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박동선 기자] "마지막 촬영 날, 해가 질 때까지 택시회사 세트장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5년간 무지개 운수와 함께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배우 이제훈이 트라우마에 갇힌 '고독한 집행자'에서 사람을 지키는 '리더'를 거쳐, 마침내 판 전체를 설계하는 '마스터'로 진화했다. 그가 이끌어온 '모범택시' 시리즈의 5년은 곧 배우 이제훈의 20년 연기 인생의 정점과도 맞닿아 있었다.
19일 서울 강남구 모 카페에서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3'의 주연 배우 이제훈과 만났다. '모범택시3'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시즌을 거듭하며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이 작품에서 이제훈은 무력과 지략을 겸비한 '완성형 설계자'로서의 면모를 입증했다.
◇ '김도기'의 3단 진화… 액션 장인과 빚어낸 설계자
이제훈에게 '김도기'는 단순한 배역을 넘어선 도전의 역사였다. 시즌 1이 날 것 그대로의 분노를 표출하는 '용병'이었고, 시즌 2가 팀원과 연대하는 '리더'였다면, 이번 시즌 3는 냉철한 이성으로 적을 자멸시키는 '테크니션'의 경지였다.
이제훈은 "시즌 1, 2를 거치며 캐릭터가 체화됐고, 이번 시즌은 김도기의 본캐(본래 모습)가 가장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라고 자평했다. 이어 그는 "시즌 1부터 호흡을 맞춘 권기덕 무술감독님이 저에게 딱 맞는 액션을 설계해 주셨다"라며 "믿음이 있었기에 무력뿐만 아니라 고도화된 심리전과 도구 활용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 "골반이 안 움직여서…" 호구 도기부터 K팝 댄스까지
이번 시즌의 또 다른 볼거리는 'N단 변신'이라 불릴 만큼 다채로웠던 부캐(부캐릭터)의 향연이었다. 야쿠자, 타짜, 배구 스카우터 등 수많은 변신 중에서도 이제훈은 '호구 도기'와 '아이돌 매니저'를 잊지 못할 캐릭터로 꼽았다.
그는 "평소 제 모습과 너무 다른 '호구 도기'는 중심 잡기가 힘들었지만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애정을 표했다. 이어 화제가 된 아이돌 매니저 에피소드의 춤 장면에 대해서는 "K팝 퍼포먼스를 대충 하고 싶지 않아서 한 달 넘게 준비했다. 그런데 20년 만에 춤을 추려니 골반부터 안 움직여서 너무 괴로웠다"라고 회상하며 웃었다.
또한 그는 "연습실 거울을 보며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이 즐거워한다면 망가짐도 기쁨이다. 인기가요 무대에 서는 아이돌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심이 생겼다"라고 덧붙였다.
◇ 윤시윤·장나라의 파격… 자극받은 '빌런 본능'
역대급 빌런들과의 호흡은 이제훈에게 신선한 충격이자 자극제였다. 그는 20년 넘게 선한 역을 주로 했던 윤시윤의 악역 변신에 대해 "작품에 사활을 건 듯한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라고 회상했고, 장나라와의 대면에 대해서는 "그 기세에 눌려 대사를 잊을 정도였다"라고 극찬했다.
이들의 열연은 이제훈의 연기 갈증을 깨웠다. 그는 "제 필모그래피의 한 칸을 '완전한 빌런'으로 채우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내며, '만약 김도기와 똑같은 능력을 가진 빌런 도기가 나타난다면?'이라는 흥미로운 가정에 대해 깊이 있는 해석을 내놨다.
이에 대해 이제훈은 "쌍둥이적인 접근이 될 것"이라며 "누군가를 지키려는 신념이 강한 김도기에게, 똑같은 능력을 가진 파괴자가 나타난다면 아마 '지켜야 하는' 입장에 선 본캐 김도기가 꽤나 위험하고 힘든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20주년과 대상,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드라마의 성공과 함께 시즌 4에 대한 기대감도 뜨겁다. 이제훈은 "보장된 것은 없지만, 무지개 운수 식구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로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그는 "이 시리즈는 저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과거 제가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며 느꼈던 무한한 감동처럼, 시청자들과 긴 호흡으로 함께 늙어가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라며 "몸이 허락하는 한, 김도기의 운행을 멈추고 싶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올해로 데뷔 20주년. '모범택시'로 두 번의 연기대상을 수상했지만, 이제훈은 거대한 성공을 뒤로하고 다시 '0'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는 "채워왔던 캔버스를 비우고, 다시 새로운 것들로 채워가야 할 시간"이라며 초심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제훈은 "연기가 하고 싶어 학교를 휴학하고 대학로를 뛰어다니던 20년 전의 그 마음, 여전히 유효하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반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라며 "앞으로 보여드릴 이제훈의 또 다른 얼굴들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뉴스컬처 박동선 dspark@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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