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준호의 필모그래피를 훑다 보면 하나의 선명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상대가 누구든, 장르가 무엇이든 그는 관계의 온도를 기가 막히게 맞춰내며 이야기를 기어이 목적지까지 밀어 올린다는 점이다. 설레는 로맨스부터 치열한 생활극, 초능력이 난무하는 히어로물까지. 파트너와 공명하며 극의 몰입도를 극대화하는 이준호식 ‘케미스트리’의 면모를 짚어봤다.
〈캐셔로〉 with 김혜준 | 히어로 망토보다 따스한 ‘생활 밀착형’ 연인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8부작 시리즈 〈캐셔로〉는 짠내 나는 현실과 화려한 초능력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의 K-히어로물이다. 손에 쥔 현금만큼 힘이 세지는 ‘강상웅(이준호)’의 고군분투 속에서, 그를 지상으로 붙들어 매는 건 연인 민숙(김혜준)과의 관계다. 내 집 마련을 꿈꾸며 툭 프러포즈를 던지는 민숙과, 갑작스러운 초능력에 당황하면서도 생계를 걱정하는 상웅. 이준호는 CG가 가득한 세계관 속에서도 김혜준과 가장 평범하고 단단한 로맨스를 구축한다. 히어로이기 이전에 ‘내 곁의 연인’ 같은 편안한 호흡은, 비현실적인 설정을 현실적인 감동으로 치환하는 이준호만의 저력을 보여준다.
〈태풍상사〉 with 김민하 | IMF의 찬바람을 녹인 ‘성장판’ 로맨스
올 하반기를 뜨겁게 달군 tvN 드라마 〈태풍상사〉에서 이준호는 90년대 상사맨 ‘강태풍’으로 분해 시대의 공기를 입었다. 철없는 오렌지족에서 진정한 리더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논리파 경리 오미선(김민하)과의 파트너십은 극의 핵심 축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핑크빛을 넘어 위기의 순간 서로의 등이 되어주는 ‘전우애’와 ‘연모’ 사이를 절묘하게 오갔다. 김민하의 차분한 이성과 이준호의 뜨거운 열정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낸 시너지는, 암울했던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킹더랜드〉 with 윤아 | 전형성을 돌파하는 비주얼과 호흡의 정점
캐스팅만으로도 'K-팝 레전드의 만남'이라 불리며 화제를 모았던 JTBC 드라마 〈킹더랜드〉. 재벌 2세와 호텔리어라는 클래식한 설정은 자칫 식상할 수 있었지만, 이준호와 임윤아의 촘촘한 연기 호흡은 이를 세련된 ‘로맨스의 정석’으로 탈바꿈시켰다. 두 배우의 시각적인 합은 물론, 티격태격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터지는 감정의 스파크는 시청자들을 완벽히 매료시켰다. 종영 후에도 과거 커버 댄스 영상이 천만 뷰를 돌파하며 회자되는 현상은, 이준호가 파트너와 만들어낸 케미가 작품의 유효기간을 얼마나 길게 늘릴 수 있는지를 증명한 사례다.
〈옷소매 붉은 끝동〉 with 이세영 | 사극 로맨스의 역사가 된 ‘세기의 연인’
이준호의 케미가 하나의 서사가 된 정점은 단연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이다. 왕과 궁녀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는 이준호와 이세영이라는 매력적인 두 배우를 만나 폭발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고전적인 미장센 속에서 켜켜이 쌓아 올린 감정의 밀도는 시청률 17%라는 대기록으로 응답받았다. 베스트 커플상을 넘어 나란히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쥔 두 사람의 호흡은, 이준호가 가진 ‘케미’라는 무기가 단순한 어울림을 넘어 작품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견인하는 강력한 엔진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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