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인생

작품명, 인생

브릭스 2020-10-23 13:59:31 신고

여행 매거진 BRICKS Life

여백의 무게 #6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 제목을 ‘인생’이라 지을까 생각 중이다. 한 사람의 모습이 여백에 비친 작품이다. 내가 바라보는 지점에서는 형태를 알 수 없는 검은 기둥만 보이고, 아이가 바라보는 지점에는 어른이, 노인이 바라보는 지점에는 청년이 보인다. 

인생이란 무에서 와서 무로 돌아가는 것. 허상 같은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인생이란 걸 표현하다 보면 결국 허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도 방향이 중요한 것은, 한 방향에서 바라볼 때는 단편적으로만 보이던 사실이 주위를 돌며 여러 각도에서 볼 때는 하나의 형상이 다양한 측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로써 하나의 사물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굴만 있는 작품으로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기에서 아이로,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처녀로, 아줌마로, 할머니로 이어지는 얼굴이다. 물론 여백으로. 

이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하나의 기둥처럼 서 있는 작품에 한 사람의 일대기가 맺히는 것을 상상하니 무척 흥미롭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야 하기에 수많은 드로잉이 필요하다. 세상과 인간을 뒤집어 볼 수 있는 시각도 필요하고,그에 대한 숙고의 시간, 그것을 보편적으로 풀어 줄 철학, 그리고 방향성. 

흙으로 뭉뚱그려 놓은 사물은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사물에서 눈을 떼 여백까지 바라볼 때야 그 사물이 한 사람의 일생을 나타낸 것이란 걸 알게 된다. 변화야말로 한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그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가능하리라 생각하고 작품에 임한다. 그가 경험한 일생, 슬픔, 고독, 사랑, 자유, 그를 통해 얻게 된 지혜가 담기길 바란다. 그 지혜가 내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 주길 바란다. 

∨ 형태만으로도 압도적일 것.

∨ 표면 질감만으로도 설득력이 있을 것. 

복제가 너무 쉬운 세상에서 진짜 작품의 가치는 무엇일까? 

작가의 생각? 경험? 자꾸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의식하게 된다. 나에게 집중하자. 크기가 작다고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그림자와 여백을 품고 있으니 작은 크기로도 얼마든지 거대하게 구현할 수 있다. 그러니까 크기를 키우려고 애쓰지 말자. 크기 때문에 디테일이 떨어지느니, 작은 작품을 세심하게 만들어내는 게 더 낫다. 그렇더라도 힘이 닿는 만큼 거대하게 만들어보고 싶기는 하다.

아이디어 스케치: life

글/작품 안경진


안경진은 조각가로 현재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하나의 형태에서 여러 가지 형상이 빚어지는 조각을 만들고 있다. 2004년 첫 번째 개인전 〈여행〉 이후 아홉 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백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공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릴 수밖에 없는』을 펴냈다.

인스타그램 @artin_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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