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전 대통령은 1924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 후 해군 장교로 활동하다 1962년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를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조지아주지사를 거쳤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대선 후보에 나서기 전까지 카터 전 대통령은 무명에 가까웠다. 이 시기 미국 최악의 정치 게이트인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 전쟁 등이 겹치자 미국 국민들은 기성 정치인과 다른 카터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그는 1976년 대선에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꺾고 미국의 3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재임 시절 카터 전 대통령은 크게 인기가 없었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 불황과 높은 실업률 등이 겹치면서 재임 첫해를 제외하곤 내내 20%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을 이뤄내는 등 외교적으론 중동 평화에 기여했지만 결국 재선에는 실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패 후 백악관을 떠났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한국과 마찰도 빚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주한 미군의 점진적 철수를 주장했다가 설전을 빚었고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문제에 직접 개입했다. 그는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탈퇴하자 평양에 직접 방문했고 김일성 주석 등과 만남 가지는 등 국제 평화에 상당수 개입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등을 투병하다 생을 마감했다.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돌봄을 받아오던 중 가족의 곁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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