, 그로부터 10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앞에서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이행을 촉구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단. /사진= 뉴스1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은 지금까지도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 앞에서 진실규명과 안전사회 이행을 촉구하고 있는 세월호 참사 10주기 전국시민행진단. /사진= 뉴스1
구조된 학생들 역시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당시 수학여행 총책임자 자격으로 세월호에 동승했던 단원고등학교 교감은 자신만 구조된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들은 처벌을 받았다. 이준석 선장은 지난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해 세 차례의 조사위원회, 특검, 검찰 특별수사단이 각종 의혹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좌초 원인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나아가 잊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월호 단체와 유족은 이제라도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에 대한 제대로 된 진상 규명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4·16 세월호참사 10주기위원회는 지난 1월 "세월호 특별조사기구 조사는 종료됐지만 국가 폭력의 윤곽이 드러났을 뿐 침몰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며 정부에 미공개 정보 공개 및 추가 조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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