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기40] 왕과 의회와 행정부는 기름진 부분을 나눠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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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기40] 왕과 의회와 행정부는 기름진 부분을 나눠 먹으며...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08 06:25: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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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노동자 계급의 부상

 1830년대 사회의 분화

 1830년대에 이르러서 사회가 분화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프랑스 대혁명과 유럽 대륙의 대부분을 정복한 나폴레옹의 패배 이후 1815년 ‘신성동맹 체제’가 탄생했다. 나폴레옹 이전의 ‘신성한’ 기독교 왕조국가로 돌아가서 각국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 운동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의에 찬 반동과 복고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 동맹은 미국의 먼로 선언과 중남미 여러 국가들의 독립으 로 타격받았으며 그리스 독립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대립하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1830년 신성동맹을 결성한 지 15년 만에 다시 프랑스에서 두 번째 혁명이 일어나 부르봉 왕가(루이 16세 처형)를 다시 전복하면서 일대 유럽을 뒤흔들었다.

 “유럽에서는 변화를 억압하고 구질서를 유지하거나 회복하려는 반동적 시도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언론·출판·여행·거주·결사·거래·상업·공개적 종교적 활동에 대한 제약들은 도전받았고 많은 경우 폐지됐다.”

 프랑스에서 시작해 유럽 대륙으로 확산한 1830년 7월 혁명의 상징은 ‘바리케이드’였다. 정부군에게 대항해 도시 전역에서 바리케 이드를 쌓았던 민중은 7월 혁명 이후 ‘인민’ 혹은 ‘노동계급’으로 변모했고 비로소 자신들의 권리에 눈을 떴다. 그간 ‘봉건제에 맞서 함 께 싸웠던 온건 부르주아와 급진적 노동계급이 결별하는 기점’이었다.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으로 루이 필리프왕이 금융재벌들과 함께 정권을 잡았다. 그 유명한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때 권력 의 핵심부에 진입했다.

“왕과 의회와 행정부는 기름진 부분을 나눠 먹으며, 정보와 충고를 교환하고 영업과 이권을 주고받으며 (…중략…) 자본가는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지위를 획득했다. (…중략…) ‘이제부터는 은행 가들이 지배하리라’고 예언했다. 프랑스는 단지 로스차일드 일가와 기타, 하이네가 말하는 ‘조무라기 백만장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데 그치지 않고, 왕 자신이 교활하고 구속됨이 없는 투기가였다.”

 노동자 계급의 탄생 영국과 프랑스 양국은 모두 부르주아가 정치권력에 진입하자 그동안 그들과 동반자적 관계였던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국민은 ‘혁명 맛집’답게 자신들의 주무기인 혁명으로 새로운 정부에 반발했다. ‘피는 우리들이 흘렸고 루이필 리프를 왕으로 옹립한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혁명은 탈취당했다.’라 고 주장하며 다시 공화제를 요구하면서 1832년 6월에 세 번째 혁 명을 일으켰으나 무참히 진압됐다.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혁명 이다. 한편 영국은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을 통해 부르주아 계 층에만 선거권을 주고 이들과 함께 투쟁했던 노동자 계층은 제외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 계층은 그동안 경제적, 사회적으로 쌓여 온 불만을 터뜨림과 동시에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 Chartist Movement을 1838~184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차티스트란 인민헌장People’s Charter을 뜻하는 것으로 ‘남자의 보 통선거권, 공정한 선거구, 매년 의회 선거 실시, 의원의 세비 지급, 비밀투표, 의원의 재산 제한 철폐’를 국가의 법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다. 10여 년간 지속된 차티스트 운동은 대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은 ‘빅토리아 사회 최대의 대중정치운동’이었다. 특히 1848년의 프 랑스 2월 혁명으로 전 유럽이 혁명적 분위기로 들끓었고 영국에서 는 570만 명의 청원서명을 모아 1848년 4월 런던에서 대청원 시위운동이 전개됐다. 그러나 시위는 무력에 의해 진압되고 청원 역시도 부결됐다. 그러한 좌절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요구는 그 뒤 여 러 차례 선거법 개정을 통해 대부분 실현됐고, 노동계급의 의식을 고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처럼 새로운 권력(세력)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상했다. 이 시기에 자유주의 사상이 싹트기 시작했다. 1830년부터 1880년 대까지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 현대 자유주의 사상의 청사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자본주 의와 프랑스에서 비롯된 혁명과 전쟁을 거치면서 혼돈을 넘어설 근본적인 새 질서를 갈망했다. 다양한 논의와 정치 실험이 이어지는 가운데 1840년대 말에는 노동자 계층에서도 정치에 눈을 떠 『공산당 선언』이 나올 정도였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권리에서 특히 정치적 강조를 혐오했다. 그 의 생각으로는 정치적 권리란 수단에 관련돼 있는 것이지 목적 그 자체는 아니었다. ‘정치적 인간’이란 ‘실제적’이지 못하고 ‘추상·인위적’인 존재였다. 인간해방이 정치를 통해서는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진정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 했다. 그것은 사회관계와 사적 소유의 폐지에 주력하는 혁명을 요구했다.” 하층계급은 단지 정치적 권리의 평등보다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향유하길 원했다. 마르크스의 관점은 분명했다. “정치적 해방은 법적 평등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에서 달성될 수 있지만, 진정한 인간해방은 부르주아 사회와 사적 소유의 철폐를 요구한다.” 이제 통치자의 통치행위나 개인의 권리는 혁명적 구호나 요구가 아니라 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합의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 다. ‘다양한 백성들을 통치할 왕조의 지배권에 대한 옛 사상이 헌법 과 권리, 주권 등 새로운 사상과 혼합된 정당성’에 토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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