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여성 아티스트4

떠오르는 여성 아티스트4

바자 2023-10-15 00:00:00 신고

이목하 Moka Lee
제기동의 한 골목, 원로 화가들이 모인 어느 미술협회 사무실이 자리한 건물 한 층에 1996년생 화가 이목하의 말끔한 작업실이 자리한다. SNS에서 포착한 초상들이 각자의 서사를 짐작케 만들며 홀로 작업하는 공간을 단단하게 메운다.
 
Q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개인전 «창백한 말»을 앞두고 있다. 재작년 최지원 작가와의 2인전 «0인칭의 자리»와 올해 초 아트 바젤 홍콩에서 본 그림보다 2배 가까이 캔버스의 크기가 커졌다. 

A 지난해 연말 더 넓은 규모의 작업실로 이사한 뒤 인물의 크기를 거인처럼 키우고 싶었다. 관람객과 인물이 비슷했을 때 해석에 있어 한계가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이 강조된다거나 인물을 약자처럼 여기는 해석을 피하고 싶었다. 캔버스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인물이 무대로 등장하는 듯한, 선언적인 인상을 주는 것 같아 효과적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대신 물감의 농도나 시야의 거리를 완전히 새로 조정해야 해서 적응하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웃음)

Q SNS 알고리즘을 통해 발견한 인물을 그리는 방식으로 이목을 끌었는데, 섭외는 주로 DM으로 하나? 인물들의 성격이나 배경을 파악하기 위해 교감하는지도 궁금하다. 

A 애초에 나라는 사람이 인간관계를 맺을 때 직접적인 관계를 많이 맺는 편은 아니다. 내 세대의 특성일 수도 있고, 언택트 만남이 자연스러운 관계 방식이다 보니 그대로 드러난 것 같다. DM으로 나는 이런 작업을 하는 작가라 설명하는데, 인물과 교감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사진을 관찰할 뿐이다. 작업이 완성되면 공유한다. 전시에서 처음 본 사람도 있고 한 번도 못 본 분들도 있다. 개인적인 취향으로 얼굴에 굴곡이 확실한 인물을 선호한다. 빛이 비추었을 때의 모양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는 없기 때문에, 낚싯대를 던져놓는 것처럼 계속 기다리다가 발견하게 되면 엄청 긴장한 채 메시지를 보낸다.

Q 잉크젯 프린터가 CMYK 컬러를 출력하듯이, 색을 하나씩 쌓아가는 방식을 따른다. 필름 사진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하고. 지금 작업실에 보이는 미완성의 작업 역시 채도가 낮은 푸른색이 깔려있다. 

A 매우 얇은 면포를 패널에 배접한 다음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최대한 수채화처럼 얇게 올려 그리려 한다. 처음 이미지를 보고 기저에 가장 지배적인 색으로 채우고, 그 다음 색상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최소 5차례 이상 완성을 거치는데, 물감이 두껍게 굳지 않도록 축적하는 게 관건이다. 유화지만 흰색을 칠하지 않고 동양화처럼 그대로 빈 공간을 비워두고, 검은색을 쓸 때는 얇은 질감을 위해 먹을 섞어 쓰기도 한다.

Q 〈Ego Function Error〉 시리즈를 선보이다가 크기가 커진 신작에는 〈Surface Tens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A 성장 과정에서 한 사람의 자아가 만들어지면서 생기는 사건이나 감정을 그린 것이 〈Ego Function Error〉 시리즈였다면, 신작은 감정이 극한까지 달한 순간에 한 발짝 들어가 포착한 것이다. 컵에 물을 가득 따랐을 때 마지막 한 방울을 떨어뜨리기 전 넘치지 않기 위해 튀어오르는 순간을 ‘표면장력’이라고 하지 않나. 인물의 표정을 보면 웃는 듯 우는 듯 알기 어려운 상태가 많은데, 감정을 보다 세밀하게 관찰해보고 싶었다.

Q 이번 개인전에서 정물화를 처음 선보이는데, 고전적인 회화의 인상을 준다. 

A 케이크라는 대상에 예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는데, 겉면은 석고상처럼 단단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장식이 있지만 내부를 커팅해야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게 흥미롭다. 금붕어를 그리게 된 건 나에 대한 은유에 가깝다. 웹상에서 사람들을 관찰자로서 바라보지만, 내가 관찰을 받기도 하는 상황을 표현했다. 예측할 수 없는 누군가의 시선과 군상들을 물고기로, 웹의 스크린을 어항 막으로 여겼고 위협적인 정서를 묘사하고자 했다.

Q 동시대 여성의 초상을 그린다는 확고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면서 점점 달라지거나 새롭게 깨닫게 되는 점이 있나? 

A 세대를 대변하겠다거나 젊음을 그리겠다는 의도보다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대상이기에 동시대 여성을 그려온 것이다. MZ 작가 같은 키워드로 관심을 받아왔지만 점차 페인터로서의 내 자아가 확실하게 각인되면 좋겠다. 작업을 시작할 때 나 역시 20대 초반의 여자아이였기에 부유하고 불안정한 상태였고, 내면의 결핍을 스스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타인을 관찰하게 되었던 것 같다. 계속해서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순간을 내 시선으로 포착한 회화작업을 지속하고 싶다.  

글/ 안서경, 헤어 amp; 메이크업/ 김지혜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이목하 작가를 만나고 인스타그램 돋보기에 뜨는 낯선 얼굴들을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이유성 Eusung Lee
용산전자상가 인근에 자리한 이유성 작가의 작업실에 펼쳐진 각양각색 형태의 조각들엔 그가 사회에서 마주한 고정관념을 깨부수고자 한 염원이 담겨있었다.
 
Q 최근 서울시립미술관 신진 미술인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며 보안여관에서 개인전 «카우보이»를 선보였다. 전시된 여섯 점의 조각은 인체 형상을 캐스팅한 것이다. 

A 신체에 대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인체를 보다 더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나의 오랜 숙원이었다. 몇 해 전부터 지인들이 작업실로 놀러 올 때마다 재미 삼아 그들의 인체를 부분적으로 뜨곤 했다. ‘몸’에 대한 공간성을 탐구하고 싶었던 나의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였달까. 석고는 무겁고 금방 뜨거워져서 신체를 캐스팅하기 힘든 반면에 석고붕대는 비교적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신체의 틀을 만든다는 어법이 마음에 들었기도 하여 몸에 대한 공간성을 탐구하는 새로운 작업군을 구상했다. 그렇게 〈약사여래입상〉 〈신부〉 〈계곡〉 〈달걀껍질〉 등 나 자신과 타인을 캐스팅한 총 여섯 개의 인체 조각이 탄생됐다. 이로써 기호화된 인체를 ‘껍질’이라는 형태로 몸의 무너짐과 부재로 표현해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 인체 조각들은 바티칸박물관의 부서진 천사상의 등골, 불교 약사여래상의 효능, 불상 등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관람객에게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했다.

Q 〈달걀껍질〉은 본인을 셀프 캐스팅한 거라고. 인체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사실이 있나? 

A 한평생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득 생소하게 느껴졌다. 타인을 뜰 때는 앞면, 뒷면 나눠서 두 번 만에 완성할 수 있었지만, 나 자신을 캐스팅할 때는 움직이면 근육이 틀어지기 때문에 마디를 나누어서 따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귀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통으로 뜨는 것과는 180도 다른 경험이었다. 궁극적으로, 파편화 된 몸을 통해 인간의 가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사실 〈달걀껍질〉은 보안여관의 야외 중정 공간에 전시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보다 단단한 소재인 알루미늄을 사용했었다. 갑옷 같기도 하고 매우 무거워 보여 역설적으로 껍질 중에 가장 가벼운 〈달걀껍질〉을 이름으로 붙였다.

Q 현재 웨스에서 선보이는 그룹전 «Sometimes It Sticks to My Body»에 전시된 비디오와 나무 부조를 결합한 조각작업은 근현대 사회의 관념적 발명에 의문을 제기해온 당신의 신념을 잘 반영했다고 생각한다. 

A 기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개념들, 예를 들어 ‘바퀴’라는 오브제를 떠올리면 사회적으로 경험하는 속도 혹은 변화하는 환경 같은 것들이 있지 않나. 이처럼 사람들에게 기억의 충동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다루려고 한다. 기호화된 이미지, 또는 문화적 기표는 나에겐 마치 무너뜨리고 싶은 조각과도 같다. 웨스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몸’을 탐구한 것이다. 정보를 기억하고 망각하는 과정을 내가 ‘몸’이라고 상정한 네모난 틀 안에서 표현하고자 했다.

Q 지금 스튜디오에 놓인 몇몇 이전 작품을 보며 공통점을 발견했다. 조각 피스들을 용접, 목공풀, 조인트로 합치는 대신 천 따위의 재료로 묶는 방식이 흥미롭다. 또한, 하드우드와 느슨한 것의 조합 등 상반된 성질의 재료를 뒤섞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 

A ‘조각’ 하면 흔히 떠올리는 스테레오타입이 있지 않나. 하지만 물리적으로 견고하다고 해서 영속성을 나타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되려 보수적이고 가능성이 적은 상태처럼 다가올 때도 있다. 조각을 만들 때 묶는 방식을 택한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동시에, 나의 조각 안에서는 늘 인지가능한 정도의 물질적인 이물감이 존재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한 이질감이 공존하는 것이 온전한 상태이듯 말이다. 대학원까지도 평면을 전공하고 데뷔도 회화 전시로 했었다. 조각을 전공하지 않아서 이런 측면에선 오히려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데, 조각을 전공한 사람들이 보면 ‘왜 저렇게 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Q 앞으로 어떤 식으로 ‘몸’이라는 기표를 탐색하고 구현할 계획인가? 

A 개개인의 경험을 통한 감정, 또는 감각을 탐구할 것이다. 요즘에는 트럭 또는 앰뷸런스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신체에 스민 감각, 감정을 상상해보곤 한다. 앰뷸런스 운전자는 도로를 재빠르게 뚫고 가야 하지 않나. 극한의 속도감이 동반되며 긴장 상태일 텐데 많은 감정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한다.

Q 올해 예정된 전시가 있나? 

A 10월에 뉴욕에서 작은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하드우드 작업을 위주로 선보이는데 현재 보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시에 생각하고, 다시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면서 드로잉하고 작은 모델링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 백세리, 헤어 amp; 메이크업/ 장하준
백세리는 프리랜스 에디터다. 이유성의 〈달걀껍질〉은 안토니 곰리의 〈Feeling Material〉만큼이나 신박한 인체조각이라고 생각했다.




이은희 Eunhee Lee
이은희 작가의 작업실은 서울역 부근, 신체의 가동을 도와 일상생활을 편하게 해주는 보조기 판매소가 즐비한 거리에 있다. 영상 매체를 통해 동시대 기술과 이를 개발·활용하는 사회의 이면에 내재한 구조적 모순을 탐구해온 작가에게 관찰 대상으로 가득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Q 한강대로는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마다 걸어보고 싶은 길이었다. 서울의 중심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암호 같은 장소라고 할까. 

A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입주기간이 끝나서 급하게 작업실을 얻다가 우연히 오게 된 곳이 바로 여기다. 대개 무슨 무슨 보조기라는 간판을 단 의족을 판매하는 상점, 인력사무소, 무료 급식소가 한 집 걸러 한 집 자리한 동네인데 2021년에 기술과 장애의 관계를 말한 작업 〈디딤기와 흔듦기〉를 선보인 적이 있어서 희한한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디딤기’와 ‘흔듦기’는 정상적인 보행의 동작을 일컫는 재활의학 용어이다. 완전한 걸음이라는 건 디딤기와 흔듦기가 거의 자동으로 리드미컬하게 일어날 때 완성된다.

Q 2021년 남서울미술관의 «사랑을 위한 준비 운동»에서 선보인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도 떠오른다. 두 작품 모두 기술을 통해 신체와 노동의 관계를 파고들어 우리 사회가 상정한 정상성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이런 주제를 다루게 된 개인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 같다. 

A 〈이족보행을 위한 몇 가지 전제들〉은 기획 미팅을 하러 미술관에 갔는데 출입할 방법이 계단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거기서 착안을 해, 내 다리에 카메라를 달고 미술관 안팎을 순회하는 2채널 영상작품으로 만들었다. 왼쪽 채널에는 자유롭게 계단을 올라가 창고까지 들어가는 모습을, 오른쪽 채널에는 계단에서부터 막혀 미술관 밖, 주변을 배회하는 장면을 담았다. 오른쪽 채널 영상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 금속 가공 회사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신경장애를 앓게 되셔서 재활 치료 과정을 지켜보게 됐고 아버지가 가실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걷는다는 행위에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 휠체어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 짓는 대표 이미지다. 누구의 도움 없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율성과 독립성 더 나아가 신체의 정상성을 상징한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어야 노동을 해서 경제적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이렇듯 정상성의 인식 기준을 걷는다는 행위를 통해 살피고자 했다.

Q 고장 난 전광판을 수리하는 작업자의 손을 비추며 시작하는 〈HOT/STUCK/DEAD〉를 통해 ‘액정(liquid crystal)’이 유동적인 액체와 결정의 중간 상태에 있는 물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제목은 무슨 뜻인가? 

A 스크린에 픽셀 결함이 생기면 세 종류로 나타난다. ‘핫’은 흰 색깔로 꺼지지 않는, '스턱'은 그외 다른 색깔로 꺼지지 않는, '데드'는 아예 나가버린 픽셀이다. 광화문 거리를 지나다가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사회의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은 그처럼 어떤 사건, 문제, 결함이 발생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고 감지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지점을 다양한 소재를 통해 다뤄보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있다. 우리가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휴대폰 화면 액정의 경우 매끈하게 완성된 형태로만 마주한다. 그래서 이 액정이 어떤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는지는 까맣게 모른다. 배달 앱에서 음식을 시켜 먹을 때 배달 기사가 음식을 픽업해서 집에 가져오는 과정 역시 디지털로 표시될 뿐이기에 사람 손에 의해 배달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화면을 터치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에서는 전 과정을 인식조차 하지 않게 된다. 그 과정을 거꾸로 돌려 추적해보고 싶어서 〈HOT/STUCK/DEAD〉를 만들었다.

Q 〈MACHINE DON’T DIE〉는 사뭇 비장한 제목에 걸맞게 편집과 음악이 터프하다. 

A 좀비 영화 〈The Dead Don't Die〉의 제목을 패러디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좀 부끄럽기도 하다.(웃음) 광물에서 시작해 전자기기로 사용되고 효용을 다하면 폐기물로 취급되어 다시 광물로 추출되는 전자기기의 사이클을 살펴보니 안쓰럽고 딱하지 그지 없었다. 산업사회에서 자본주의적인 입장에 따라 긴 생애 주기 내내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이잖나. 이 작품의 음악은 특별히 뮤지션 노디에게 부탁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조작법으로 악명이 높지만 아날로그적인 작동 방식으로 차별화된 툴을 원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모듈러 신시사이저로 음악을 만드는 분이다. 직접적으로 기계와 접촉하며 만든 음악이 디지털 대상과 기계의 관계를 물질성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 작품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이은희 개인전 laquo;피로의 한계raquo; 전시 전경, 2023, 두산갤러리, 서울, 사진제공: 두산갤러리, 촬영: 이의록
이은희 개인전 laquo;피로의 한계raquo; 전시 전경, 2023, 두산갤러리, 서울, 사진제공: 두산갤러리, 촬영: 이의록


글/ 안동선, 헤어 amp; 메이크업/ 장하준
컨트리뷰팅 에디터 안동선은 죽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전자 기기의 생애를 알게 된 후로 아이폰 액정 화면을 볼 때마다 뭉클한 감정이 인다.  




김지영 Keem Jiyoung
일렁이는 불빛의 변화를 캔버스로 옮기는 김지영 작가의 작업실은 여느 페인터의 작업실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단정하다. 기다란 창으로 햇볕이 드리우며 초가 타들어가는 시간 동안고요히 빛을 응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Q 테크 회사가 밀집한 신도시 오피스 빌딩에 스튜디오가 자리한다. 아크릴 물감 자국이 사방에 튀어있거나 패널이 눕혀져 있지 않은, 말끔히 씻은 붓들이 놓인 페인터의 작업실이라니. 

A 난지, 고양, 인천, 금천까지 2019년부터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이어오다 작업실을 마련한 것이어서 항상 이전과 비슷한 상태로 작업실을 세팅해두는 편이다. 초에 불을 붙이는 동시에 작업을 시작하는데, 한번 그리기 시작하면 9시간 이상 쉬지 않고 캔버스 한 면 전체를 채우는 식으로 작업에 몰두한다. 부분적으로 그리지 않고 레이어를 축적시킨다.

Q 송은에서 10월 28일까지 열리는 그룹전 «PANORAMA»에서 〈붉은 시간(Glowing Hour〉 시리즈의 신작 19점을 공개했다. 좁고 긴 통로에 분홍빛 불꽃들이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띤다. 

A 전시 공간을 보고, 보다 물리적이고 공감각적인 경험을 구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관람객이 입구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면서 대기에 퍼지는 빛에서부터 가장 안쪽 초의 몸통까지, 빛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측면에는 빛이 발하기 전 푸른색으로 보이는 광경을 배치해 시야를 이동시키면서 빛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작업 과정의 시퀀스를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Q 지난해 첫 상업 갤러리 전시로, P21에서 연 개인전 «산란하는 숨결(Scattering Breath)»에서는 연작 72점(드로잉 69점, 유화 3점)이 3면을 빼곡히 채운 광경이 인상적이었다. 같은 시리즈의 작품이라도 전작들은 노란빛이 더 돌고 색상의 차이가 있다. 

A 내 작업은 초가 타들어가는 모양새나 촛불 그 자체가 아니라, 불빛과 불빛을 둘러싼 주위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유한한 시간 동안 아주 작은 불씨가 주변을 밝히고, 대기에 퍼지는 열감에 따라 달라지는 빛을 내 눈의 주관적인 초점에 따라 응시한 결과물이다. 드로잉 작업은 하얗거나 노란 빛이 지배적이고, 다른 색상이 보이지 않는 초기 상태의 빛을 속도감 있게 담았다. 불빛을 계속 바라보다 보면 눈에 빛이 익숙해지는, 묵상적인 과정으로 들어서야 여러 가지 색이 보인다. 2020년 초기작들은 빛이 넓은 면적으로 퍼져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에 형태감이 두드러졌고, 점점 이미지를 크롭트하면서 붉은 부분이 부각되는 차이가 생겼다.

Q 개인과 사회적 사건과의 관계, 동시대 재난이 드러내는 세계의 균열을 꾸준히 작업의 주제로 삼아왔다. 

A 세월호 사건 이후 작가로서 사회적 사건 앞에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고민하고 탐구해왔다. 결국 이런 죽음이나 재난을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살아있다는 감각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구나 각자의 고유한 삶과 죽음이 있고, 유한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매일 달라지는 여느 날의 빛으로 담아낸 것이 유화 작업이다.

Q 2018년 개인전 ≪닫힌 창 너머의 바람≫에서는 〈파랑 연작〉을 통해 서해훼리호 침몰,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사건을 디테일하게 그려낸 오일파스텔 드로잉과 재난 보도 기사를 현재적 시점에서 쓴 책을 배포하기도 했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작업을 시도해왔는데, 이후 작업 방식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A 처음부터 이 주제를 다룰 때 단일한 작업이나 전시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도 사건을 바라보고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언 같은 형태의 첫 번째 프로젝트 «선할 수 없는 노래»를 마친 다음, 두 번째 개인전 ≪닫힌 창 너머의 바람≫을 통해 사회적 사건을 이성적인 태도로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보도 기사의 자극적인 워딩을 배제하고 새로 글을 쓰고, 재난의 현재성을 구체적으로 다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손으로 드로잉하는 방식을 택했다. 유화 작업인 〈붉은 시간〉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인의 삶과 죽음을 개별적인 시선에서 은유적으로 바라본 시도다. 지금은 회화작업과 동시에 재난의 아카이빙 작업을 통해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작업의 성격과 속도, 모두 다르지만 한 가지 메시지로 수렴된다. 작가로서 실제로 통과해야만 깨닫는 것이 있으니, 필요한 과정이다. 삶과 죽음, 이성과 공감, 양가적인 측면이 우리를 둘러싼 일상에 공존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글/ 안서경, 헤어 amp; 메이크업/ 이현정
안서경은 〈바자〉의 피처 에디터다. 분야를 막론하고 삶의 양가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창작자에게 늘 매료된다. 


글/ 안서경 사진/ 하태민 디지털 디자인/ GRAFIK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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