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픽 : 베풂과 만남이 작동하는 ‘따뜻한 시장’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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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풂과 만남이 작동하는 ‘따뜻한 시장’은 가능할까

세계일보 2020.11.21 01:00

저자 루이지노 브루니는 “싸늘한 시장경제 안에 만남과 관계를 불러와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모두 함께 잘 사는 콤무니타스(공동체) 이코노미라고 강조한다. 시장 경제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더불어 잘 사는 법을 모색하는 책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루이지노 브루니/강영선·문병기외 7인/북돋움출판협동조합/1만7000원

이탈리아 룸사대학교수로 시민경제학, 사회적 경제 분야 세계적 석학인 루이지노 브루니는 ‘콤무니타스 이코노미’에서 작금의 시장경제를 새롭게 보는 눈을 제안한다. 베풂과 만남이 시장 안에서 작동케 해 시장경제 안에서 함께 잘사는 방법을 제시한다. 책에서 말하는 콤무니타스는 공동체를 뜻한다. 공동의 땅, 공통의 기반 위에서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생활 공동체가 콤무니타스다. 

책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자유와 의사가 존중받는 계약이 있는 시장의 역할을 높이 샀지만 반면에 그 시장을 이루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시장경제는 문명의 발달을 이끌었지만 쌓이는 부는 나누어지지 않고 양극화되어 계층 문제, 빈곤, 기아, 실업, 생태 파괴 등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진짜 만남’이다. 계약만 있으면 되지 인간은 없어도 크게 문제 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시장 이해를 넘어 싸늘한 시장경제 안에 ‘만남’과 ‘관계’를 불러와 따뜻한 시장을 만드는 것, 그것이 모두 함께 잘 사는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다. 저자는 ‘모두를 위한 경제 EoC(Economy of Communion)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강연해 낯익은 인물이다. 

“이런 도시를 한번 상상해보자. 아파트는 세대별로 완벽하게 독립돼 있다. 외부의 소음과 타인의 시선이 모두 차단되어 이웃 간에 서로 방해할 수도 없다. 의사소통은 모두 이메일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좀 더 신중한 결정을 하려면 화상통화를 한다. 대학 강의도 인터넷을 통해 듣고, 고도로 훈련된 교수들이 세계 어디서든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직접 지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을 맞대고 만날 필요가 전혀 없다. 여러분은 이런 도시에 살고 싶은가?”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것은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빚어진 비대면 사회의 단면을 표현한 게 아니다. 2007년 이탈리아에서 발행된 책의 초판 서문이다. 당시 저자는 만남과 관계가 극단적으로 단절된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과장된 상상을 동원했지만 그런 사회는 어느새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사회가 한 발자국 앞서서 왔지만 이런 사회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상 속의 도시에서처럼 모든 갈등의 전제 조건을 사전에 없애고 공동체적 삶의 필요성을 제거한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깊은 만남이 불가능해지고 그렇게 단지 ‘스쳐갈 뿐’인 관계에서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루이지노 브루니/강영선·문병기외 7인/북돋움출판협동조합/1만7000원

‘국부론’을 통해 근대 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계약 관계가 신분과 세습, 충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영주와 농노라는 관계에 묶여 있던 대중을 자신만의 인격을 지닌 개인으로 독립시켰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시장의 중재’가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주고 문명의 발달을 가져올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경제를 돌아보자. 저비용 고효율을 쫓고 성과만을 높이 사며 이익을 위해 경쟁 극대화로 치닫는 현대 경제는 실업, 빈곤, 기아, 환경 파괴, 불평등, 양극화 등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저자 브루니는 이러한 문제의 경제학적 시초는 애덤 스미스가 시장을 볼 때 인간관계를 고려하지 못한 데 있다고 보고, 그것을 ‘애덤 스미스의 원죄’라고 부른다. 브루니의 이런 시각은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정의와 도덕, 신뢰와 공감을 강조했음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지만, 현대 시장경제가 이러한 덕성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 애덤 스미스의 원죄를 씻고 우리가 우리의 시대를 잘 살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브루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책이 시장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부추기거나 시장 없는 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 이 책에 숨어 있는 의도는 타인 및 공동체가 지닌 극적인 신비(神秘)와의 만남이 왜 중요하고 시급한지에 대해 몇 가지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시장경제라는 시스템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을 끝없는 경쟁의 장으로만 보아온 우리들에게 있다. 그렇다면 경쟁의 시장이 아닌 공동체의 시장,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짜 만남과 관계’가 그 답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함께’다. 인류는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서 존재했고 베풂과 배려 속에서 함께 살아왔다. 또한 최근의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가 말해주듯이, 인간은 상대방이 나에게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면 자신의 손해조차도 기꺼이 감수하려 드는 존재이고 ‘행복의 역설에 관한 연구’에서도 볼 수 있듯 가장 부자가 가장 행복한 것도 아니다.

루이지노 브루니 이탈리아 룸사대학교수

그렇다면 브루니가 강조하는 진짜 만남이란 어떤 것일까. 마스크 없는 세상이 다시 돌아와 온라인 화상회의가 아니라 회의실에서 대면 회의를 하는 것일까. 혹은 친구들과 카페나 술집에 모여 앉아 비말 걱정 없이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것일까. 브루니가 말하는 만남은 타인과의 부딪침이고 관계 맺음이다. 그러므로 이 만남에는 갈등과 상처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가 ‘타인에 의한 상처-경제와 인간관계’인 이유다.

이러한 만남과 관계가 경제학과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모색하는 것이 바로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저자의 의도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철학, 인류학, 종교학까지 넘나드는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무한경쟁으로 치달아 끝장나 버릴 것만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렇게라도 유지되는 이면에는 우리가 재화로서 인정하기는커녕 그 작동 여부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인간적인 만남과 관계 맺음, 이기적 본성 못지않은 무상성(無償性)의 힘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사람와 사람의 관계가 살아 있는 시장, 콤무니타스 이코노미는 형제적 우애를 나눌 수 있고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나의 선의와 상대의 배려가 서로 부딪칠 수 있는 진짜 만남,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때 우리는 인류의 공존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 경제는 계약만 있는 처절한 전쟁터가 결코 아니다. 따뜻한 시장이 가능하다. 그러자면 이 살벌한 시장에 우리가 불러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관계’와 ‘만남’이라는 것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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