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진단] 유럽에 철강 팔수록 탄소값 붙는다…포스코·현대제철 'CBAM 원년'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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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진단] 유럽에 철강 팔수록 탄소값 붙는다…포스코·현대제철 'CBAM 원년' 성적표

폴리뉴스 2026-09-22 13:58:13 신고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생성형 AI]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사진=생성형 AI]

유럽으로 철강을 수출할 때 따져야 할 원가 항목이 하나 더 생겼다. 철광석 가격이나 전기료, 운임이 아니다. 철강을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다.

유럽연합(EU)이 올해 1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확정기간으로 전환하면서 2026년은 한국 철강산업에도 '탄소 원가'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첫해가 됐다. 202310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배출량을 보고하는 전환기간이었다면 올해 생산·수출한 제품부터 실제 비용 부담으로 연결된다. EU 수입업자가 CBAM 인증서를 구매·제출하지만 국내 철강기업에도 제품별 탄소배출량이 가격과 거래조건을 결정하는 변수가 됐다.

탄소가격도 이미 나왔다. EU 집행위원회가 산정한 올해 CBAM 인증서 가격은 1분기 이산화탄소(CO) 1톤당 75.36유로, 2분기 75.28유로다. 3분기 가격은 다음 달 5일 발표된다. 탄소를 많이 배출해 만든 철강일수록 유럽 시장에서 비용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숫자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받아든 CBAM 첫해의 청구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올해 수입된 CBAM 대상 제품에 대한 첫 신고와 인증서 제출 기한은 2027930일이다. 올해가 '탄소값을 매기는 해'라면 실제 정산은 내년에 이뤄지는 셈이다.

철강 가격표 옆에 붙은 '탄소 가격표'

CBAM의 출발점은 EU 배출권거래제(ETS).

EU 역내 철강업체는 ETS를 통해 탄소배출 비용을 부담한다. EU는 역외에서 생산한 제품이 같은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규제가 약한 국가의 제품이 가격경쟁에서 유리해지고, 탄소 다배출 생산시설이 역외로 이동하는 '탄소누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CBAM은 이 차이를 국경에서 조정하는 제도다. 철강을 비롯해 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이 대상이다. 올해부터 일정 기준을 넘는 CBAM 상품을 수입하는 EU 수입업자는 승인된 CBAM 신고인이 돼 제품에 내재된 탄소배출량을 신고해야 한다. 생산국에서 이미 탄소가격을 부담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그만큼 차감할 수 있다.

철강기업에는 까다로운 변화다. 과거 유럽 시장에서 제품 가격과 품질, 납기 등이 경쟁력을 결정했다면 이제 '철강 1톤을 만드는 데 탄소를 얼마나 배출했는가'까지 원가표에 들어간다.

수출기업이 CBAM 비용을 EU에 직접 납부하는 것은 아니다. 인증서를 구매해 제출할 의무는 EU 수입업자에게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과 무관한 비용도 아니다. 수입업자는 제품을 선택할 때 탄소비용까지 계산하게 되고 이는 가격협상과 공급계약 조건으로 국내 철강기업에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같은 품질과 가격의 철강이라면 탄소를 적게 배출한 제품이 유리해지는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포스코, 광양에 6000억원 전기로고로보다 탄소 75% 줄인다

포스코의 대응은 생산공정을 바꾸는 데 맞춰져 있다.

지난 6월 광양제철소에 연산 250만톤 규모의 대형 전기로를 준공했다. 6000억원이 투입됐다. 포스코에 따르면 전기로를 이용하면 기존 고로 방식과 비교해 탄소배출량을 약 75% 줄일 수 있다. 전기로 쇳물과 고로 쇳물을 혼합해 자동차강판 같은 고급강을 생산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고로와 전기로의 차이는 탄소 문제와 직결된다. 기존 고로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과정에 석탄을 대량 사용한다. 철강산업이 대표적인 탄소 다배출 업종으로 꼽혀온 이유다.

전기로는 철스크랩 등을 전기로 녹여 쇳물을 만들기 때문에 고로보다 탄소배출량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포스코가 전기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단순한 친환경 경영 차원을 넘어선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탄소배출량이 제품 경쟁력으로 바뀌고 있어서다. 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까지 이어지는 생산체계 전환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비용이다.

고로 중심의 제철소를 저탄소 생산체제로 바꾸는 작업은 기존 설비를 조금 손보는 수준이 아니다.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저탄소 전력과 원료 확보까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철강 시황이 좋을 때도 부담스러운 투자를 업황 부진기에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포스코가 풀어야 할 숙제다.

현대제철도 HyECOsteel탄소 20% 낮춘 철강 생산

현대제철도 생산공정 전환에 들어갔다.

현대제철은 전기로에서 철스크랩과 원료를 먼저 녹인 뒤 고로 쇳물과 혼합하는 전기로-고로 복합공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정으로 생산하는 저탄소 제품이 'HyECOsteel'이다. 현대제철은 기존 고로재보다 탄소배출량을 20% 이상 낮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부터 생산을 시작하고 중장기적으로 신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을 통해 탄소배출량을 더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다음 단계인 'Hy-Arc'에서는 기존 고로 제품보다 탄소발자국을 약 40%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동차강판을 비롯한 고부가 철강재에서도 탄소 감축과 품질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기술적 접근은 조금씩 다르지만 향하는 곳은 같다.

과거 철강사의 경쟁력은 생산량·품질·원가로 평가됐다. CBAM 시대에는 여기에 제품 1톤당 탄소배출량이 들어왔다.

특히 자동차강판처럼 유럽 완성차 업체와 직접 연결된 고부가 제품에서는 저탄소 여부가 납품 경쟁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와 깃발들 [사진=생성형 AI]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와 깃발들 [사진=생성형 AI]

CBAM만이 아니다EU, 철강 무관세 쿼터 46% 줄였다

한국 철강기업을 압박하는 유럽발 규제는 CBAM 하나가 아니다.

EU는 지난 71일부터 새로운 철강 수입조치를 시행했다. 철강 30개 품목에 대한 연간 무관세 수입쿼터를 약 1835만톤으로 제한하고 이를 넘는 물량에는 50% 관세를 매긴다. 기존 쿼터 3382만톤에서 약 46% 줄어든 규모다.

한국은 EU와의 협상을 통해 약 2073000톤의 전용 쿼터를 확보했다. 기존 2581000톤보다 19.7% 감소했다. 전체 쿼터 감소율보다는 낮지만 한국 철강업체가 별도의 관세 없이 유럽으로 보낼 수 있는 전용 물량 자체가 줄었다.

수출 통계에도 이상 신호가 잡혔다.

지난 7월 한국의 대EU 철강제품 수출액은 188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1.2% 감소했다. 수출량도 18948톤으로 44.8% 줄었다. 7월 수출액으로는 201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숫자를 모두 EU 규제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EU 철강 수출은 신철강조치가 시행되기 전인 4월부터 감소세를 보였다. 철강 수요와 가격, 선적 시기 등 다른 변수도 섞여 있다. 업계에서도 새 규제의 장기적인 영향을 판단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시각이 나온다.

그럼에도 유럽 시장의 문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철강 수입량을 제한하는 쿼터와 관세에 더해 제품 생산과정의 탄소배출량까지 따지는 CBAM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중국산과 가격 싸움하면서 저탄소 설비에도 투자

철강업계의 고민은 여기서 더 복잡해진다.

유럽에서는 탄소비용과 수입규제에 대응해야 하고 국내외 시장에서는 글로벌 공급과잉과 저가 수입재의 압박을 견뎌야 한다.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탄소 설비에는 막대한 돈을 투입해야 한다. 투자하지 않으면 CBAM과 글로벌 기업의 공급망 탄소감축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고, 투자하면 당장 생산원가와 재무부담이 커진다.

전기로 확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전기로 비중이 높아질수록 고품질 철스크랩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사용하는 전력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됐는지도 탄소배출량과 연결된다.

저탄소 철강 전환은 제철소 안에서 설비 하나를 교체하는 문제가 아니라 원료·전력·생산기술까지 함께 바꾸는 산업 전환에 가깝다.

정부도 기업 지원과 EU 협의를 병행하고 있다. 산업통상부·중소벤처기업부·기후에너지환경부·관세청은 지난 2CBAM 대응 합동설명회를 열고 이행규정과 기업의 실무 대응방안을 점검했다.

가장 최근에는 산업통상부 대표단이 지난 16~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원회 조세총국·통상총국 등과 만나 CBAM을 포함한 주요 통상규제를 논의했다. CBAM 확정기간이 시작된 뒤에도 한국 기업의 부담을 둘러싼 정부 간 협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첫 청구서는 내년에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CBAM 원년의 성적표를 지금 수출액만으로 평가하기는 이르다.

올해 EU로 들어간 제품에 대한 첫 CBAM 신고와 인증서 제출은 내년 930일까지다. 올해 1·2분기 인증서 가격은 CO1톤당 75유로를 넘어섰지만 포스코와 현대제철 제품에 실제 얼마만큼의 비용이 붙을지는 제품별 배출량과 EU 수입업자의 신고 등을 거쳐야 확인된다.

그래도 첫해에 드러난 변화는 뚜렷하다.

철강기업이 관리해야 할 원가에 탄소가 들어왔다. 포스코가 광양 전기로에 6000억원을 투입하고 현대제철이 HyECOsteel을 내놓는 것도 이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저탄소 투자는 당장 기업에는 비용이다. 투자를 늦추면 수출시장에서 더 큰 비용을 부담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점이 과거와 달라졌다.

2026년은 CBAM이라는 새로운 환경규제가 시행된 해라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재는 기준이 '얼마나 싸고 좋은 철강을 만드느냐'에서 '얼마나 적은 탄소로 좋은 철강을 만드느냐'까지 넓어진 첫해.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받아들 실제 첫 청구서의 액수는 내년에 확인된다. 탄소를 원가로 바꿔 계산하는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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