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 서울대 의대 박사 문턱서 한화 이글스로 간 남자

서울대 의대 박사 문턱서 한화 이글스로 간 남자

스포츠경향 2021-02-23 19:30:00

구단에서는 벌써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키 186㎝에 제법 넉넉해 보이는 실루엣이 얼핏 봐도 덩치 큰 김 전 감독을 연상시킨다.

정승주씨(30)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신입사원이다. 지난 1월 초 첫 출근 뒤 이글스 점퍼를 입고 두 번째 달을 보내고 있다.

입사 면접 중 ‘이글스에서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한화 이글스에서 신인왕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프런트 채용 면접에서 ‘신인왕 배출’을 포부로 밝힌 것이 구단 고위 관계자에게는 맹랑하게 들릴 수 있었겠지만, 정승주씨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 속 진지함을 담아 굳은 각오를 펼쳐냈다.

정씨는 박사 논문만을 앞둔 서울대 의대 대학원생이었다. 생리학을 전공으로 기초의학을 파던 중 야구와 눈이 맞았다. 몇 해 전부터 사회인야구 일명 ‘용병 경기’를 뛰다가 본인 구속을 늘리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던 중 ‘바이오메카닉(생체역학, 운동역학)’에 빠져들었고, 끝내 선을 넘어 야구단 식구가 됐다.

지난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만난 정씨는 “야구를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매일 건강을 위해 헬스를 하는 것처럼 난 피칭을 했다”며 “처음 시작할 때 시속 80㎞밖에 안 나오던 구속이 평균 100~110㎞, 최고 120㎞까지 나왔다”고 말했다.

시작은 자기 피칭 동작을 비디오에 담아 다시 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투구폼을 이리저리 찍어 집중 탐구하면서 작은 동작부터 변화를 줘봤다. 이후로 눈이 트이면서는 개인 장비를 하나씩 사들인 것이 이어져 프로구단에서나 쓰는 ‘트래킹시스템’까지 갖추게 됐다.

정씨는 “그 결과값을 보고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폼을 교정할 것인가, 하고 복잡한 고민을 했다. 그 틈에 미국 일본 연구 자료까지 여럿 들여다보게 됐는데 그런 과정에서 장비를 더 많이 모으게 되고 그걸 또 적용해보고 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구위 향상을 위한 취미 활동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점차 장비 부자가 된 정씨는 야구단 입사 전에는 몇몇 프로 선수 출신들과 함께 엘리트 학생선수들의 성장을 도우며 보폭을 넓히던 중이었다.

구단 입사의 계기는 한화 그룹 계열사 채용 공고를 본 것이었다. 야구단 부문 채용 조건 1번은 열정, 2번이 야구 연구 경험이었다. 정씨는 공고문 속에서 자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정면 돌진한 끝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고향 청주의 부모님에게는 미처 전하지 못하고 벌인 일이었다. 의대 박사 코스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옆으로 급히 핸들을 튼 아들의 결정에 아버지는 처음에는 당황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주셨다.

정씨는 “당장 내려오라고 하셔서 여러 생각을 하고 갔는데, 이미 저지른 일이니 체념하신 듯했다. ‘열심히 해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정씨는 환골탈태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한화의 프런트 전문화 과정의 일환으로 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다. 입사 면접장에서 꺼낸 “신인왕을 만들고 싶다”는 말은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거듭 강조한다.

“고졸 루키가 바로 신인왕이 되기도 하지만, 구단에서 1~2년 잘 커서 신인왕이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경우 프런트는 훨씬 더 보람이 클 것 같아요. 훈련법이나 그에 맞는 처방도 이제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분화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 접근 과정에서 제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한화의 마지막 신인왕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정씨는 “2006년 MVP까지 한 류현진”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정씨는 그 다음 한화의 신인왕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 대전 |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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