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시대에도 콘텐츠를 '읽는' 이유

영상 시대에도 콘텐츠를 '읽는' 이유

코스모폴리탄 2020-11-22 08:00:00 신고


최근 몇 년 사이 텍스트 콘텐츠업계에 좋은 소식이 많았다. 글로벌 웹 소설 플랫폼 ‘래디쉬’가 지난 7월 750억원 투자를 유치했고, 채팅 형식의 웹 소설 플랫폼 ‘채티’도 지난해 25억원을 투자받았다. ‘리디북스’와 ‘밀리의 서재’는 무제한 도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독자층을 넓히고 있고, ‘뉴닉’, ‘어피티’, ‘더밀크’는 뉴스레터로 젊은 독자를 모으고 있다. 지식·정보 유료 구독 분야에서는 ‘퍼블리’와 ‘폴인’, 그리고 우리 팀(북저널리즘)이 활동하고 있다. 왜 지금, 다시 텍스트일까? 많은 것이 영상으로 설명되는 시대에, 왜 다시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 비즈니스가 부상할까?

비디오·오디오업계와 달리 텍스트업계는 더디 변화해왔다. 비디오 시장은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주도권이 넘어갔다. 오디오 시장에선 스포티파이와 애플뮤직이 겨루고 있지만, 텍스트 시장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과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전에 없던 시장이 열리면, 자본은 레버리지가 높은 곳으로 먼저 이동한다. 15년 전과 비교할 때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유통하는 과정은 놀라울 만큼 간편해졌지만, 텍스트를 읽고 쓰는 과정은 아날로그를 택하든 디지털을 택하든 큰 변화가 없다.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의 말을 빌리자면 디지털 전환기에 비디오와 오디오는 ‘0에서 1을 만드는’ 분야였고, 자본이 가장 먼저 투입됐다. 그 결과가 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애플뮤직으로 나타났다.

이제 완전히 성숙한 이 시장에선 전에 없던 가치를 찾기 힘들다. ‘1에서 n을 만드는’ 익숙한 모델이 늘어날 뿐이다. 자본은 다시 0에서 1을 만드는 분야를 찾기 시작한다. 콘텐츠업계에서 아직 성장 여력이 남아 있는 몇 가지 분야가 웹 소설, 지식·정보, 오디오(오디오북, 팟캐스트)일 것이다. 디지털 전환에 뒤처졌던 텍스트 시장이 지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좋은 딜이 거듭 생기고 훌륭한 인재들이 계속 모여든다면, 텍스트업계에도 넷플릭스 같은 창조적 독점 기업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텍스트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가 늘어난 배경으로 자본의 흐름과 함께 비(非)미디어 기업의 미디어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정보는 값이 싸다. 비싼 것은 그 정보를 해석하는 일이다. 인터넷에 거의 무한대의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에게, 미디어는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해석을 제공해야 한다.

명함 앱 ‘리멤버’는 양질의 경제 칼럼을 제공하고, 미국의 주식 거래 앱 ‘로빈후드’는 경제 전문지 못지않은 양질의 분석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패션 커머스 ‘무신사’는 패션 매거진을 펴낸다. ‘GE리포트’, ‘현대카드 DIVE’도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는 콘텐츠를 생산한다. 이들 기업은 리텐션을 높이기 위해 콘텐츠를 적극 활용한다. 온라인 패션 커머스라면 이용자가 의류를 구입할 때만 앱에 접속하게 할 것이 아니라, 구매 행위와 당장 관련이 없어도 앱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해야 한다. 리텐션을 높이고 검색 유입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콘텐츠 생산이다. 그리고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가 제작 시간과 비용 면에서 가장 경제적이다.

기업이 미디어 회사의 성격을 일부 지니게 되면 역설적으로 다음 세대에는 넓은 의미에서 모두 미디어 회사가 된다. 이런 환경이라면, 2000년대에 태어난 이용자들은 미디어와 커머스의 결합, 미디어와 하드웨어의 결합, 미디어와 공간의 결합 등 더 새롭고 다양한 조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에 뉴미디어는 어디에 집중해야 할까? 지식·정보 분야에서 일하는 우리 팀의 고민을 공유하고 싶다. 뉴스를 예로 들자면, 1970년대 일간지 1면의 기사 수는 10개가 넘는 반면 오늘 자 일간지의 1면을 보면 기사가 4개 안팎이다. 일간지 1면의 역할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서 해석과 맥락 전달로 이동했다는 얘기다. 우리 팀은 가치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런 새로운 가치를 MZ세대에게 전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이용자가 다양한 환경에서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접근성을 높이고, 콘텐츠를 매개로 독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뉴미디어의 역할은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다루는 것보다는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재정의하는 것에 있다. 콘텐츠를 만들고 퍼뜨리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는 것이다. 우리 팀은 시대가 변하고 시장 환경이 아무리 바뀌어도 이 가치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 집중하고 있다. 최소 시간에 최상의 지적 경험을 제공하고, 최고의 저자를 찾아 최상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다.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는 문제 해결이다. 콘텐츠 이용자 입장에서 불합리했던 부분, 불편했던 부분, 필요했던 부분을 하나씩 개선해나가려고 한다.


Writer 이연대(‘북저널리즘’ 대표) Design 김지은 Editor 하예진 Photo by Getty Images 기사등록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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