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쿠션어 사용법

슬기로운 쿠션어 사용법

싱글즈 2021-05-12 15:00:00 신고

슬기로운 쿠션어 사용법

내 의도를 확실히 전달하면서도 상대의 기분은 해치지 않는 안전한 쿠션어 사용법.

‘쿠션어’란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덧대는 안전장치 같은 말을 의미한다. 평소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고 명확하게 전달하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갖추면 이로운 기술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쿠션어가 때로는 나를 지나치게 물컹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잘만 사용하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요소가 되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오히려 소통의 장애물로 전락하는 셈이다. 전문적이지 않거나 저자세로 보일 수 있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쿠션어를 호의와 친절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대를 마주하면 그의 무례한 리액션에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래서 쿠션어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때는 쿠션의 모양과 탄성, 방향을 바꿔야 한다. 원하는 바를 수월하고 공손하게 쟁취하기 위한 쿠션어의 목표를 잊지 않고 명확하고 씩씩하게 사용할 때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내 감정과 생각, 행동을 다듬으며 타인을 위한 쿠션을 만들 때 기억해야 할 사실은 어떤 말이든 그 말에 책임져야 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기왕 사용할 거라면 쿠션어의 사용을 후회하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하자.


1 베이비 토크 부작용
내가 문자보다 전화를 선호하고, 굳이 돈을 주고 메신저 앱의 이모티콘을 사는 이유는 텍스트 대화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 텍스트로만 이루어지는 대화의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종종 귀여운 말투를 장착하고는 했다. 존칭을 사용할 때 문장의 끝에 ‘용’ ‘당’을 붙이거나 대답을 할 때 ‘넹’ ‘넵’과같이 변화를 주는 식이다. 그리고 나는 최근 이 과도한 일방적 호의 때문에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도 전 퇴짜를 맞은 경험이 있다. 귀여운 척이 부담스럽다는 게 이유다. 그저 친절한 태도로 친해지고자 했던 호의였을 뿐인데.
SOLUTION
나이에 관계없이 어려 보이는 화법을 베이비 토크라고 한다. 대개 텍스트로 전달되는 혀 짧은 문장, 애교 있는 말투를 칭한다. 남성보다는 여성,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어린 사람에게 ‘애교 빼면 시체’라는 말과 함께 강요되며, 타인에게 친절하고 상냥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용하고는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친절의 굴레에 갇혀 시작된 말하기 방식은 미성숙한 어른인 동시에 부담스러운 행동으로 인식된다. 처음 만나는 사이에 가장 안전한 쿠션어는 예의를 차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상대에게 불쾌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 엉뚱한 농담을 하지 않는 것, 편견 없는 귀로 듣고 반응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2 무색무취 부작용
어린 시절 나는 토론을 좋아했다. 하나의 현상과 주제에 대한 여러 생각을 접하며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는 과정이 그 어떤 책보다 흥미로웠다. 하지만 사회에서의 토론은 그간 내가 알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입사 초반 회의가 끝나면 매번 팀장은 나를 불렀다. 내 의견을 오해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 태도가 무례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좋아하던 회의 시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고 점점 위축됐다. 상사와 동료에게 불쾌감을 덜 주기 위해 발언권을 얻으면 ‘제 생각에는’으로 시작해 ‘같습니다’라는 추축성 표현이 입에 붙었다.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려다 보니 말투 또한 머뭇거리게 되더라. 그때는 이 방법이 상대를 존중하는 동시에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주관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됐고 어느 순간부터 무기력한 무색무취의 팀원이 되어버렸다.
SOLUTION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문장이 갖는 힘이 달라진다. 여러 사람이 공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때 상대를 배려하는 게 맞지만 그 방법이 나를 약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단호하게 의견을 전하되 상대를 향한 매너는 의도적인 장치를 삽입해 드러내도록 하자. 내 의견을 말하기 전 ‘XX씨의 의견도 맞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라는 등 상대의 의견에 관한 생각을 밝히고 내 생각을 탄탄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의견에 대한 확신을 상대의 반응에서 얻으려 한다거나 문장의 시작과 끝을 열린 결말로 방치하는 건 오히려 나를 연약하고 모자란 사람으로 비치게 한다. 여기에 또 하나, 문장 구조와 순서는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의견을 말할 때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탄탄한 근거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서술어 부분에서 ‘생각합니다’라는 확실한 마침표를 찍는다. 절대 우물쭈물하거나 추측성의 서술어로 끝내지 않는다.
3 에너지 손실 부작용
넉살은 사회생활에 훌륭한 재능이다. 넉살 좋은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는 딱딱하고 까다로운 주제 속에서도 부드러운 기운이 유지된다. 선천적으로 분위기를 밝게 이끄는 타고난 넉살을 가진 사람과 달리 자기계발서와 유튜브를 통해 배운 후천적 넉살을 장착한 나는 시간이 갈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다. 친구들과 회사에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넉살 기술을 사용할 때 빼앗기는 에너지가 삶의 질을 망친다. 내 감정을 숨겨야 할 경우 괴로울 때도 있다. 그 좋아하던 소셜 모임도 요즘에는 점점 피하게 된다.
SOLUTION
선천적으로 넉살 떠는 데 능한 사람도 있지만 타인의 기분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리액션을 취하는 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를 배려하다 보면 당연히 내 감정을 희생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결과적으로 아무리 좋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해도 그 과정이 나를 갉아먹는다면 그건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우리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평생 이어진다. 쿠션어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내 길이 아닌 건 과감하게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감정을 살펴야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질 테니까. 상대에게 안락한 쿠션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나의 감정 쿠션부터 건강하게 마련해야 쿠션어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된다.
4 험담꾼 부작용
공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감정이다. 평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의견이라도 잘 모르는 사이라면 괜히 얼굴을 붉힐까 싶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로 동조하며 내 생각을 접고는 했다. 문제는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 리액션 습관에서 시작됐다. 대학교 동기 B가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닌다며 친구 C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C는 우리 팀 과장의 뒷담화를 했고, 과장의 평소 행동을 미루어 볼 때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았기에 나는 적당히 동조하며 오해를 바로잡고자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며칠 뒤, 과장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내가 그의 험담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거다. C는 내가 바로잡은 오해는 쏙 빼고, 과장과 같은 팀원도 공감한 이야기라며 과장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녔다.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프로 불편러가 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SOLUTION
쿠션어의 최대 단점은 당장의 불편함을 모면하기 위해 내가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에 넘어가다 보면 오해가 쌓인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사용하는 쿠션어라도 내 생각이나 주관이 개입될 때는 반드시 명료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말을 비롯해 상대를 배려한 표정이나 리액션 또한 자신의 입장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착각의 여지를 줄 수 있다. 특히 회사와 같은 공적인 조직에서는 같은 말이라도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판이하게 갈릴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고자 사용하는 쿠션어라도 내 입으로 뱉은 말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5 호구 부작용
내가 제일 경계하는 태도는 무례함이다. 시간이 쌓여 공짜로 먹은 나이를 권위나 특권으로 남용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진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난 나이가 어린 친구들, 부하 직원, 친구들을 대할 때 명령어를 비롯해 무례한 말투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을 걸기 전 상대가 대화가 가능한 시점인지 체크하고, 명령처럼 들릴 수 있는 표현은 지양한다. 그런데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 같은 말이라도 좀 더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결과가 주어진다. 내 노력과 친절이 나를 호구로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동시에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SOLUTION
호의가 계속되면 그것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명령어를 사용해야 하는 자리에 상대를 위한 쿠션어로 청유형을 장착했을 때 자주 발생하는 오해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장을 시작할 때 죄송하지만, 실례하지만, 바쁘겠지만과 같은 말을 붙일 때도 비슷한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쿠션어에도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호의를 당연하게 인식하는 사람에게는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말하는 방법을 변경하자. 이들에게 중요한 건 선택이 아닌 의무임을 인지시키는 과정이다. ‘네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상기시키며 업무의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쪽이 서로를 위해 더 빠른 해결책이다.
6 죄송로봇 부작용
친구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울보’다. 실제로 많이 운다는 게 아니라 메신저에서 나도 모르게 ㅜㅜ, ㅠㅠ를 습관적으로 붙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업무 요청이나 상대에게 불편한 소식을 전해야 할 때는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상대의 감정에 이입해 나도 모르게 이모티콘을 붙이게 된다. 흔히 ‘즙 짠다’고 표현되는 이모티콘을 그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적반하장으로 내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각자 바쁜 일정 속 친구들과 약속을 정할 때, 의견을 모아야 할 때, 안 좋은 소식을 전할 때 상대의 기분에 공감하고 위로하기 위해 사용했건만 그들은 일과 아무 관련 없는 내게 불평불만을 쏟아낸다.
SOLUTION
메신저 소통이 잦아지면서 구체적인 감정 표현을 대신해 이모티콘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던지는 이모티콘은 대화를 시작할 때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꿀 수 있고, 부정적인 이슈나 곤란한 말을 해야 할 때는 위로와 배려의 차원에서 민망하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 노력과 달리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아무 대가 없이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무례하게 굴기가 쉽다. 일정 수준까지 사적인 관계로 얽힌 사이가 아니라면 감정을 드러내는 표현은 진심이 담겼을 때만 사용하는 편이 내 감정을 지켜준다. 상대를 위하겠다고 내 감정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쿠션어의 주요 목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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