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 최진혁의 반전

"읽는 만큼 돈이 된다"

최진혁의 반전

싱글즈 2021-01-14 18:00:00

최진혁의 반전

눈만 마주쳐도 겁을 먹게 만드는 날카로운 시선, 듣는 사람을 휘감는 것 같은 묵직한 목소리. 최진혁은 상남자 캐릭터를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그의 일상은 시트콤이나 마찬가지다.

수트 미쏘니, 셔츠 타임옴므, 슈즈 쥬세페 자노티.

어쩌다 보니 매서운 눈빛으로 기억되는 배우가 있다. 군 입대 전까지 10년 가까이 활동하며 얼마나 많은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작품에 출연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그를 기억할 때면 굳 은 얼굴을 먼저 떠올린다. 제대 이후 복귀작으로 OCN 드라마 ‘터널’을 준비하고 있는 최진혁의 이야기다. 그는 ‘로맨스가 필요해’나 ‘응급 남녀’를 통해 한껏 풀어진 채 헤헤 웃는 주인공을 연기했지만, 사람들은 지금 최진혁을 기억하며 ‘상속자들’의 기원이나 ‘오만과 편견’의 구동 치 검사부터 생각한다. “낮고 굵은 목소리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죠.” 사실 이건 최진혁에게 고민이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배우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배역을 말할 때 상남자 캐릭터를 빼놓지 않는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된 신인은 물론 10년 이상 연기를 한 베테랑 배우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남들은 못해서 안달인 배역인데 그는 그게 고민이란다. “상남자 캐릭터는 평소와 정반대예요. 말없이 째려보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죠. 대책 없이 풀어진 모습이야말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신인 때나 지금이나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대부분 무게 잡는 역할이에요.”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꽤 많은 수의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가 있다. 모두가 선 굵은 연기를 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난기 가득한 남자를 맡고 싶었다. 드라마 ‘응급남녀’는 그의 소신을 밀어붙인 결과다. 그리고 고집은 통했다. 그는 ‘상속자들’ 이후 ‘응급남녀’의 오창민을 통해서 새로운 매력을 보였다. 로맨틱 코미디가 처음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자꾸만 새롭다고 한다. 사실 우리가 정의를 위해 직진만 하는 검사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오만과 편견’의 구동치도 처음에는 장난을 즐기는 검사였다. “극 중에서 최민식 선배의 성대모사도 해요. 애드리브도 엄청 많이 했죠. 후반부에 가면서 진지해진 건데, 사람들은 마지막 모습을 많이 기억하더라고요.” 그가 아직도 아쉬운 마음이 남았는지 입을 삐죽거린다. “장난치는 것을 좋아해요. 아니, 사실은 좀 심하게 치는 편이에요. 친한 형들은 그만 좀 하라며 화를 내기도 하죠. 여자애들은 울기도 해요. 친구랑 둘이서 부산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해 서 혼자 가게 만든 다음에 먼저 내려가서 친구를 놀래킨 적도 있죠.” 이런 남자가 매번 눈에 힘을 잔뜩 주고 있어야 하니, 피곤할 법도 하다.

니트 뮌.

최진혁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꾸만 시트콤 장면이 떠오른다. 그도 부정하지 않는다. 시트콤에 도전하고 싶다는 욕심도 드러낸다. 그런데 이번에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에서 그는 형사 역할을 맡았다. 눈빛, 목소리, 체격. 차라리 진짜 형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그런데 방금까지 코미디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더니? “제가 맡은 형사 박광호는 1986년에나 10년차 베테랑이었지, 30년을 시간 여행해 온 이후에는 실수투성이 막내 형사에 불과해요. 사건을 해결하는 와중에 낯선 환경에도 적응을 해야 하니 쉽지 않죠.” 거친 모습만큼 웃긴 행동도 많다는 게 그의 설명. 문득 그도 2년 만에 적응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촬영 전날에는 잠을 자지 못했어요(웃음). 그만큼 기대가 컸죠.” 오랫동안 기다린 드라마 작업이지만 아무래도 2년 만의 촬영이 조금 어색하다는 말도 더한다. “촬영을 하다 보면 가끔 사람 없이 혼자서 연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물론 그것도 2~3일 정도 지나니까 괜찮아졌죠.” 최진혁은 ‘터널’의 형사 박광호를 연기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오랜만의 연기이기도 하지만 처음 접하는 새로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인도에 갇힌 상상을 하며 연기를 준비했다고 말한다. 수십 년 동안 섬을 탈출하지 못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는 남자. 문득 영화 ‘캐스트 어웨이’가 떠올랐다. 4년 만에 섬에서 탈출한 척 놀란드(톰 행크스)는 새로운 세상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가족들은 이미 그의 장례식까지 치렀고, 약혼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다. 박광호, 아니 최진혁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어쩌면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해도 탈출 시도를 멈출 것 같지는 않아요. 어딘가에는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가족 이야기라니. 하긴 그의 인터뷰를 보면 부모님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직접 새로운 가족을 꾸리고 싶은 생각은 없을까? 32살이면 이제 슬슬 결혼을 고민해 볼 만도 한데. “어렸을 때는 딱 서른 살에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어요. 당장 해야겠다는 압박이 없다는 거죠. 요즘은 마흔 넘어서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던걸요? 저도 당장은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혼은 10년 후에 해도 괜찮겠죠?” 그는 결혼에 대한 생각만큼 이상형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20대에는 긴 생머리에 청순한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뭐 얼마나 중요한가 싶어요. 대화가 잘 통하면 좋겠고, 재미있게 느끼는 것도 비슷하면 좋겠어요. 같은 걸 보고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해요. 참! 장난을 쳐도 안 울면 더 좋겠네요(웃음).”

코트와 팬츠 모두 노앙, 니트 볼리올리 바이 분더샵, 슈즈 에이레네, 시계 예거 르쿨트르.

드라마 ‘터널’에서 최진혁은 윤현민과 호흡을 맞춘다. 두 배우의 이름을 들은 사람들은 티격태격하는 브로맨스 케미를 기대한다. “저 역시 기대가 커요. 그래서 촬영 전부터 준비를 많이 했어요. 대본 리딩이나 연습도 함께하고, 둘이서 술도 많이 마셨죠. 친해지다 보면 연기 이상의 호흡이 나올 거라고 믿어요.” 사실 배우들 사이에서 그는 살가운 성격이 아니다. 쾌활한 성격 덕에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지만 그걸 부담스럽게 생각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연락하는 연예인 친구는 없어요. 주로 고향 친구들이나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죠. 그래서 주변에 일 이야기를 하며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적어요. 보통은 술 마시면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죠.” 물론 현장에서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편이다. “힘들게 작업하고 있는데 분위기까지 무거우면 더 괴롭잖아요. 그래서 스태프들에게도 장난을 많이 쳐요. 그게 주연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도 하죠. 책임감을 느껴요. ‘터널’은 에피소드마다 많은 수의 조연과 단역들이 출연해요. 잠깐이나마 그들이 촬영장을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드라마도 잘 될 수 있겠죠.” 그가 10년 전부터 이렇게 성실하고 착한 남자였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적에는 혈기왕성했죠. 화를 참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하지만 서른이 넘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보다 주변을 먼저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서로 마음이 맞지 않은 경우에는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가끔은 남자들끼리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불만을 가슴 깊숙한 곳에 담아두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이 남자는 그런 꽁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사과할 줄도 안다. 언제 무슨 장난을 칠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던 최진혁이 어느 순간 단단한 남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최진혁은 인터뷰 내내 ‘새로운 출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군대 제대 이후 첫 작품이기 때문은 아니다. ‘터널’이재 작년 이쯤에 종영한 ‘오만과 편견’ 이후 첫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여러 인터뷰에서 오만과 편견>을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고백했다. “스타가 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먼저 진짜 배우, 정말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데뷔 이후 꽤 오랫동안은 그저 열정으로 연기를 했어요. 방법은 잘 모르지만 무조건 열심히 했던 거죠.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런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만과 편견’을 만났죠. 하지만 작품을 통해 내가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연기를 보여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연출, 배우 등이 함께 어우러지며 얼마나 좋은 시너지 효과를 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를 ‘오만과 편견’을 통해 느낄 수 있었죠.” 그래서일까? 최진혁은 ‘터널’에서도 기대하는 것이 꽤 많다. “무조건 멋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욕심은 없어요. 새로운 작품을 통해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터널’의 형사 박광호를 통해 최진혁이 할 수 있는 역할이 꽤 다양하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런 다음에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씩 차근히 해나가면 되겠죠. 사람들 오해도 좀 풀고요(웃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와 몇 번의 사기를 당하고, 6000: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며 힘겹게 데뷔에 성공한 남자에게는 이미 검증된 패기와 끈기가 있다. “신인 때는 현장에서 온갖 욕을 다 먹었죠. 창피한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기죽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질책을 약으로 삼았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잘난 것은 없지만 어딘가 나만의 장점이 있다고 믿어요.” 최진혁은 지금도 매일을 신인의 마음으로 살고 있다.

재킷 엠포리오 아르마니, 니트 까날리, 팬츠 살바토레 페라가모, 슈즈 에이레네.

화보 속 최진혁은 장난스럽게 웃는다. 친구에게 덤비라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친구의 플레이를 여유롭게 바라보며 기다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기억에 진하게 남은 몇 편의 드라마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는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마도 그는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아니라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진짜 최진혁을 거침없이 꺼내는 남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바꿀 필요는 있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는 배우이기 때문이죠. 평생 한 가지만 연기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제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다. 어느 한 작품을 보는 중에도 다음 드라마나 영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힘이다. 그는 이미 사람들로 하여금 ‘다음에는 어떤 연기를 할까?’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다. 아직은 최진혁이 이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재킷과 셔츠 에트로, 팬츠 살바토레 페라가모, 슈즈 브룩스 브라더스.
니트 라르디니 by 신세계인터내셔날, 팬츠 반달리스트, 슈즈 푼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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