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의 삶을 보며: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것

스타크래프트 선수들의 삶을 보며: 프로페셔널이 된다는 것

ㅍㅍㅅㅅ 2021-01-14 15:01:03 신고

1.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 프로선수들의 삶을 보면, 인생이라는 게 얼마나 알 수 없고 다채로울 수 있는지를 느끼게 된다.

국내에서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막을 내리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 열풍이 시들면서, 당시 어느 스포츠선수 못지않게 큰 인기를 누리던 프로선수들은 각자의 삶을 선택해야 했다. 보통 다른 스포츠는 종목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선수 생활이 끝나면 코치, 감독, 강사, 교수, 협회위원, 해설위원 등 어느 정도 정해진 길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초의 e스포츠였던 스타크래프트1은 그 종목 자체가 사라진 경우였기 때문에, 억대 연봉을 자랑하던 선수들의 인생은 천차만별로 달라지게 된다.

스타크래프트2 리그로 진출한 경우도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니면 중국 등 스타크래프트1 리그가 여전히 존재하는 해외로 나간 경우도 있었다. 혹은 거의 연예인이 되어 연예계로 진출한 경우도 소수 있었고, 포커 등 다른 게임 장르에 진출한 사람도 있었다.

청춘을 오직 스타크래프트1에만 바친 몇몇 선수들은 지금도 아프리카TV나 유튜브 등에서 계속 같은 게임을 하면서 나름대로 인생을 이어가고 있다. 아예 프로 선수 생활을 접고 완전히 다른 인생을 시작하여, 공무원이 되거나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이 된 경우도 있다.

이분 근황이야 너무 유명하다.
이분 근황이야 너무 유명하다.

한때 ‘드론의 아버지’라 불렸던 이주영 선수는 치과의사가 되었다. / 출처: FOMOS, 치의신보
김태훈 선수는 7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형근 선수는 현대자동차(!)에 입사했다. 이외에도 인터넷에서는 수많은 근황을 찾아볼 수 있다.

 

2.

사실 한 종목의 프로선수가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절의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신체와 두뇌를 그 하나에 쏟아부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아내고 하면, 보통 아마추어와는 건널 수 없는 간극 같은 게 생긴다. 적당히 연주하고, 취미로 운동하고, 재미 삼아 게임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영역에 들어서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그런 프로성 혹은 전문기술을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기술 혹은 실력, 나아가 인지도와 명성으로 아직도 게임 방송 등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일부 개인방송인들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성공해서 정말 큰돈을 벌기도 했다. 물론 게임 방송만 한 것은 아니고, 다양한 방식으로 방송의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또 누구는, 한 분야의 프로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춘과 시간을 바친 일에서 과감하게 등을 돌려버리고 다른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또 다른 분야의 프로가 되어버린다. 과거에는 프로선수였지만, 지금은 치과의사나 법무사가 된 것처럼 나름의 영역 속에서 또 다른 프로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의 인생에 더 흥미가 간다. 그렇게 자기 삶에서 프로에 도달하는 영역, 전문적인 영역을 늘려 가거나 거쳐 갈 수 있다는 게 꽤나 멋지거나 재미있는 일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3.

프로 연주가가 된 사람은 평생 프로 수준에 가까운 연주를 할 수 있다. 흔히 한 분야의 프로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만 시간쯤 된다고 하는데, 어느 분야에든 청춘을 갈아넣어 1만 시간을 바쳤다면 그 프로의 기억은 인생 전체에서 잘 사라지지 않는다.

과거 프로 축구선수였던 사람은 동네 어느 동호회에서도 항상 에이스로서 경기를 즐길 수 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 축구 과외를 해줄 수도 있다. 축구 경기를 보는 눈도 남들과는 차원이 다를 만큼 디테일하고 깊다. 한 번 프로에 도달한 것은 인생의 무기가 되고, 풍요로운 감각이 되고, 자기의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일부분을 이루며 힘이 된다.

스타크래프트는 갔어도 그때 그 시절은 사라지지 않아ㅠㅠ

사실 나도 이런저런 것들을 취미 삼아 해보기도 했다. 취미로 했던 것들은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프로 근처라도 가보려고 애썼던 일들은 두고두고 남아서 나의 것이 된다. 그렇게 보면, 꽤 좋은 인생을 사는 방법 중 하나는 인생에 몇 가지 분야에서 프로에 도달한 것들을 남겨두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제 프로의 영역에서는 2군 선수에 불과했을 수도 있고, 인기 없는 작가나 밴드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과 마음을 다 바쳐 만들어낸 ‘프로의 영역’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고유의 것이 된다. 프로가 되는 영역을 인생에서 서너 개쯤 만들어보기, 라는 건 꽤 멋진 라이프스타일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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