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 희대의 사건

"읽는 만큼 돈이 된다"

희대의 사건

모터트렌드 2020.11.21 12:40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었던 소설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 실제 벌어졌던 일이다

1978년
포드 핀토 리콜 사건
1972년 5월, 한 여성이 13세의 이웃집 소년을 포드 핀토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화기가 고장난 차는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며, 이내 옆으로 넘어갔다. 뒤따르던 차는 도로 가운데 멈춰 선 핀토의 꽁무니를 시속 48km로 추돌했다. 그 순간 치명적인 화재가 발생했다. 운전자와 소년은 탈출할 틈도 없이 참혹하게 사망했다. 유족들은 너무나 급격하고 크게 번진 화재를 수상히 여겨 제조사인 포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NHTSA도 수사에 들어갔다. 결국 트렁크 아래 배치한 연료탱크를 보호하는 구조물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때문에 시속 32km 이상으로 추돌하면 화재 및 폭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포드 핀토

사태를 이렇게까지 몰고 간 건 포드였다. 포드는 이미 결함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1 대당 11달러를 더 들여 설계를 바꾸는 것보다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보상하는 게 회사에 더 큰 이익이라고 계산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법정에서야 밝혀졌다. 유족과 배심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결국 포드는 피해자들에게 250만 달러, 징벌적 손해 배상금으로 1억2500만 달러를 물었다. 참고로 포드는 설계를 안전하게 바꿀 때 1억3700만 달러가 더 들 것으로 계산했다. 반면 피해보상은 4950만 달러면 될 것으로 여겼다.

존 들로리언은 끝내 재기하지 못했다.

1982년
존 들로리언 코카인 소지 혐의 기소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 유명한 들로리언 DMC를 만든 존 들로리언이 1982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FBI에 체포됐다. 무려 2400만 달러(약 240억원)어치에 이르는 어마 어마한 양이었다.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 전역이 들썩였다.

천재 엔지니어로 추앙받던 존 들로리언은 1973년 GM을 퇴직하고 북아일랜드로 건너가 들로리언 모터 컴퍼니(DMC)를 설립했다. 미국을 떠나 그곳에 회사를 만든데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영국은 분리독립 운동이 벌어진 북아일랜드의 민심 수습이 필요했다. 대책으로 이 지역의 경기 부양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영국은 들로리언에게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 지역에 회사와 공장을 건립할 수 있는 부지를 제공했다. 세제 혜택도줬다. 직접 투자도 감행했다. 여기엔 자동차 공장이 커지면 고용 인원이 많아지고 부품사도 들어와 지역 경제가 부흥하리란 계산이 깔려 있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하고 로터스의 콜린 채프먼이 설계한 들로리언 DMC.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타임머신으로 나왔다.

하지만 신차 개발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영국 정부는 성과를 압박했다. 당황한 들로리언은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미완의 들로리언 DMC를 시장에 내놓는 실수를 범했다. 초반엔 혁신적인 디자인과 들로리언의 명성 때문에 잘 팔렸다. 그러나 이내 각종 결함이 드러나고 비싼 가격이 문제가 되면서 판매량이 급감했다. 영국 정부도 각종 특혜와 투자를 철회했다.

막대한 자금난에 휩싸인 존 들로리언은 다시 그릇된 선택을 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코카인 유통에 손을 댄 거다. 코카인 소지 혐의로 체포된 그는 며칠 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정에서도 FBI의 함정수사에 걸려든 게 밝혀져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그의 명성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회사는 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끝내 둘 다 파산했다.

전 세계적으로 10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 사태

2000년
포드 익스플로러 + 파이어스톤 타이어 리콜
포드의 2세대 익스플로러에 들어간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결함은 여러 사람들의 함구 속에 271명의 사망자와 800명 이상의 부상자를 유발했다. 결함을 가장 먼저 인지한 이들은 미국의 상해변호사들이었다. 1996년 이미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트레드가 고온에서 분리되며 전복사고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NHTSA에 알리지 않았다. 자신들이 대리한 소송에서 불리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애리조나 주정부는 파이어스톤에게 고온 시 트레드 이탈에 대한 조치를 명했다. 파이어스톤은 1997년 초부터 ATX와 ATX II, 윌더니스 AT 타이어로 인해 발생하는 상해 사고가 증가함을 파악했다. 포드 역시 1998년 같은 사실을 인지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로 베네수엘라에서만 46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포드는 베네수엘라에서 조용히 파이어스톤 타이어를 교체해줬다. NHTSA는 2000년에 들어서야 종합적인 사실을 인지하고 조사에 들어갔다. 포드와 파이어스톤 모두 진작 결함을 인지한 사실을 파악했다.

결국 수백의 인명이 희생된 이 사건 때문에 파이어스톤과 포드는 총 2300만개의 타이어를 리콜했다. 리콜 비용과 벌금, 배상금으로 파이어스톤은 16억7000만 달러, 포드는 5억 30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사건의 여파로 시장 점유율이 반토막으로 떨어진 파이어스톤의 모기업 브리지스톤은 구조조정 비용으로 20억 달러를 감내했다. 포드 역시 55억 달러의 손실을 견뎌야 했다. 100년간 지속된 포드와 파이어스톤 가문의 관계도 여기서 갈라지고 말았다.

시작은 렉서스 ES 350의 급발진 사고였다.

2009년
토요타 급발진 사태
2009년 8월 28일, 911에 급박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왔다. 가속페달이 떨어지지 않아 시속 193km까지 치솟았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끝내 사고를 피하지 못한 이 차에는 일가족 4 명이 타고 있었고 모두 희생됐다.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사고 순간까지 녹음된 신고 전화 내용이 공개되며 급반전했다. 여론은 결함을 직감했고 토요타를 향해 매서운 날을 세웠다. 사고차가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의 ES350이었기 때문이다.

조사에 들어간 NHTSA는 가속페달이 매트에 끼면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기계적인 결함이 아니라는 토요타의 주장을 받아들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것은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할 뿐 근원적인 해결은 아니다.”라는 모호한 의견을 덧붙였다. 이후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토요타와 렉서스의 급발진 의심 신고가 미국 내에서만 1000건이 넘었고, NHTSA가 관련 조사를 7년간 8번이나 실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논란이 점차 증폭되자 민간단체의 도움까지 받은 NHTSA는 최종적으로 급발진의 원인을 소프트웨어 결함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급발진과 소프트웨어의 연관성이 최초로 인정됐다.

토요타는 이 사건과 관련해 총 1200만대를 리콜했다. NHTSA는 늑장 리콜을 이유로 61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법정에서는 기소유예를 조건으로 벌금 12억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ES350 사고의 유가족들에게는 1000만 달러를 배상했고, 그 밖에 400여 건의 급발진 소송에도 각각 합의금을 물었다. 이로 인해 토요타는 총 40억 달러를 지출했다.

기괴한 초대형 세단 어울림 모터스 뱅가리

2013년
어울림모터스 뱅가리 공개
커튼이 올라가고 5.6m에 이르는 초대형 럭셔리 세단이 등장했다. 장내에 있는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기괴한 생김새와 조잡한 상태가 황당했기 때문이다. 이 해괴한 차는 스피라라는 국산 스포츠카를 만들던 어울림모터스에서 발표한 세단 뱅가리다. 스피라의 뼈대를 억지로 늘려 만들었는데, 가장 기괴했던 건 뒷문짝이었다. 앞문짝을 반대로 달아 수어사이드 도어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휠베이스가 3.92m까지 늘었다. 지붕도 헤드룸을 확보하기 위해 억지로 높였다. 마감은 조악했다. 리어미드십 구조의 엔진 배치도 손보지 않았다. V6 3.5ℓ 자연흡기 엔진의 우렁찬 엔진음과 과격한 배기음이 뒷좌석에 앉은 VIP의 귓전을 세차게 때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트렁크도 없고, ESC도 빠졌다. 이 차에는 안전벨트도 없었다.

이런 괴이한 차가 나온 건 모기업의 위기 때문이었다. 당시 어울림모터스와 묶여 있던 어울림그룹이 각종 소송과 추문에 휩싸이며 경영 위기를 맞고 상장폐지된 상황이었다. 이를 타개하려면 회사에 여전히 비전과 성장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투자를 끌어내야 했다. 이에 대한 미끼로 뱅가리를 제작했던 것이다. 어울림모터스는 끝내 회생하지 못했다. 모기업인 어울림그룹은 해체됐으며 책임자들은 재판을 받았다. 국내 최초의 수제 스포츠카로 탄생한 스피라 역시 그렇게 역사 속으로 저물고 말았다.

CREDIT
EDITOR : 고정식 PHOTO : 각 제조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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