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당'의 역습, 또다른 혐오 대상 '고령자 씨'가 걱정된다면?

'이준석당'의 역습, 또다른 혐오 대상 '고령자 씨'가 걱정된다면?

프레시안 2024-04-13 05:03:40 신고

3줄요약

4.10 총선 결과의 특이점 중 하나는 개혁신당이었다. 후보 리스크가 생긴 더불어민주당의 틈새를 파고든 이준석 대표가 끝내 지역구를 뚫어냈고, 그의 측근인 천하람 당선인까지 비례대표로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거대양당과의 관계를 단절한 다른 제3지대 정당들이 모두 원내진입에 실패했음을 생각한다면, 가히 역습이라 부를만 한 결과다.

다만 이 역습을 가리켜, 애초 개혁신당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 통합 당시 각 진영이 공유하던 청사진이 완성됐다고 평가하긴 힘들어 보인다. 이낙연(새로운미래) 대표의 이탈이나 양향자(한국의희망) 의원과의 불협화음 등 이슈들을 차치하더라도, 선거 종반 개혁신당의 모습은 제3지대 통합당이라기 보단 오롯한 '이준석 신당'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신당의 중심, 정치인 이준석의 모습은 그가 기득권의 중심에 섰을 당시인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시절과 같았다. 안티 페미니즘의 기수를 자처하고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의 대결로 이슈를 끌어 모으던 그 모습 말이다. (☞ 관련기사 :4수 끝에 국회 입성한 이준석, '안티페미 정치' 계속할까)

'노인 무임승차제 폐지', '직렬에 따른 병역의무화' 등 사회적 약자를 저격하는 공약이 내세워졌고, 선대위는 난 데 없이 여성할당제와 비동의간음죄를 공격하며 '안티페미' 정체성을 다시 공고히 했다. 그나마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던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선택 측은 류호정 전 의원의 후보 사퇴 등과 함께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이 대표의 두드러지는 정체성이 '안티 페미니즘 정치의 기수'인 만큼, 개혁신당의 원내진입은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정치의 재현을 경계케 한다. 다만 이 글에선 앞서 이 대표가 직접 공약한 바 있는 노인 무임승차제 폐지를 돌아보며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혐오 대상, '고령자 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사토 신이치 지음, 유윤식 옮김 ⓒ한겨레출판

책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의 저자 사토 신이치는 한국보다도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에서 최고의 노년 심리학 전문가로 불린다. 제목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고령자 씨'란 명칭은 노인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저자는 노인에 대한 애정과 친근함을 담아 노인을 고령자 씨로 부르자고 책에서 제안한다.

저자가 이 명칭을 제안한 이유는 단순히 듣기 좋은 말을 위해서가 아니다. 고령자 씨의 정의에 대해 그는 "단순히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풍부한 경험에 근거하여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은 말과 행동으로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즉 많은 사회에서 '노인'이란 단어 자체가 편향된 의미를 담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들(노인)을 단순히 늙은 사람으로 파악하여 상상 속의 노인으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생산성이 결여됐으며, 무조건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고, 감정의 기복이 크고, 또 본인의 경험만을 진리로 떠받드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이미 '노인'이란 단어에 내재돼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같은 '상상 속의 노인', 아니 '노인을 멋대로 상상하는 우리'의 모습을 한국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틀딱'이란 멸칭은 이제 새롭지도 않다. 다시 정치판으로 이야기를 돌려봐도 그렇다. 각 진영이 서로의 진영 내 노인들을 가리켜 '태극기세력'이나 '반일국뽕세력'이라 조롱한 지 오래다.

이번 선거만 해도 '적 진영이 노인을 동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정청래 의원)는 취지의 말이 나오는가 하면, 반대로 '젊은이가 망친 나라를 노인이 구해야 한다'(김진 논설위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두 문장은 얼핏 달라 보이지만 모두 본인 상상 속의 고령자 씨를 자기 진영의 유불리에 맞게 동원한 결과다.

개혁신당의 공약으로 돌아와 보자. 이 대표는 지난 1월 본인의 노인 무임승차 폐지 공약과 관련 김호일 대한노인회장과의 토론에서 "4호선 51개 지하철역 중 가장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역이 어딘지 아나? 경마장역"이라며 "이게 어떻게 젊은 세대에 받아들여질지 한 번 살펴봐야 된다"고 말했다.

방송 이후 그의 말이 통계적으로도 부정확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는 애초 노인의 행복추구권을 무시한 발언이었다. '노인이 생산성과 무관한 오락행위를 위해 젊은이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이미지를 활용한 발언,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고령자 씨는 능력이 떨어지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고 부정적으로 보아 차별"하는 '연령 차별주의'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왼쪽)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오른쪽) ⓒCBS <김현정의 뉴스쇼> 화면 갈무리

그렇다면 고령자 씨 차별주의는 왜 발생하고, 우리는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무임승차제 폐지 공약 비판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어려운 답을 내놓는다. 바로 고령자 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오해는 편견이 되고, 편견이 구조화되면 곧 이는 차별이 된다.

물론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라는 지당한 말씀은 어디서나 찾기 쉽다. 다만 이 책의 미덕은 그 이해를 위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저자는 고령자 씨가 처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고충과 상실감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가령 고령자 씨는 왜 고집이 세고 화가 많을까? 저자는 신체 능력과 인지 기능의 쇠퇴에 따라 본인의 유능감과 현실의 간극이 커지며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 쌓여버린 스트레스엔 매운 작은 스트레스도 '최후의 한 방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무리 조심하라고 일러도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하는 건 고령자 씨가 무능력하기 때문일까? 저자는 보이스피싱 가해자들이 퇴직과 자식의 독립 이후 고령자 씨를 찾아오는 무력감과, 경제활동을 향한 의욕을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인지하고 또 편견에 쌓여 바라보곤 하는 고령자 씨들의 특성과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 그리고 우리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지를 포괄해 무려 112개의 키워드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새해 첫 날인 1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에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노인 무임승차제 폐지 공약으로 시작했지만 이 글은 사실 해당 공약 자체가 타협의 여지없는 혐오라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연령 차별주의에 기반해 정책을 정당화하지 않는 방식이라면, 점점 초고령화가 진행되는 우리 사회에선 노인복지의 변화 또한 피할 수 없는 변화 중 하나일 테다.

가령 저자는 책에서 점점 변하고 있는 고령자 씨들의 신체적·심리적 나이를 반영해 65세~74세를 준고령자로, 75세~89세를 고령자로, 90세 이상을 초고령자로 재정의해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 개혁신당에 속한 금태섭 전 의원도 새로운선택 시절 제시했던 노인 무임승차제 단계적 연령 상한 제도를 통해 이 같은 '변화'를 노인복지 제도에 반영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즉 노인복지에 대한 앞으로의 논의는 '고령층에 시혜를 베풀 것인가, 말 것인가' 따위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논의는 편견과 차별에 기반한 공격이나, 생산성을 기준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누구든지 안심하고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지에 대한 논의다.

그러기 위해선 나이든 이들이 겪는 변화, 또 내가 나이가 들면서 겪어갈 변화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사회가 나이든 이들과 적절하게 소통하고 있는지, 그들을 소외해 '경마장' 구석으로 밀어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결국 필요한 건 말을 거는 일이다.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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