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도 병? 아니, 걱정이 약!

걱정도 병? 아니, 걱정이 약!

엘르 2021-09-21 00:00:00


나는 ‘걱정꾼’ 집안에서 자라났다. 오래전, 오빠가 넘어지면서 튀어나온 첫 마디가 ‘엄마야!’도 ‘으악!’도 아닌, 땅을 향한 사과를 담은 ‘미안해’였다는 희대의 사건은 우리 집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부모님에 따르면 어릴 적 나는 유모차에 앉아서도 눈앞에 매달린 작은 인형을 불안하게 바라보곤 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형의 표정이나 자세가 불편해 보여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게 뻔하다. 심지어 당시 우리 집 반려견도 한동안 벽을 쳐다보며 한숨을 쉰다는 이유로 강아지 전용 우울증 약을 처방받은 적 있다. 이 정도면 우리 집안의 DNA에 ‘걱정’이 새겨져 있음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것이다. 유년 시절의 나는 침대 밑의 몬스터를 걱정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터무니없지만, 당시 내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걱정들로 가득했다. ‘침대 밑이 불편하진 않을까? 먼지투성이의 딱딱한 바닥에서 몬스터들이 잠을 잘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 끝에 난 종종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 몬스터들이 침대 위로 올라와 편히 잘 수 있도록! 이런 딸을 보며 엄마는 포근한 테디 베어를 사주셨지만, 애착 인형이 될 거라는 엄마의 기대보다 곰 인형을 향한 내 걱정이 훨씬 컸다. 이런 걱정이 쓸데없고 비현실적이며 극단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남들도 다 비슷할 거라고, 딱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걱정은 나에게 일종의 ‘취미’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변곡점은 13세 무렵에 찾아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네일 컬러나 헤어스타일에 대해 고민할 때, 나는 한쪽 팔다리가 거대해지는 거인병을 앓을까 봐 걱정했다. 틈만 나면 양다리를 서로 맞대며 길이를 비교하곤 했다. 나와 다르게 해맑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더 많은 것이 심각한 걱정으로 다가왔다. 파티에 가는 건 악몽과 같았다. ‘무엇을 입어야 하지?’부터 시작된 내 걱정은 급기야 ‘카나페를 먹다가 목에 걸리면 어떡하지?’ ‘파티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내 머리 위로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해?’ 등 허무맹랑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20~30대에는 걱정을 이겨보고자 요가를 시작했지만 유연하지 못한 내 몸을 걱정하게 됐고, 명상 앱도 이용해 봤지만 어느새 머릿속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한탄으로 가득 차곤 했다.

한 번은 테라피스트가 ‘유제품을 많이 먹는 편이냐’고 물어본 적 있다. 바로 ‘아니요’라고 답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버터를 꽤 많이 먹는 축에 속하는 것 같았고, 따져볼수록 그녀의 질문에 ‘예’라고 답했어야 한다는 자책이 들어 밤잠을 설쳤다. 물론 답을 정정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겠지만. 이 정도로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나에게 두 번째 변곡점을 선사해 준 건 아이들이다. 각각 12세, 15세인 두 아들과 함께하는 삶은 언제나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이미 잘라버린 손톱 조각을 다시 붙이겠다고 쓰레기통을 뒤지질 않나, 내가 애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던 ‘위험해! 돌 날아와~’라는 글을 적은 도자기 인형을 선물하질 않나, 치약으로 장난을 치다 눈썹 사이에 묻자 “눈썹들이 하나로 달라붙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질 않나! 아이들은 걱정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극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꾼으로 살면 의외로 장점도 많다. 가장 좋은 점은 걱정 덕분에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우정에는 당연히 걱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걱정은 상대를 향한 배려와 호의로 이어진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겠다. 몇 년 전, 자신의 생일파티에 친구들을 불러놓고 방 안에만 숨어 있던 둘째 아이가 웬일로 다시 생일파티를 열고 싶다는 게 아닌가. 정작 주인공인 아들은 없는 ‘웃픈’ 생일파티에 애써 속상함을 감췄던 난 아들의 요청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가히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파티에 오는 아이들의 모든 요구사항을 미리 받아 전부 들어줌으로써 걱정의 씨앗을 없애기로 한 것. 어떤 아이는 우리 집의 모든 방을 찍어 보내달라고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생일파티 메뉴를 알려달라고 부탁해 왔다. 어떤 게임을 할지, 그 게임들을 어떤 순서로 할지, 게임에 걸린 상품과 힌트를 알려달라는 아이도 있었다. 파티에는 참석하겠지만 자신은 정원에서만 놀 거라는 아이, 심지어 부모님 차에서 내리지 않고 선물만 주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드디어 생일파티 당일, 방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던 친구는 오자마자 곧장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고, 메뉴를 알려달라던 친구는 내리 먹기만 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 게임 상품을 얻어내고, 정원에만 머물고, 차 안에서 인사하고…. 엄마인 나는 그저 침묵한 채 케이크를 대령했다. 절대 생일파티 노래를 부르지 말아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촛불만 끄고 바로 케이크를 치워야 했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취향에 당당했고, 걱정과 달리 꽤 즐거운 생일파티로 막을 내렸다. 이 파티를 통해 남들과 ‘다르다’는 건 매우 긍정적이고 존중받아야 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걱정에 대한 생각 역시 달라졌다. 난 그저 남들과 좀 ‘다를’ 뿐이라고, 내 마음이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움직이고 반응할’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게다가 걱정꾼으로 살면 의외로 장점도 많다. 가장 좋은 점은 걱정 덕분에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우정에는 당연히 걱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걱정은 상대를 향한 배려와 호의로 이어진다. 서로를 염려하고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 쓰면서 더 좋은 계획을 세울 수도 있고, 의식적으로 더 좋은 관계를 고민하기도 한다. 걱정에 긍정 한 스푼을 더한다면 배려심, 꼼꼼함, 계획성, 조직성 등을 많이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다. 걱정에 대한 나의 걱정과 고민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걱정은 내가 살아가는 메커니즘이자,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만의 질서를 세워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걱정이 많은 사람일 뿐이다. 걱정으로 찌푸려진 팔(八)자 눈썹을 지닌 난, 굳이 변하려 하지 않을 거다.


에디터 정윤지 사진 KATE POWERS 작가 GEORGIA PRITCHETT 디자인 민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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