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에 걸맞은 책임
올리비에 크루그는 그의 가문이 그 명성에 걸맞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샴페인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애호가들을 거느린 크루그의 다짐은 자못 숭고했다.
RM과 NM 생산자들 양쪽에서 존중받는 샴페인 하우스는 그리 많지 않다. 올리비에 크루그의 모습.
크루그를 마실 때 우리는 ‘완벽함의 재현’이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완벽함’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완벽’보다는 ‘디테일에 대한 집착’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완벽은 관대함과 가능성에 한계를 설정하는 개념이에요. ‘이 지점이 완벽이다’라고 정의하는 순간 우리는 거기서 멈추게 되죠. 하지만 크루그는 그 한계를 넘어섭니다.
명언이네요.
특히 요새는 더욱 그래요. 와인 애호가들 중에는 숫자나 수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수확일은 언제였는지, 당도는 얼마고 산도는 얼마고 특히 샴페인의 경우엔 ‘도자주’(찌꺼기를 제거한 뒤 보충하는 당. 보통 24g)는 얼마나 했는지 등을요. 크루그에게는 그런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어요. 제로 도자주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저도 묻고 싶어요. 좋은 도자주 수치란 무엇인가요?(웃음) 진짜 질문은 이런 게 아닐까요? “크루그는 어떻게 매해 최고의 샴페인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나요?”.
그러게요. 어떻게 매해 이렇게 아름다운 샴페인을 만드나요?
그 답은 ‘디테일에 대한 집착’에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Bouzy)의 피노 누아가 필요하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부지에만 해도 피노 누아 플롯이 2000개는 넘을 거예요. 우리는 그중에 특정한 경작자를 지정하고, “그가 가진 7개의 플롯 중 이것과 저것 딱 두개 플롯에서 난 피노 누아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엄청나게 까다로운 테이스팅 절차를 거치는 것 역시 그 디테일에 대한 집착 때문이죠.
맞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두 개의 플롯에서 서로 다른 와인 2개를 양조해서 따로 관리해요. 이 두개의 와인은 크루그의 셀러 마스터인 줄리 카빌을 포함한 7명의 팀원이 두 번씩 테이스팅하죠. 400개의 플롯에서 난 와인을 7명이 두 번씩 테이스팅해서 노트로 적어두니까, 한 번 수확하고 나면 5000회 분량의 테이스팅 노트가 작성되는 셈이죠. 인내도 필요하죠. 한 병의 그랑 퀴베가 탄생하는 데는 20년이 걸립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고 있는 와인(우리는 크루그 그랑 퀴베 173 에디션을 마시고 있었다)에 블렌딩된 가장 오래된 와인은 2001년도 빈티지입니다.
플롯 선정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궁금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포도밭’을 고르지 않아요. 먼저 경작자를 고르죠. 아니, 고른다는 표현도 부적절 하네요. 이건 일종의 결혼이에요. 포도밭 근처에 살면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경작 중인 경작자, 진지한 마음으로 포도를 키우는 경작자를 발견하면 우리는 프러포즈를 하지요. 우리의 계약에는 기한이 없어요. 결혼이 그렇듯이요.
크루그의 여러 ‘에디션’들을 보면 마치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아요. 같은 베토벤의 교향곡이라도 어떤 심포니가 연주하느냐,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르죠.
제게 그랑 퀴베의 ‘에디션’들은 제 선조인 조셉 크루그의 꿈이 실현되었다는 ‘증거(evidence)’예요. “매해 최고의 샴페인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걸 보세요. 이 173번째 에디션은 그야말로 그의 꿈이 가능했다는 증거지요.
저는 어제 샴페인 서울에서 주최하는 샴페인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기후변화’, ‘지속가능성’, ‘비오디나믹’, ‘오크 사용’ 같은 주제가 화두였어요. 크루그는 이런 주제들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나요?
우리는 트렌드는 따르지 않아요. 우리는 180년간 스스로의 철학을 만들어왔으니까요. 예를 들면 오크의 사용입니다. 60년 전만 해도 샹파뉴의 모든 생산자들은 오크를 사용해왔어요. 그러니까 오크를 사용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왜 오크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참고로 크루그의 베이스 와인은 모두 중성 오크에서 숙성되고 일부는 발효를 아예 오크에서 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제게 ‘왜 바이오 농법을 쓰느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저희 가족은 수백 년 동안 유기농법만을 고수해왔으니 반대로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화학물질을 왜 쓰나요?”라고요.(크루그는 비오디나믹 인증을 받지는 않았지만 화학약품과 제초제 등을 전혀 쓰지 않고 유기 비료만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얘기가 조금 다르지요. 사실 저희는 전체 샴페인 생산량 중 0.2%만을 차지하는 아주 작은 하우스지만, 명성이 크기에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앞장서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지속 가능한 포도밭이 더 강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어떤 식으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나요?
우리 포도의 80%는 아까 말한 경작자들로부터 사오는 것들이에요. (크루그가 소유하고 직접 경작한 밭에서 나는 포도로만 만든 와인은 ‘크루그 끌로드 메닐’과 ‘크루그 끌로 담보네’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기농법을 쓰는 경작자의 포도에 더 높은 값을 쳐줍니다. 바이오농법을 쓰려면 휴가 시즌에 다른 곳으로 떠날 수도 없어요. 매일 포도밭에 나가서 포도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는 걸 아니까 그에 대한 값을 지불하는 거지요.
포도밭에 양을 풀어 커버 크롭을 조절하는 것에 대해서는요?
당연히 신경 쓰지요. 그 방식이 아주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서 우리 경작인들에게 “모두 양을 풀어주세요”라고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그 방식으로 포도를 키우는 경작자들에게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반드시 해줍니다. 양으로 잡초를 컨트롤하는 일이 제초제를 쓰거나 트랙터로 갈아버리는 것보다 훨씬 비용도 많이 들고 힘들다는 걸 아니까요. 그런데 사실 지속가능성은 포도밭에서만 중요한 게 아녜요. 우리의 행동 전반에서 실천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창립자 이름을 딴 새 와이너리 조세프(Joseph)를 오픈했습니다. HQE 인증 중 최고 등급인 “Exceptional”을 획득했죠. 이는 건물의 에너지·물 사용 절감, 공사 폐기물 재활용, 환경 영향 최소화 등을 의미합니다. 그곳에는 4000개의 오크통이 있습니다. 오크통은 관리에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합니다.
여름 동안 비워두면 건조해져 다시 사용하기 전에 완전히 재수화해야 하죠. 하지만 조세프에서는 습도·온도 완전 제어 시스템, 열효율 높은 콘크리트, 단열재, 자연 냉각 시스템, 자동 물 절약 장치, 빗물 재활용 시스템 등을 도입했습니다. 그 결과, 오크통이 말라버리지 않았고 엄청난 양의 물을 절약했습니다. (샹파뉴 지역은 물 부족이 심각합니다.) 지속가능성은 문화적 기반이어야지, 포도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크루그 끌로 뒤 메일과 크루그 끌로 담보네에 이은 다른 싱글 빈야드를 만들 계획은 없나요?
저희가 혹시 생각해둔 밭이 있다면 제가 오늘 인터뷰에서 그 이름을 말할까요?(웃음) 새로운 싱글 빈야드는 언제나 실험 중이에요. 매해 300여 개의 와인을 테이스팅하다 보면 어떤 와인에선 특별한 개성이 발견되지요. 마치 셰프가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듯, 우리는 늘 실험합니다. 그 일례로 두 달 전에 우리는 크루그 끌로 담보네 로제를 만들었다는 걸 발표했지요. (크루그 끌로 담보네는 피노 누아로만 만든 블랑 드 누아 샴페인이다. 피노 누아 샴페인으로 만든 로제라면, 세니에 방식으로 압착해 색을 냈을 것이며 이는, 크루그가 로제를 만들 때 사용하는 블렌딩 방식과 비교된다.) 300병밖에 안 되지만 서프라이즈였죠.
샴페인 러버로서 크루그라고 하면 파셀 단위 양조라는 철학과 미세 산소 접촉을 완벽하게 컨트롤해서 만들어 내는 생명력과 긴 세월의 흔적이 남긴 산화 뉘앙스의 완벽한 밸런스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점점 더 지혜로워지는 아름다운 사람’ 같달까요? 당신은 크루그에 대해 어떤 감각을 느끼나요?
저희와 이번에 협업하는 아티스트는 작곡가 막스 리히터입니다. 막스가 한 얘기가 있어요. “모든 노트에는 의미가 있다”(Every note counts.) 줄리는 와인을 블렌딩할 때 어떤 품종이 몇 퍼센트 들어갔는지 따져가며 하지 않아요. 우리에겐 기술적 완벽보다 모든 음이 살아 움직이는 정밀함이 중요하지요. 한국의 소비자들도 테크닉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살아 움직이는 음표들을 느껴보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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