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이야기
」또 다른 친구는 취업하자마자 자취방부터 옮겼다. 대학가 원룸에 살던 친구는 역세권 신축 풀옵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이 친구는 다달이 월세 90만원(관리비는 별도다)을 내면서 몇 년째 이 오피스텔 인프라를 누리는 중이다. 지하철역도 가깝고, 주변에 공원도 있고, 맛집도 많다. 내 집 마련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오피스텔에 살면서도 아파트를 보러 다닌 적도 있다. 하지만 영끌을 해도 구매 가능한 아파트는 서울 외곽 연식이 오래된 물건들뿐이었다. 거기엔 맛집도 공원도 없었다. 지하철역도 멀었다. 왠지 동네 자체가 칙칙해 보였다. 지금 거주하는 오피스텔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주거 환경이 좋지 않았다. 번번이 내 집 마련 타이밍이 왔을 때 선뜻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는 어떤가. 2~3년 전만 해도 이 친구가 살 수 있었던 서울 외곽 아파트 가격도 많이 올랐다. 친구는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구축 아파트 대신 신축 전세를 택한 신혼부부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공부는 이론보다는 케이스 스터디가 효율적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다. 이것도 주변 이야기다. 특정 커플을 특정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그냥 너무나 흔한 케이스다.
몇 년 전 일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있었다. 주말마다 신혼집을 보러 다녔다. 이 부부는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4억원 대 아파트를 매수할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서울에서 이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없는 것도 아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노원구 상계주공 아파트 소형 평수를 매수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는 1980년대에 지어졌다. 신혼부부가 서울에서 첫 집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 대부분이 상계주공처럼 서울 중심지에서 떨어진 오래된 물건들뿐이다. 부모가 집값 상당수를 보태줄 수 있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다들 사정은 비슷하다. 어쩌면 신혼집으로 전세, 월세가 아니라 매수를 노린다는 거 자체가 평균 이상의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커플은 기회가 있었는데도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구축 아파트만 본 게 아니다. 신축 아파트도 보러 다녔다. 물론 이 아파트를 매수할 돈은 없었다. 그냥 모델하우스 구경하듯이 역세권 신축을 보러 다녔다. 보는 건 자유니까. 신축을 보다 보니 구축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지하주차장도 없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 생각을 하니까 괜히 우울해졌다. 그런 집조차 4억 이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 괜히 억울했다.
이때 신축 아파트가 유혹의 손길을 건넸다. 4억으로도 그곳에 거주할 수 있었다. 물론 매수가 아니라 전세 방식으로. 결국 이 커플은 구축 아파트 매매 대신 신축 아파트 전세를 택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고 있을까? 전혀 아니다. 그때라도 구축 아파트를 사야 했다며 한숨 쉰다. 4억 원대로 살 수 있었던 집들은 이제 3억 이상씩 다 올랐다. 집값만 오른 게 아니다. 본인이 사는 신축 아파트 전세금도 올랐다. 결국 아파트 퀄리티를 낮춰서 다른 전세로 이사를 가야 했다.
부동산은 차근차근 올라가는 사다리
」하지만 언젠간 서울에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길 원하는 사람들이 구축 매수 대신 신축 전세를 택하는 건 나쁜 선택이다. 전세에 산다는 건 자산증식 효과를 아예 누리지 못한다는 의미다. 물가 상승률을 따지면 사실상 자산을 잃는 것이다. 그런데 신축에 살다 보면 눈은 또 올라간다. 구축 아파트에 등기를 치고 사는 친구들이 언뜻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일시적인 우월감일 뿐이다. 아파트는 사다리다. 처음부터 10억 넘는 신축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낡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신축 아파트가 주는 편의를 한번 맛본 사람은 오래된 아파트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몰락해버린 스타들이 렌트를 해서라도 고급 외제 차를 끌고 다니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적응이 꼭 좋은 결과만을 주는 건 아니다.
글 조성준 에디터 김초혜 사진 unsplahs /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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