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디자인: 너의 얼굴은?

전기차 디자인: 너의 얼굴은?

모터트렌드 2022-01-19 00:00:00 신고

 
사이버트럭의 야수성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이해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이다. 1950~1960년대 유행했던 건축양식. 영화 <듄> 속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함선이나 건축물을 유심히 봤다면 어렴풋이 감이 올 것이다. 성수동에 커피 마시러 자주 가는 이도 느꼈을지 모른다. 폐허 같은 인더스트리얼 카페에서 풍기는 어떤 분위기 말이다. 
 
사실 브루탈리즘이라는 용어는 르 코르뷔지에의 ‘Beton Brut(베통 브휘트, 노출 콘크리트를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나왔다. 가공하지 않은 재료와 정직한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사이버트럭 역시 재료를 존중한다. 트럭은 스테인리스 스틸 덩어리 그 자체처럼 보인다. ‘스테인리스(Stainless)’이기에 페인트칠은 필요 없다. 금속은 금속, 유리는 유리대로 각자의 영역을 넓게 가져간다. 
 
여기서 두 번째 키워드가 도출된다. ‘비용 절감’이다. 곡선과 곡면이 많아질수록 생산 공정이 어려워진다. 사이버트럭은 몇 개의 직선과 평면, 단순한 소재 구성으로 차체를 완성한다. 생산단가를 절감하는 효율적인 디자인이다. 사실 이 디자인은 로스앤젤레스 피터슨 자동차 박물관에 전시된 ‘로 레스 카(Lo Res Car)’에서 나왔다고 알려졌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가 이 전시를 보고 디자인 변경을 지시했다는 후문. 
 
‘로 레스’는 2016년 미국의 한 구두회사 디자인 프로젝트명에서 따온 이름이다. 이 회사는 이미 존재하는 물건의 디자인을 단순하고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로 레스 카는 람보르기니 쿤타치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결과물.
 
미니멀리즘은 비용 절감의 다른 이름이다. 대신 더 튼튼하고 저렴하게 대량생산할 수 있다. 알고 보니 이 작품을 만든 이가 건축가인 렘 D 콜하스와 산업디자이너 조이 루이터라고 한다. 산업디자인은 공정에 대한 이해 위에서 효용과 아름다움 사이의 균형을 잡는 행위다. 사이버트럭 디자인도 마찬가지.
 
브루탈리즘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이 용어는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의 교차점에 약간의 잔혹함을 섞은 것처럼 들린다. 사실 이 용어는 전통과 우아함을 중시하는 서구 건축에 대한 반감을 담고 있다. 과감한 노출과 거친 질감 때문에 ‘브루털’해 보인다는 것이다.
 
사이버트럭 역시 기존 자동차 브랜드의 젠체하는 디자인과 쓸데없는 허례허식에 대한 반감에서 나왔다. 기존 브랜드에는 전기차 및 픽업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유럽 제조사부터, F-150류의 트럭을 생산 중인 미국 회사들까지 해당된다. 
 
혁명은 기존의 질서를 무시한다. 때로는 전통이 쌓아올린 장점조차 외면할 때가 있다. 그릴과 사이드미러, 도어핸들 따위는 과감히 생략했다. (미 교통법의 압박으로 사이드미러는 부활했다. 그러나 머스크는 “운전자가 쉽게 제거할 수 있다”고 트윗을 날렸다!)
 
사이버트럭은 철저히 배타적이고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는 듯한 모양새다. 마치 연약한 내부를 딱딱한 갑피로 둘러싸고 있는 갑각류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사이버트럭의 세 번째 키워드는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멸망할 걸 대비해서 만든 것 같다는 얘기다. 
 
이는 자연을 끌어안는 친환경 기조에 역행한다. 아포칼립스 속에서 트럭 베드(테슬라는 ‘볼트(Vault)’라고 부른다)에 통조림과 생수를 가득 싣고 달릴 것만 같다. 그 와중에 다가오는 좀비들은 초고경도 냉간압연 스테인리스 스틸로 튕겨내면서 말이다. 스페이스X 로켓의 외부 재질 용도로 개발한 소재라는데 오죽하겠나.
 
아닌 게 아니라 사이버트럭은 충돌 시 운전자 보호를 위해 찌그러지는 크럼플존(Crumple Zone)도 없어 보인다. 이 차는 어쩌면 일상보다는 군용 트럭을 노리고 나온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이미 미군과 테슬라 사이에 다양한 협업 논의가 오갔다고 하니, 앞으로는 전장에서 달리는 사이버트럭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방탄유리는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잡설이 길었다. 결론이 뭐냐고? 사이버트럭이 강남대로에 나오면 모두가 넋을 잃을 것이다. 각자의 직장과 술자리, 단톡방에서 디자인 토크가 끝도 없이 이어지겠지. 그것만으로 가치 있는 것 아닐까?
원호연(<에비뉴엘> 에디터)
 
레트로를 지향하는 건 아니겠지?
미래를 치열하게 상상한 시대는 1980년대였다. 걸출한 SF 영화들이 1980년대에 줄지어 등장했다. 어쩌면 우리가 떠올리는 미래 풍경은 그때 정립됐을지도 모른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1978년 처음 나왔지만 1980대를 관통했다.
 
<블레이드 러너>는 1982년, <로보캅>은 1987년에 등장했다. 심지어 미래 자동차라 해도 손색없는 키트가 등장한 <전격 Z작전> 역시 1982년에 시작됐다. 1980년대는 대중문화 속 미래주의가 만개한 시대였다. 20세기 초에 발화한 미술 사조인 미래주의가 건축과 패션을 넘어 영상매체에도 영향을 미친 결과였다.
 
1980년대에 SF 영화가 대거 등장한 이유는 특수효과 기법이 발전한 덕이었다. 그 전보다 발전한 기술은 활자와 상상 속 미래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놓았다. 구체적인 미래 풍경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정립된 미래 풍경은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전히 대중문화 속 미래는 1980년대 SF 영화에 빚이 있다. 우리가 떠올리는 미래 역시 그 안에서 변주된다. 갑자기 1980년대 SF 영화가 떠오른 이유가 있다. 현대차 콘셉트 세븐의 앞모습을 본 순간, 그 시절이 겹쳐 보인 까닭이다. 2021년 선보인 콘셉트카에서 1980년대 SF 영화가 떠오르는 건 좋은 의미일까? 그만큼 1980년대 SF 영화가 참신했다는 뜻일까? 
 
콘셉트 세븐의 앞부분은 픽셀을 전면에 내세운다. 현대차는 이를 파라메트릭 픽셀이라고 명명했다. 현대차 디자인 콘셉트인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픽셀 버전이다. 상단에 픽셀로 그린 긴 가로선이 있고, 아래에 픽셀로 면을 만들었다. 차 앞부분을 전광판처럼 만든 셈이다. 요즘 자동차와는 분명 다른 느낌을 준다. 전구에서 LED 램프로, 다시 픽셀로 바뀐 미래 자동차의 특징을 드러낸다. 픽셀 그래픽으로 미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미래가 앞으로 몇십 년 후가 아닌 1980년대 SF 영화 속 미래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 1980년대 SF 영화를 보면 느끼는, 레트로가 바탕에 깔린 미래랄까. <스타워즈> 시리즈의 R2D2가, <로보캅>의 헬멧이, <전격 Z작전> 키트의 빨간 불빛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콘셉트 세븐의 알 굵은 픽셀 때문이다. 분명 미래는 미래인데 ‘고전적 미래(?)’를 연상하게 한다. 1980년대 SF 영화 소품 같달까. 콘셉트 세븐을 보고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유다. 
 
지금은 1980년대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났다. 여전히 1980년대 시각에서 머물러 있는 콘셉트카를 보고 감탄할 수는 없다. 그 시절의 상상력이 뛰어났다는 건 인정한다. 태생적 한계로 자동차 형태가 급진적으로 바뀔 수 없다는 것도 맞다.
 
하지만 1980년대 SF 영화 속 이미지를 답습하는 건 아쉽다. 알 굵은 픽셀이 어느 시절 그래픽인가. 이젠 알 굵은 픽셀은 8비트 게임 그래픽으로 레트로를 상징한다. 디지털 그래픽으로 미래를 구현하려면 더욱 정교하고 섬세해야 한다. 콘셉트 세븐의 파라메트릭이란 단어가 8비트 그래픽 픽셀에 갇힌 형태다.
 
21세기 콘셉트카를 보고 1980년대가 떠오르면, 미래 대신 레트로만 또렷해진다. 파라메트릭이란 단어를 디자인 콘셉트로 쓰는 만큼 기하학 패턴이 넘실대는 미래를 기대한다. 21세기에 22세기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디자인 말이다.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김종훈(자동차 칼럼니스트)
 
순혈주의여, 안녕!
스웨덴의 현 왕조는 프랑스 혈통이다. 1818년부터 203년째 즉위하고 있는 베르나도트 왕조는 프랑스의 부르주아 출신 장군인 장 바티스트 베르나도트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혁명 당시 그는 ‘좌파’의 어원이 된 자코뱅파로 공화주의자였다.
 
뛰어난 전적으로 나폴레옹으로부터 원수로 임명되고 대공의 칭호도 얻었지만,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가 된 그와 사이가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스웨덴의 왕위 후계자로 지명됐다. 유일한 왕태자가 사망한 당시 스웨덴 왕 칼 13세는 핀란드 전쟁에서 패하며 러시아에 빼앗긴 핀란드를 되찾고 싶었다.
 
당시 유럽 최강이던 프랑스 군대의 원수인 그를 낙점한 이유다. 19세기만 해도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을 왕으로 데려오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허락을 받은 그는 1810년 칼 14세 요한이라는 스웨덴식 이름을 부여받고 왕세자가 된다. 그런데 그는 조국 프랑스의 등에 칼을 꽂는다.
 
1813년에는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 가담해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너뜨렸고, 덴마크에 쳐들어가 킬 조약을 성립시키고 노르웨이를 할양받아 동군연합을 이뤘다. 칼 14세 요한은 이후 평화 시대를 유지하고 경제를 부흥하며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 죽을 때까지 스웨덴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는 건 아이러니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브랜드 볼보에 디자인 혁신을 불러와 회생시킨 인물도 스웨덴 사람은 아니다. 독일인 토마스 잉엔라트다. 2012년 볼보의 디자인 총괄로 부임하기 전까지 그는 21년 동안 폭스바겐 그룹에서만 일했다. 2013년 그는 “그전까지 볼보의 디자인은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The Vanilla Days Are Over”를 선언하고는 콘셉트 쿠페를 발표했다.
 
콘셉트 쿠페는 볼보 역사상 가장 상징적 모델인 P1800을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P1800에서 디자인의 중심이 되는 라인을 가져오고, 자세와 균형감 등 형태적인 영감을 얻었다. 여기에 스칸디나비아의 분위기를 더했다. 자연과 거주환경, 문화 등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렇게 탄생한 콘셉트 쿠페는 그 이후 나온 모든 볼보 디자인의 원형이 됐다. 평범한 날들과 성공적으로 작별한 볼보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스웨덴의 성군이 된 칼 14세 요한처럼 잉엔라트가 볼보를 일으켜 세운 셈이다.
 
볼보는 2017년 폴스타를 고성능 전기차 브랜드로 독립시켰다. 그리고 CEO로 토마스 잉엔라트를 임명했다. 2020년에 출시한 폴스타 2는 폴스타 최초의 순수 전기차다. 그리고 볼보 콘셉트 쿠페를 디자인 원형으로 삼는 마지막 신차다. 볼보 C40 리차지가 있긴 하지만, XC40 리차지의 쿠페형으로 완전한 신차는 아니다.
 
어쨌든 폴스타 2는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이지만 P1800의 디자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짧아진 헤드램프는 원형 헤드램프의 재해석이고 격자형 그릴 역시 P1800에서 가져온 듯하다.
 
반듯하게 일자로 툭 튀어나온 아래 범퍼와 헤드램프 아래 동그란 LED 안개등에서는 P1800의 스테인리스 범퍼와 작달막한 원형 방향지시등이 겹쳐 보인다. 최신예 전기차가 전통의 아이코닉 쿠페를 가장 많이 담아냈다는 것도, 그러면서 가장 현대적인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재밌다. 복고의 현대적인 진화랄까?
 
폴스타 2가 현대적인 동시에 디자인 유산과 스칸디나비아의 분위기를 모두 담아낼 수 있었던 건 토마스 잉엔라트의 콘셉트 쿠페 덕이다. 스칸디나비아의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굴하고, 전통에서 개성을 찾아 디자인했다. 스웨덴 사람들에겐 익숙했지만 독일인에겐 낯설었을 터. 그래서 폴스타 2의 얼굴, ‘파사드’는 발견이다. 폴스타는 다음엔 또 무엇을 발견할까?
고정식(프리랜스 에디터)
 
 
전기차에도 아비투스가 있을까
최근 인기 있는 인문학 서적들에서는 ‘아비투스(Habitus)’란 개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정의한 아비투스는 자신이 속한 집단에 걸맞는 습관, 말하자면 ‘격’이다. 집단 환경에 의해 생성되어 무의식에 각인된 아비투스는 신념, 언어, 습관에 묻어나오는 향기 같은 것인데, <아비투스>의 저자 도리스 메르틴은 ‘하이에나 우두머리의 새끼는 리더의 교육을 받고 자라듯’ 이러한 아비투스가 사회문화적으로 상속된다고 말한다.
 
이 개념을 자동차로 가져온다면 독일 3사는 하이에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그 밖에 빠르게 달리거나 공작처럼 자신을 뽐내는 데 탁월해 짝짓기에 유리한 하이에나도 있을 것이고 무리에서 도태된 개체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자식들은 서로 다른 아비투스를 상속받는다. 현대와 메르세데스-벤츠에서 나온 전기 모델들이 각각 고유한 아비투스를 가지는 것과 같다. 
 
기존 자동차 제조회사들과 테슬라, 루시드의 전기차는 각자의 문화권 밖에 있는 존재다.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회사와 달리, 전기에너지 솔루션이란 모유를 먹고 성장한 테슬라와 루시드는 구력이 없어 넘어야 할 한계도 있지만 잘하는 것도 분명하다. 차이는 겉모습에서부터 드러난다.
 
내연기관차 회사가 내놓은 전기차들은 ‘있어야 할’ 그릴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LED나 블랙 패널을 깁기에 급급한데 루시드 에어의 얼굴은 이를 홀연히 초월해버리고 만다. 기필코 이을 헤리티지나 따를 원판이 없으니 창조할밖에. 헤드램프부터 노즈까지 부메랑처럼 둥글게 이어지는 얼굴은 간결한 크롬 라인이 가로젓고, 그 아래로는 에어 커튼으로부터 시작된 뾰족한 각이 접혀 있다.
 
사실 연필을 떼지 않고도 한 번에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황망한 얼굴들을 자동차 디자인의 퇴보라고 여긴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내연기관차 디자인이 주류로 치부한 가부장적 사고일 확률이 높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을 향해 루시드 외관 디자인을 담당한 제니 하(Jenny Ha)의 말은 따끔하다.
 
“아름다움은 꼭 요란할 필요가 없다.” 그제야 유선과 면에 흐르듯 바른 조소(彫塑), 고도로 절제된 미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파인다이닝 요리의 파이널 터치처럼. 루시드가 직조한 아비투스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내연기관의 눈으로 전기차를 바라보기가 더 쉽다.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차의 주행 감각을 추출해내려 열을 올리는 우리의 노력만 봐도 그렇다. 그러나 향후 완전 자율주행을 달성할 미래의 이동수단에서 우리가 기대해야 할 건 오직 ‘주행가능거리’ 그리고 ‘안락함’이다.
 
루시드 에어는 이 두 가지 지점에서 벌써 충직하다. 루시드 에어 드림 에디션 R의 주행거리는 EPA 기준, 테슬라 모델 S 롱레인지보다 160km나 긴 774~837km에 달하며 최고출력 996마력을 내고 실내는 S-클래스만큼 호화롭다. 완전 자율주행이 달성되지 않은 현실 세계의 루시드는 운전재미까지 데리고 갈 생각이다.
 
루시드의 CEO이자 CTO인 피터 롤린슨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차는 ‘S-클래스의 안락함과 로터스의 주행 감각을 합친 차’다. 피터 롤린슨은 로터스의 수석 엔지니어 출신인 데다, 퍼포먼스에 방점을 찍은 루시드 에어 드림 에디션 P도 나왔다. 장담은 섣부르지만 루시드가 테슬라를 후려 팰 만한 맞수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서서히 지루해져 가는 전기차 신에 긴장감을 주는 슈퍼 메기(생김새 역시)의 탄생. 해당 분야만큼은 상대가 없던 테슬라가 감히 슈퍼맨이라면 새롭고, 심지어 더 뛰어난 크립톤인이 등장했다.
장은지
 
말하는 자동차를 위한 큰 그림?
자동차가 한을 품는다면, 내 차는 무슨 말을 할까. 수개월째 엔진오일을 안 갈고 있어서 ‘차라리 죽여줘’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말은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들릴 테고. 전면이 자동차의 얼굴이라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인상을 결정하는 입  같기도 하고 때로는 콧구멍처럼 보인다.
 
나는 이걸 숨구멍이라 부른다. 외부 공기를 유입해 엔진을 냉각시키고, 공기저항을 낮추고, 연료를 태울 산소를 불어넣는 숨구멍 말이다. 말하고 보니 라디에이터 그릴이 엄청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게 전기차에서는 쓸모없다. 엔진이 없으니 냉각시킬 것도 없고, 산소도 필요 없어서 전기차는 숨구멍이 없다. 그래서 전면 라디에이터 자리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애거나(테슬라), 라디에이터 그릴과 비슷하게 생긴 패널(아우디)로 대체한다.
 
헤리티지를 고집하는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렇듯 BMW iX는 후자다. BMW iX의 수직형 키드니 그릴은 8각형 두 개를 이어 붙인 것이다. BMW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호오가 갈린다. 안 예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현명한 판단이었다. 
 
요즘 자동차는 달리면서 수집할 정보가 많다. 정보를 빠르고 많이 수집할수록 차는 똑똑해진다. 나중에는 운전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똑똑해질 테고, 그날이 오기 전까지 BMW는 키드니 그릴을 통해 정보를 수집할 거다. iX의 키드니 그릴에는 레이더와 센서, 카메라, 열선 같은 것들이 통합된 상태로 들어 있다. 안 보여서 몰랐다면 성공한 디자인이다. 넣어야 할 기능은 많지만 티 내지 않는 것이 디자인의 미덕이다. 
 
iX 키드니 그릴 패널에는 ‘진짜 그릴’ 같은 패턴이 새겨 있다. 입체감을 부여하고 싶었을 거다. 멀리서 보면 그릴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패턴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패턴이 아니라 그림이나 타이포그래피를 넣었다면….” 그건 끔찍하다. 패널 모양은 라디에이터 그릴 자리에 패널을 부착한 제조사들의 공통 과제일 게다.
 
따라서 숨구멍을 막아놓고 숨 쉬는 것처럼 표현한 iX의 패널은 무난하다. 최소 B+를 줄 만하다. 그래, 최선이었다. 패널에 기하학 패턴을 새겨 넣는 것 외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는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패널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보를 표시하는 경지에 오를 거다. 그때가 되면 그릴을 과감히 지워낸 브랜드들이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패널에 ‘저렴한’ OLED를 탑재하는 상상을 해보자. 1차로에서 천천히 가는 앞차를 향해 ‘비켜’라는 문구를 표시하거나, ‘초보 운전’이라고 표시한다.
 
‘오늘은 내 생일입니다’라든가, ‘분리수거 배출의 날입니다’ 같은 문구도 떠오른다. 더 직관적으로 이모지나 기호를 사용하는 것도 유용하겠다. 미래 도로에선 자동차들이 서로 자기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고, BMW가 포기 못한 입 내지는 숨구멍은 아주 유용한 매체가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자동차도 어떤 방식으로든 말을 할 테다. 우리는 차에 맺힌 한을 어떻게 풀어줄지만 고민하면 된다. 
조진혁(<아레나 옴므 플러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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