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최송목 작가 = 신문을 펼치면 오늘도 ‘오늘의 운세’가 눈에 들어온다. 별자리와 띠별 운세, 사주와 타로, 관상과 풍수까지 우리는 어느새 수많은 방식으로 미래를 묻고 있다. 예전에는 점집을 찾는 일이 조금은 숨겨야 할 일이었다면, 요즘 타로와 사주를 찾는 모습은 카페에 들르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대학가와 관광지에 타로·사주 가게가 들어서고, 젊은이들이 데이트 삼아 카드를 뽑고 사주를 본다.
최근 신문기사에 소개된 관악산 풍경은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 역술인이 “운이 풀리지 않으면 관악산에 가라”라고 말한 뒤,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과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자영업자, 자녀의 결혼을 소원하는 부모 등이 관악산을 찾았다. 정상에는 인증 사진을 찍으려는 긴 줄이 늘어섰고, 돌탑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은 돌이 쌓였다. 기사에 소개된 조사에서는 점·사주·관상을 믿거나 경험했다는 응답이 각각 상당한 비율을 차지했고, 특히 2030 세대의 관심도 두드러졌다.
이 풍경을 단순히 ‘미신의 유행’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묻는 것은 결국 비슷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취업은 될까, 장사는 풀릴까,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미래가 불확실할수록 사람은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진다. 알 수 있다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어쩌면 타로 한 장이나 사주 한 번이 잠시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위로가 삶의 방향을 대신하기 시작할 때다. 미래에 대한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기보다 누군가의 해석에서 찾기 시작하면, 삶의 주도권도 조금씩 바깥으로 밀려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오래된 손자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以虞待不虞者勝(이우대불우자승)”
《손자병법》 「모공편」에 나오는 말이다. 손자는 승리를 아는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로 ‘以虞待不虞’를 들었다. ‘虞’는 대비하고 준비한다는 뜻이고, ‘不虞’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가리킨다. 결국 뜻밖의 상황에 대비한 사람이 승리한다는 뜻이다. 손자는 미래를 맞히는 방법을 말하지 않았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전제에서 준비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점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묻지만, 손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묻는다. 전자는 미래의 답을 찾는 일이고, 후자는 미래를 맞이할 자신의 힘을 준비하는 것이다.
손자는 「구변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無恃其不來,恃吾有以待之(무시기불래, 시오유이대지).”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내가 그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믿으라”는 뜻이다. 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의지하지 말고, 오더라도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다. 전쟁 기반의 문장이지만,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묘하게 현실적이다.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이 오기를 바라고 나쁜 일은 오지 않기를 바란다. 올해는 운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안도하고, 나쁜 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 겁을 먹는다. 그러나 미래는 점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일이 올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미래를 정확히 알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을 준비가 아닐까.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올해 취업운이 좋다”는 말보다 취업이 늦어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재물운이 들어온다”는 예언보다 경기가 나빠져도 버틸 수 있는 자금과 전략이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도 좋은 운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예상 밖의 상황을 받아낼 준비다.
물론 준비한다고 앞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애써도 뜻밖의 일이 찾아온다. 손자의 지혜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라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예측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불확실성에 대비하라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오늘의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타로와 사주가 늘어난 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앞날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미래가 불안할수록 사람은 노력보다 행운에 기대고 싶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왜 저들이 점을 보는가”만이 아니다. “왜 자신의 힘으로 앞날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이토록 약해졌는가”도 함께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사람들에게 건네야 할 메시지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미래를 알려주는 말보다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과 능력이 필요하다. 운세를 묻는 사람을 나무라기 전에, 그들이 왜 미래를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인간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은 오래된 욕망이다. 하지만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무력함을 뜻하지는 않는다. 알 수 없기에 준비할 수 있고, 정해져 있지 않기에 선택할 수 있다.
손자는 미래를 점치는 대신 뜻밖의 상황에 대비하라고 했다. 오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 와도 맞설 수 있는 자신을 준비하라고 했다.
결국 강한 사람은 미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몰라도, 그 앞에서 자신의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미래를 점칠 것인가, 대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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