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홀저의 길, 반짝반짝 빛나는

제니 홀저의 길, 반짝반짝 빛나는

바자 2024-07-21 08:00:00 신고

Installation view, «Jenny Holzer: Light Line», May 17~September 29, 2024,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Ariel Ione Williams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Installation view, «Jenny Holzer: Light Line», May 17~September 29, 2024,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Ariel Ione Williams ⓒ Solomon R. Guggenheim Foundation, New York
뉴욕 맨해튼 89번가에 위치한 솔로몬 R. 구겐하임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무의미하다. 제니 홀저의 대형 LED 작품 〈Installation for the Solomon R. Guggenheim Museum〉(1989/2024)이, 길고 가느다란 전광판을 유영하는 숱한 문장들이 특유의 나선형 경사로를 감싸 돌아 천장까지 휘몰아치는 광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걸로 충분하다. 반세기 전 “건축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라 믿은 근대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끝까지 고수한 로툰다의 공간은 시대를 초월한 진실에 순순히 자리를 내주었다. 저항적이거나 위악적이거나 문학적인, 일상과 시대를 관통하는 문장들이 침묵으로 포효한다. 구겐하임의 심장에 LED가 내걸린 건 처음이 아니다. 서른아홉 살의 제니 홀저가 바로 여기서 선보였던 사색의 공간은 당시 “구겐하임이 이제껏 이렇게 보인 적도, 느껴진 적도 없었다”는 평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금 이토록 지적이고도 감각적인 작업으로 미술관 역사를 새로 쓰기까지 딱 35년이 걸렸다. 지난 5월 중순 «Jenny Holzer: Light Line»이 공개되자마자 현지 매체들은 일제히 이렇게 썼다. “제니 홀저가 돌아왔다.”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만난 홀저는 또 다른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는 “같은 곳에서 다시 치른 오프닝은 여전히 두려운 시간이었지만, 그 두려움을 무사히 전시를 열었다는 안도감으로 상쇄시켰다”고 운을 뗐다. “끝없이 이어진 전광판이 사람들을 놀래켰다고나 할까요. 당시 세상에서 가장 긴 전자기기였던 걸로 알아요. 평가도 다양했습니다. 자칭 아티스트라는 여성은 눈이 아프다고 했고, 혹자는 코니아일랜드에 온 것 같다고 했어요. 반면 남성들에 대한 이야기에 깔깔 웃던 나이 많은 여성분도 계셨죠.” 홀저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도 있다. 당시 아카이브 영상을 보면, 복고풍 헤어스타일에 어깨가 솟은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내걸리며 작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그 유명한 문구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줘’를 붙인 모자를 삐뚤게 쓴 채 샴페인 잔을 기울이는 모습에서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관객들의 스타일은 달라졌지만, 문제의 모자는 이번에도 뮤지엄 숍에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노르웨이에서 찍은 재미난 사진을 찾았어요. 성미 까다로워 보이는 어느 할머니 한 분이 성스러운 터렐 설치작품 가운데서 그 모자를 쓰고 서 있더군요. 터렐 작품이 얼마나 푸르고 아름다워요? 그런데 그 앞에 저 끔찍한 모자를 제대로 쓰지도, 벗지도 못한 와중에 사진이 찍힌 거예요. 말하자면 제게는 운이 아주 좋은 순간이었던 거죠.(웃음)” 홀저의 유머 감각도 문장의 유명세만큼이나 건재하다. 나는 1989년의 홀저와 2024년의 홀저가 무엇이 다른지 물었다. 지난 서면 인터뷰에서 1989년부터 91년까지, 즉 디아 아트센터, 구겐하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작가로 이어진 ‘결정적 전환기’는 “배우고 깨닫기에 좋은 시간이었지만 예술은 힘들었다”던 답이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홀저의 답은 명쾌했다. “딸이 더 이상 한 살이 아니라는 게 가장 다른 점이겠죠!”
또 변화한 게 있다면, 밤에 전시 보는 기쁨을 작가 자신이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89년에는 3개의 층을 활용한 반면 이번 LED는 6개 전 층에 설치되었다. 스케일은 두 배로 확장되었고, 효과는 그 이상으로 증폭되었다. 경구들을 모은 대표작 〈Truisms(트루이즘)〉을 비롯해 무수한 문장들이 장장 6시간 동안 다른 형태, 속도, 색깔로 펼쳐지고 그 빛이 공기에 다양한 뉘앙스를 입힌다. “텍스트가 조각조각 분리되어 거울에 반사되는 듯한 풍경이 전시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더해주었어요. 난해한 글도 많다 보니 기묘한 빛깔의 공기나 거울처럼 비친 하늘 같은 효과에 의존해야 해요. 글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소화하도록 말이죠.” 구겐하임 관계자는 LED 하드웨어와 컴퓨터 프로그램의 역공학설계를 통해 역사적인 LED 작품을 복원했다고 밝혔다. 물론 ‘홀저그램’이 주목받는 때는 지났다. 스마트폰만 열어도 강력한 문장들이 쏟아지고 누구든 어디서든 발언할 수 있는 작금의 시대에, LED 작품이 더 이상 획기적이지 못하다는 요지의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변화한 시대조차 그 혁신성을 판단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저의 모든 작품들이 현재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제 평가와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각성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미래는 어리석다’ ‘내 입을 그들 위에 얹었다’ ‘아이는 부러진 다리로 걷는다’ ‘이마를 통해 보이는 뼈’ ‘이기주의는 가장 원초적인 동기이다’ ‘행복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간을 멈추려는 시도는 영웅적이다’ ‘당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은행에 예치된 돈과 같다’ ‘당신은 원하는 사람을 죽이는 생각에 빠져든다’ ‘나는 당신을 본다/나는 당신을 지켜본다/나는 당신을 스캔한다’ ‘신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인류의 죄를 책임져야 한다’ ‘저는 한 시간을 서서 아이들의 이름을 외쳤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견딜 수 없다’ ‘진실을 잊고 신화를 해부하라’…. 옳고 그름을 초월한 문장들이 순간순간 사람들의 망막에 새겨진다. 부드럽게 흐르거나 사납게 폭주한다. 심금을 울리거나 실소를 자아낸다.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어요”라는 말에 홀저가 반색했다. “네,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친구. 그것이 내가 시도한 바입니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로렌 힝크스는 LED 작품을 두고 “단어를 마시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작가는 LED가 말할 때와 비슷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 이상으로 신체적이다. 문장들은 나의 몸을 무자비하게 관통하거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적셔버린다. 고요한 명상의 순간과 폭발적인 감각의 순간이 다채로운 범주를 오가며 화학작용을 일으키기에, ‘좋아요’를 누르고 나면 이내 머릿속에서 삭제되는 문장과 같을 수 없다. 또한 그녀의 문장들은 나로 하여금 보고, 읽고, 웃고, 울고, 당황하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반성하고, 결심하고, 두려워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손바닥 안 세상보다 훨씬 실제적이다. 지금 이 무작위의 시공간에 나와 함께 있는 이들과 손잡은 듯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가 된 것 같은 느낌. ‘나’와 ‘너’는 ‘우리’가 되고, 미술관이든 길거리든 바닷가든 산기슭이든 그곳은 한시적이되 강력한 연대감으로 충만한 일종의 광장으로 변모한다. 나는 ‘제니 홀저의 다양한 형태와 움직임의 문장들이 인간의 인식과 행동, 감정과 신념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연구논문이 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 그런 논문이 있다면 저도 뭔가를 배울 수 있겠네요.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건 작품의 내용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이것을 제공하는 미학적 방식 즉 속도, 색, 환경, 시대, 공기, 관람객이 모두 함께 작용한다는 겁니다. 내용과 효과가 어우러지게 할 때도 있고, 우리네 인생처럼 불협화음을 이루며 다투게 할 때도 있어요. 저를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주의력결핍을 겪고 있기에 새롭거나 이질적인 무언가를 찾아보거나 안도감 혹은 평화를 느끼게 하기 위해 다양한 효과를 한데 섞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방식을 통해 제 작품을 읽거나 보는 방식에 따라 양면적 태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해하기 위해 읽기를 시도할 때도 있고, 그저 바라보며 감상할 때도 있어요. 형이상학적인 동시에 형이하학적인 경험이죠.”
LED를 보고 나니, 오프닝 주간에 선보인 프로젝션 작업 〈For the Guggenheim〉(2008/2024.)을 놓친 것이 더 아쉬워졌다. 세상의 비극을 다룬 용감히 시인들의 시구를 구겐하임 외관에 투사한 이 다정한 제목의 프로젝트는 2008년에 이어 다시 재현되었다. 홀저가 존경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를 비롯해 안나 스위르, 헨리 콜 등 오래 애정해온 시인들의 문장들이 뉴욕의 밤을 수놓았다. 특히 홀저는 심보르스카에게 이 풍경을 영상으로 직접 보여주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네, 그 문장들은 여전히 유용합니다. 제가 잘한 게 아니라 시인들이 대단한 분들이기 때문이에요. 또한 그의 작품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전시 내용에 대한 저의 선택, 평화와 생존에 대한 희망이라는 주제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밤이라는 시간은 사람들을 흩어지게 하지만, 충분히 훌륭한 글 앞에서는 서로 모여 집중하며 침묵하게 된다. “그것이 제가 프로젝션 작업을 하는 이유죠.” 곧 야간에 시 낭독 이벤트를 여는데, 홀저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훌륭한 시인과 나쁜 사람, 그리고 한때 기밀이었던 문서의 내용까지 모두 다뤄진다. “4백 명의 사람들과 침대에 누워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일 겁니다.”
〈For the Guggenheim〉, 2008/2024. Light projection,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Filip Wolak
〈For the Guggenheim〉, 2008/2024. Light projection,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Filip Wolak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섭렵한 홀저가 돌아오기로 한 데에는 “89년에 하고 싶었던 것, 꿈꾸었지만 실현하지 못했던 바를 완성하는 특별한 기회”를 향한 열망이 큰 몫을 했다. 당시엔 미술관의 절반만을 썼지만, 이번에 전관을 활용할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미술사에 남을 만한 유명 작가로 변모한 홀저의 위상을 보여주는 예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진정 변화한 건 작가의 명성이 아니라 현대미술에 대한 시선이다. “현실적으로 힘들었어요.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칸딘스키 같은 진짜 예술품을 보러 오는 것이지, 당신 작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번에 돌아오면서 바라던 대로 공간을 쓰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러니까 LED 작업의 진화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네, 맞아요. 칸딘스키 잘못이죠.(웃음)”
구겐하임은 현대미술가들에게 꽤 까다로운 공간이다. 전형적인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비스듬히 기운 경사로와 벽 등 공간의 진보성이 이들을 불편할 뿐 아니라 불쾌하게 했다. 1950년대 당시 대세 화가였던 프란츠 클라인, 빌럼 데 쿠닝 등은 미술작품에 비호의적인 건축을 문제 삼으며 시위했다. 그러나 후대 미술가들에게 건축과 예술의 긴장관계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옛 영상 인터뷰에서 홀저는 짐짓 뿌듯한 표정으로 “공간을 죽이지도, 나를 죽이지도 않는 뭔가를 생각해낸 것 같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베테랑에게도 거장의 부름에 응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증의 관계랄까요. 사랑하지만 늘 싸우죠. 구겐하임 건물은 그 자체로 걸작입니다. 작품을 사랑해주지만은 않는 걸작인데, 그게 도전이죠. 부르주아 같은 강렬한 작품을 내는 천재가 아니면, 애매하게 괜찮은 작가들은 건축물에 잡아먹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선형 구도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어요.” 그리고는 경사로에 폭스바겐을 설치했던 수십 년 전 요셉 보이스의 전시에서 단서를 얻었다며,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경사로 벽을 모두 채우지 않았다는 혹평도 있었지만 그건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해요. 시간대는 물론 로툰다를 가로질러 반대편을 바라볼 때의 시선까지 면밀히 계산해 작품을 배치하고자 했어요.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LED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에, 경사로에서는 쉬어 가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야만 LED에서 등을 돌려 다른 작업에 집중하거나, 붉은 공기를 뚫고 공간 맞은편을 감상하는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휴식의 순간 없이는 일방적·공격적인 발언일 뿐이고 그건 애초에 대화가 아니죠. 간혹 전시 보다가 지쳐서 계단으로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예상을 비껴가는 장소에도 작품을 설치해두었고요. 엘리베이터 앞 보관함 근처에도 동판 작품을 숨겨두었어요. 화장실 중 한 곳에는 ‘MEN DON’T PROTECT YOU ANYMORE’이라 쓰인 콘돔을 놓아뒀는데…. 아, 못 보셨다고요? 이런, 제가 실패했네요.(웃음)”
전시 작품은 연대기별로 배치되어 있지만, 감상법은 열려 있다. 1층부터 올라가는 관객들은 1970년대 후반 색색깔의 포스터 작업으로 채운 〈Inflammatory Wall(선동적인 벽)〉을 만난 다음 차근히 현재를 향하게 되고, 엘리베이터로 꼭대기에 당도한 관객들은 2021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을 기록한 회화를 시작으로 과거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는 예술가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시기에 글과 도형으로 작업한 〈Diagrams〉, LED와 정반대의 성향인 대리석 벤치 조각, 미국 정부문서들을 금박, 은박으로 처리한 회화(조지 오웰과 엘리스 닐을 공산주의자로 간주한 문서도 있다), 트럼프의 트위트 내용 중 최악만 모아 고대 저주 서판에 박아 넣은 〈Cursed〉, AI를 도입한 작업 〈Slaughterbot(살생봇)〉과 무기에 대한 회화 등이 놓여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걸핏하면 추격전을 벌이던 4백32미터 길이의 경사로에서 실제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목소리, 고문 및 취조 기술을 고발하는 작품들을 만난다는 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Installation view, «Jenny Holzer: Light Line», May 17~September 29, 2024,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Filip Wolak
Installation view, «Jenny Holzer: Light Line», May 17~September 29, 2024,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 2024 Jenny Holzer,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hoto: Filip Wolak
“이번 전시, 특히 전쟁에 관한 작품들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베트남전쟁의 여파와 의미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아요. 그 시절에서 시작해 인공지능이 등장한 현대까지 망라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수천 년 전의 역사를 루브르의 회화로 알 수 있듯,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도 동시대 작품들을 통해 알아야 해요.” 부드럽던 홀저의 목소리가 견고해졌다. “모든 작품들이 현재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기를 바랐습니다. 지도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전쟁이 팽배한, 잔인하고 살인적인 이 시대가 저는 정말이지 싫습니다. 제 영향이 미미하더라도 이런 상황에 대한 제 평가와 두려움, 그리고 우리가 각성해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정치를 주제로 삼는 작가들은 종종 투사이길 강요당한다. 물론 1970년대 뉴욕 거리에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던 ‘길거리 예술가’일 때부터 홀저의 작업은 놀라울 정도로 직설적으로 세상에 발언해왔다. 그러나 그녀는 투사이기 전에 예술가, 심지어 시인의 마음을 가진 작가다. 나는 난간 뒤에 숨은 작품 〈blades〉(2024)를 발견했다. 날개뼈 형상의 조각 한 쌍이 따로 놓여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이후 홀저는 실제 뼈를 활용해 전쟁에서 강간, 고문, 살해당한 여성 혹은 남성들의 이야기를 도발적으로 드러내왔다. 지난해 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에서 나를 충격에 빠뜨린, 인간 뼈 조각을 무덤처럼 쌓아둔 〈Lustmord(쾌락살인)〉 같은 작업 말이다. 하지만 구겐하임에서는 실제 뼈를 설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다 간결하고 적확한 방식을 찾아야 했다. 날개뼈만 캐스팅해 탄생한 작품은 전혀 기괴하지 않다. 천사의 날개만큼 어여쁘고, 시어처럼 상징적이며, 항해하는 배의 돛처럼 희망적이다. “오랜 세월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학대와 고통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진지하면서도 매력적인, 새로운 시도였던 셈이죠.”
제니 홀저가 만든 길 위에서 나는 종종 멈춰 섰다.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르진 않지만, 숨을 고를 필요가 있었다. “새로운 병이 나타났다/시간이/치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미래로/가고 싶다.” 경사로 한 중간에 놓인 석관 형태의 대리석 조각 〈Laments〉는 에이즈가 창궐했던 1989년작이다. 그러나 팬데믹을 비롯해 너무 많은 일을 겪고 있는 우리 누구도 그 비통함과 절망, 분노와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홀저는 가혹한 시대상황에 매우 간절하게 반응하지만, 심지어 지독하게 미국적인 작품조차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을 띤다. 결국 모든 사건은 선함과 상식, 분노와 각성, 슬픔과 희망의 이야기로 귀결되고, 연인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작품의 기저에는 인류 공통의 가치를 독려하는 우주적 메커니즘이 내재되어 있다. 세상의 비극은 지속되고, 고통의 강도와 종류는 갱신된다. 예술가로서 변화를 위한 변화를 거부하는 홀저는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며 무지와 폭력에 저항한다. “건축물은 여전히 위대하지만, 미래는 더 어려워 보입니다. 더 큰 도전에 맞서야 하기에, 우리는 더욱 현명해져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의미 있고 쓸모 있는 것을 내놓고 싶다는, 그러므로 자신의 작업이 너그러움, 박식함, 재미있음, 끔찍함, 사랑스러움, 신비함의 알 수 없는 조합이길 꿈꾸는 예술가. 홀저의 작품은 그렇게 작가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의 현존을 정당화한다. 미술관을 나오던 길, 전시 제목 ‘Light Line’이 유머러스하고 친절하며 용기 있는 홀저가 걸어온 길을 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따라 걷던 그 길이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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