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지호 작가] 집 밖을 나설 때면 스산한 찬바람에 목이 잔뜩 움츠러드는 계절. 이맘때면 떠오르는 전시가 하나 있다. 폐건물을 대안공간으로 재활용해 열렸던, 한 지역구의 프로젝트 전시였다.
그 시절 나는 모 잡지사의 막내 수습기자였다. 평소처럼 새 소식란에 들어갈 짧은 보도기사를 쓰고 있었는데, 편집장님이 갑자기 제안했다.
“이번 전시, 단독 기사 한 번 써보는 게 어때?”
수습기자에게 단독 취재는 좀처럼 오지 않는 귀한 기회니까, 아무렴 해야 했다. 하필 그날 점심 무렵 친인척의 부고 소식을 들었지만, 열정 넘치는 신입의 자세로 “네, 해보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퇴근 한 시간 전, 편집장님은 곧장 현장으로 가보라고 지시했다. 전시장까지는 회사에서 왕복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고, 계획했던 ‘정시 퇴근 후 장례식장 방문’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포괄임금제란 게 늘 그렇지, 뭐. 장례식장은 24시간 열려 있으니 ‘일단 취재하고 가자’며 부고는 잠시 마음 한편에 밀어두고 서둘러 전시장으로 향했다.
공개된 정보는 이미 확인해 두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현장 분위기는 그보다 더 을씨년스러웠다. 흐린 날씨 아래, 떼어낸 간판이 남긴 자국. 기름칠 안 해 끼익대는 오래된 철문, 그리고 어지러이 드러난 전선들. 폐건물 특유의 거친 질감이 공간 전체에 퍼져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의 감각을 ‘흉포한 입구’라는 어휘로 치환해 두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시의 기획과 동선은 그 입구의 인상과는 반대로 좋은 쪽으로 꽤 신선하고 잘 갖춰져 있었다. 그래서 원고 초고에는, 흉포한 입구의 묘사 뒤에 흥미로웠던 요소들과 참신했던 기획 의도를 이어 적고, 참여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에 대한 찬사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 기사는 퇴짜를 맞았다. 퇴짜 정도가 아니라 ‘로열티가 의심된다’는 꾸지람까지 얹어졌다. 회의실에서 인쇄된 원고를 앞에 둔 편집장님은 빨간 펜으로 ‘흉포한’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거 애드버토리얼인 거 알고 쓴 거야?”
나는 몰랐다. 말 그대로, 진짜 몰랐다. 그 순간 당황해 설명할 틈도 없이, 홍보 기사에 이런 과격한 표현을 쓰는 건 ‘하기 싫은 티’를 내는 거라며 그는 혼을 내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시는 긍정적으로 평했고, 해당 기사가 애드버토리얼이라는 말은 누구도 내게 한 적 없었다. 그는 이 단어 선택에 나의 반항이나 적의를 읽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굳이 해명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오해는 그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었다. 결국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다시 써오겠습니다.”
그날 밤, 나는 누군가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을 심심한 어휘들로 기사를 다시 썼고, 새 원고는 무난하게 발행됐다. 하지만 찬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이 계절이 돌아오면, 그날의 전시가 문득 떠오른다.
누구에게든 그런 전시 하나쯤 있지 않은가.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