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 서울 2025 특집 - 지금 우리가 샴페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샴페인 서울 2025 특집 - 지금 우리가 샴페인에 대해 얘기하는 것들

에스콰이어 2025-12-04 00:00:00 신고

3줄요약
샴페인 서울 2025에 참가한 생산자들의 모습. 지면에서 볼 때 올리비에 크루그(가운데)의 왼쪽이 피터 리암, 오른쪽이 이준혁 대표다.

샴페인 서울 2025에 참가한 생산자들의 모습. 지면에서 볼 때 올리비에 크루그(가운데)의 왼쪽이 피터 리암, 오른쪽이 이준혁 대표다.


아시아 최대의 샴페인 축제


지난 11월 7일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나는 한 손에는 잘토 잔을 들고, 가슴 한편에는 20세기 최고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명언을 품은 채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내 일생의 유일한 후회는 생전에 샴페인을 더 많이 마시지 못했다는 점이다.” 출처 없이 떠도는 수많은 인용들은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 말을 남겼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문헌을 살펴보면 그는 나이가 들었을 때 다양한 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이 격언을 설파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마셔라! 그래야 하는 날이었다. 크리스탈와인그룹의 대표인 ‘와인 마시는 아톰’ 이준혁 대표가 영미권에서 발표된 가장 완벽한 샴페인 교과서 〈샴페인〉 (Champagne)의 저자 피터 리암과 손을 잡고 주최한 행사 ‘샴페인 서울 2025’의 그랜드 테이스팅 자리였기 때문이다. 네고시앙-마니풀랑(Négociant-Manipulant, 포도를 사입해 양조하는 생산자)을 대표하는 전통의 하우스 크루그(KRUG),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를 비롯해 전설적인 레꼴당-마니풀랑(Récoltant-Manipulant, 직접 포도를 경작해 양조하는 생산자)인 자크 셀로스, 에글리 우리에, 피에르 페테르, 피에르 파이야르 등을 포함한 39개 생산자들이 조선팰리스 그레이트홀 중앙에 원탁 대형으로 각자의 부스를 차리고 대표적인 샴페인 퀴베들을 칠링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생산자들이 4종, 좀 적게 준비한 곳은 3종의 대표 샴페인을 오픈했으니 우리에게 주어진 3시간 안에 약 120여 종의 샴페인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얼마나 급박했겠는가. “사실 나도 이렇게 많은 샴페인을 한 번에 마셔보기는 처음이야.” 발레드라마른 지역에 위치한 샴페인 샤보스트의 셰프 드 까브(양조 총책임자) 파비앙 다비오가 말했다. 나는 전날에 있었던 ‘샴페인 서울’ 행사의 일환인 소수 정예 세미나 ‘샴페인 서울 마스터 클래스’에도 참석했었다. 소믈리에와 와인 전문가들이 참석한 그곳에서 우리는 다비오가 만든 블랑 아상블라주 브륏 나튀르를 마셨다. 그건 아예 분류를 할 수 없을만큼 새로운 샴페인이었다. 토착 효모만 사용하고 한 번 압착한 포도즙인 ‘퀴베’만를 여과도 거치지 않고 사용한 그의 와인에서는 사과와 배, 아카시아 향이 자연스럽게 올라왔고, 미세한 기포가 부드러웠으며, 피니시는 아주 길고 선명했다. 무엇보다 그간 내가 샴페인에서는 잘 감각하지 못했던 말린 과실의 ‘찌르르’한 달콤함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우리는 최소 개입을 원칙으로 하거든. 맛과 향이 더 자유로울 수밖에 없지.” 그가 말했다.

샴페인 서울은 아주 운 좋은 사람만이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성의 축제다. “그동안 아시아에서 샴페인이라고 하면 도쿄와 홍콩을 떠올렸을 텐데, 서울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공식 샴페인 생산자 모임이 열렸다는 건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크리스탈와인그룹 김태준 매니저의 말이다. “올해부터 샴페인 서울은 프랑스 샹파뉴의 생산자들을 대표하는 공식 축제 ‘라 페테 뒤 샹파뉴’(La Fête du Champagne, 샴페인 축제)의 서울 파트너입니다.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3개 도시 외에는 서울밖에 없어요.” ‘라 페테 뒤 샹파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공식 프로그램에 ‘샴페인 서울’이 올라와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샴페인을 즐기는 건 메트로폴리탄에 사는 사람이 아니면 좀 더 힘들게 누려야 하는 행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샴페인 서울에 참석해보고 처음 느낀 것이 있다. 나는 샴페인을 하나도 몰랐다. 우리가 아는 샴페인의 바깥에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샴페인들이 빛나고 있었다.


잔을 들어 장난 치고 있는 프레데릭 사바르. 포도가 가진 구조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프레데릭 사바르 역시 비오디나믹 농법 생산자로 유명하다.

잔을 들어 장난 치고 있는 프레데릭 사바르. 포도가 가진 구조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프레데릭 사바르 역시 비오디나믹 농법 생산자로 유명하다.


자크 셀로스가 만든 세계


샴페인 서울 2025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잔을 부여잡고 달려가 처음으로 줄을 선 부스가 ‘자크 셀로스’였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자크 셀로스의 앙셀름 셀로스는 샴페인 세계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나는 종종 사석에서 그를 ‘샴페인의 예수’라고 부르곤 한다.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한 앙셀름의 아버지 ‘자크’ 셀로스가 포도 재배를 넘어 와인 생산까지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1959년. 아들 앙셀름이 가업을 잇기 위해 부르고뉴 ‘본’에 있는 와인 학교에 입학한 것은 1970년대다. 재밌게도 학업을 마친 앙셀름은 스페인 리오하 지방의 심장부인 로그로뇨에서 잠시 일했다. 집으로 돌아 온 그는 부르고뉴와 스페인에서 배운 방식을 샴페인 양조에 접목했다. 1980년 도멘 자크 셀로스를 공식적으로 물려받은 뒤엔 일종의 혁명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오크 배럴보다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탱크가 지배적으로 활성화되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세척하지 못한 오크 통의 박테리아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생산자들은 스테인리스의 위생성에 열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와인들은 산화의 뉘앙스가 전혀 없는 정결한 산미를 뽐냈다. 셀로스는 반대로 걸었다. 와인을 오크통에서 발효하고, 이산화황 사용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토종 효모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거의 내추럴에 가까운 방식이다. 게다가 그는 부르고뉴에서 하듯 바토나주(술통 속의 침전물을 저어주는 것)를 적용하면서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2차 젖산발효를 유도하지 않았다.

더 충격적인 건 그 다음이다. 1986년부터는 각 빈티지의 상당 부분을 비축하더니 이를 솔레라 방식으로 블렌딩하기 시작했다. 와인 전문가라면, 이렇게 만든 샴페인의 맛이 어떨지 대략 상상은 해볼 수 있다. 오크통에 넣고 솔레라 방식으로 멀티빈티지를 블렌딩했으니 그 와인은 호두나 아몬드 혹은 땅콩의 껍질과도 같은 씁쓸한 유질의 뉘앙스를 띨 것이며, 바토나주를 거쳤으니 브리오슈와 버터 등의 효모 유래 향이 날 것이다. 그러나 젖산발효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았으니 그 와인은 활력 있는 산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와인은 부르고뉴 화이트에 뱅존을 살짝 섞고 탄산을 넣은 맛이 아닐까? 거칠게 말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자크 셀로스의 와인 철학을 대표하는 ‘자크 셀로스 섭스땅스’를 마셔보고 나면 이러한 우리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알 수 있다. 그 와인은 앞서 상상한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상을 뒤엎을 정도로 감칠맛이 넘치고, 특히 견과류로 간소화할 수 없을 만큼 산화의 향이 복잡했다. 대부분의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지적 감상을 위해서지만, 자크 셀로스의 섭스땅스 같은 와인은 우리의 모자란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된다.

앙셀름 셀로스의 솔레라 방식은 사실 산화의 느낌을 강조해 현대적 복합미를 완성하는 한 축이다. ‘현대적’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겠다. 사실 ‘동시대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산화 향’은 프랑스에서도 1990년대까지 일종의 결함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산화’는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노화를 의미한다. 샴페인이 노쇠하면 폴리페놀들이 산화하면서 금빛이 구릿빛으로 짙어지고, 차의 향, 땅콩 껍질을 짓이긴 향이 나고, 무엇보다 너티한 씁쓸함이 강해진다. 20세기 후반까지 샴페인 지방의 거의 모든 생산자들은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와인의 젊음을 유지하는 환원적 양조에 최선을 다했다. 거대한 푸드르(foudre) 통에 매해 새로운 와인을 부어 블렌딩한 뒤, 그해에 쓸 만큼을 병입하고 남은 와인을 남겨두는 일종의 ‘씨간장 방식’인 솔레라 방식은 기본적으로 산화를 촉진한다. 자크 셀로스에서 시작된 이 산화의 복음은 직계로는 앙셀름의 제자이자 뫼니에의 마법사인 제롬 프레보와 알렉산드르 람블로(람블로 역시 이번 샴페인 서울 2025에 참가했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직계 제자들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영속적으로 씨와인을 남기는 ‘퍼페추얼 리저브’(솔레라 방식을 포함한 표현)를 사용하고 있다. “저희도 2006년부터 이 방식을 쓰고 있어요. 6000L 크기의 푸드르 오크통을 구매해서 리저브 와인을 숙성하기 시작했지요. 솔레라 방식을 쓰면 베이스 와인의 균일성을 높이고 산화적 뉘앙스를 얻을 수 있어요.” 샴페인 플뢰리의 장 세바스티앙이 말했다. “저는 이 맛이 환원적인 노트보다 더 좋고 이런 방식의 샴페인이 많아지는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실제로 플뢰리의 논빈티지인 플뢰리 블랑 드 누아 브륏은 보통의 논빈티지 와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구운 사과와 섬세한 ‘땅볶향’(땅콩 볶는 고소함)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직접 재배하는 사람들


자크 셀로스의 영향은 퍼페추얼 리저브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전파한 복음의 요체는 아마도 ‘재배자 생산 운동’(Grower Movement)에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샴페인 지역에서는 거대 하우스들이 재배자들의 포도를 사들여 매해 균일한 고품질의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해내며 시장을 지배했다. 이 지배가 나쁜 것은 아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하면서도 퀄리티를 보장하는 ‘논빈티지 시스템’이 실은 샴페인이라는 AOC(원산지 통제 명칭)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품질 보증 방식이기 때문이다.

앙셀름과 그의 아들 기욤은 크라망, 아비즈, 오제르, 르 메닐쉬르오제르, 아이, 마뢰유 쉬르 아이, 앙보네에 있는 54개 플롯으로 이루어진 8,3헥타르(83,000㎡) 규모의 포도밭을 직접 돌보고 있다. 샴페인 서울 2025에서 앙셀름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손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그의 손은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크고 두껍고, 사포처럼 거칠었다. 그건 매일 땅을 만지는 사람의 손이었다. “지금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요.” 앙셀름이 말했다. “제게 포도나무는 자식과도 같아서 포도나무들을 두고 여기 와 있는 게 불안해요.” 아마 그의 손을 만져보지 않았다면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손이 너무 더럽지요. 그래도 중요한 행사니까 오는 길에 손톱도 좀 자르고 다듬었어요.”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이 자신의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일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이것이 하나의 운동으로 폭발한 계기가 앙셀름 셀로스라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율리스 콜랭, 세드릭 부샤르 등 수많은 샴페인 생산자들 역시 셀로스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샴페인 서울에는 흡사 앙셀름의 재배자 생산주의의 세례를 받은 듯 수 많은 레꼴당 매니퓰랑 생산자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맞아요. 샴페인과 부르고뉴에서는 지금 비오디나믹 생산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지난 10월 말 프랑스 디종의 한 와인 숍에서 들은 말이다. 이 말을 수치로 확인할 순 없지만 그날 샴페인 서울에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유기농과 비오디나믹의 부흥 역시 와이너리들이 직접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양조하면서 생겨난 움직임이라고 느꼈다. 오래전 샴페인은 파리의 생활 쓰레기를 퇴비로 쓰는 땅이라는 오명을 지니고 있었으며, 지나치게 많은 제초제를 뿌려 포도나무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젊은 와인메이커들은 이런 샴페인의 오명에 치를 떤다. 예를 들면 루이즈 브리종의 와인메이커 델핀 브륄레(Delphine Brulez)가 그렇다. 그녀가 만든 루이즈 브리종의 ‘2016 샤르도네 드 라 코뜨 데 바르 브륏 나튀르’는 9개월간 부르고뉴 오크 배럴에서 숙성한 뒤 7년 동안 병에서 숙성한 것이다. 레몬 머랭과도 같은 구운 설탕, 적절한 시트러스 그리고 타임 향이 무척 매력적이다.

델핀은 비오디나믹 농법으로 밭을 관리한다. 그녀는 “유기농법과 비오디나믹 농법만이 균형을 유지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이라며, “종종 비오디나믹 농법을 신비주의적으로 설명하면서 그 본질을 흐리는 경우가 있는데, 비오디나믹은 근본적으로 농업 시스템의 중심에 ‘생명’을 두는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비오디나믹 농법을 실천하는 플뢰리의 장 세바스티앙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장은 “꼬미데 샹파뉴(CIVC, 샹파뉴 와인 위원회)와 함께 화학, 유기농, 비오디나믹 농법을 비교하는 10년간의 연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라며, “그 최종 결과가 전체 샴페인 생산자에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제가 그 연구에 참여해서 받은 데이터에 따르면 비오디나믹 농법으로 재배한 포도들은 과실, 주스, 와인 상태 모두에서 같은 당도 대비 높은 산도를 보여줬어요”라고 말했다. 이 말은 비오디나믹 포도가 같은 성숙도에서 더 많은 페놀산 입자들을 지녀 복합적인 풍미를 띠고 있었다는 뜻이다. 비오디나믹의 근본에는 화학물질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여러 생산자들은 한결같이 샴페인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제초제의 전면 금지라고 입을 모았다. 델핀은 “생명의 순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가뭄에 대한 대응을 말하는 게 아니라, 물을 잡아두고 저장할 수 있으려면 커버 크롭 등을 활용하고 제초제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루그가 있다


가장 익숙하지만, 다시 새로웠던 와인은 크루그다. 자크 셀로스가 산화의 뉘앙스와 오크 터치를 극대화한 와인이라면, 그날 행사에 참가한 와인 중 가장 반대편에 있는 하우스는 아마 크루그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루그를 산화의 뉘앙스를 지닌 풍부한 샴페인으로 기억하지만, 내게 크루그는 미세 산소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게 컨트롤하는 하우스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이날 올리비에 크루그와 만나 173 에디션을 마셨는데, 이 에디션에 블렌딩된 베이스 와인 중 가장 오래된 와인은 2001년도 빈티지다. 2001년도 빈티지라면 돔 페리뇽의 고숙성 와인인 P2의 빈티지를 한참 넘어서는 할아버지다. 물론 병 숙성과 리저브 와인 상태에서의 숙성이라는 면에서 산화 노출 위험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리 리저브 와인의 숙성이라도 미세 산소의 컨트롤을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가는 와인이 식초가 되거나 모든 과실 향이 사라졌을 것이다. 크루그는 산화의 터치 중에 우리가 사랑하는 구운 빵과 너티한 고소함을 가득 품은 채로 무척이나 강력한 환원적 특징을 드러낸다. 레몬 제스트와도 같은 활력, 시원한 느낌을 주는 미네랄, 부싯돌과도 같은 플린티한 느낌. 이처럼 깨끗한 긴장감은 환원의 노력, 사람으로 치자면 노쇠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바른 선블록과 피부과에 드나드는 열성으로 완성된 것이다. 무엇보다 두 와인이 다른 점은, 크루그는 약 400개에 달하는 파셀들을 마치 하나의 음표처럼 저장해두고 그해에 난 포도에 섞어 어떤 의미에서는 ‘리저브 와인으로 보충된 가장 뛰어난 빈티지의 표현’을 뽑아낸다는 데 있다. 퍼페추얼 리저브가 추구하는 테루아의 영속적 특성과 대비되는 지향점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척이나 대비되는 두 와인을 함께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날 샴페인 서울 2025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크 셀로스와 크루그를 오갔다. 샴페인 서울 측이 크루그와 자크 셀로스를 연단에서 가장 가까운 원탁 모서리에 배치한 것 역시 흥미로웠다. 내게 그것은 마치 샴페인 세계의 두 추기경, 한쪽은 화려하고 한쪽은 수도승 같은 스타일의 두 추기경이 서로 마주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잔을 들어 장난 치고 있는 프레데릭 사바르. 포도가 가진 구조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프레데릭 사바르 역시 비오디나믹 농법 생산자로 유명하다.

잔을 들어 장난 치고 있는 프레데릭 사바르. 포도가 가진 구조적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프레데릭 사바르 역시 비오디나믹 농법 생산자로 유명하다.


샴페인을 읽는 일


와인메이커들과 나누는 대화들은 늘 흥미롭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몇몇 와인메이커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예를 들면 “샴페인의 최종 압력을 어느 정도로 맞춰야 좋을까?”에 대한 내용이다. 별 얘기가 아닌 것 같지만, 파고들면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다. 루이즈 브리종의 델핀은 티라주를 할 때 효모와 함께 설탕 대신 포도즙(머스트)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가 변화하면서 성숙한 포도의 당도가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샴페인에서는 티라주 1리터당 24g의 설탕을 첨가해 6기압의 압력을 만들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추가로 약 1.4도 정도의 알코올 도수가 올라간다. 최근 뱅 클레르의 도수는 12도가 넘는 경우가 허다하고 13도에 가까운 때도 있다. 여기에 24g의 설탕을 보당하면 최종 제품은 14도 가까이 될 수도 있다. 머스트에는 기포를 만들 만큼의 당이 들어 있지만, 순수한 설탕보다는 당도가 조금 낮아 13도 미만의 샴페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한편 샴페인 플뢰리의 장 세바스티앵은 NV 샴페인에서는 20~22.5g 사이를 넣는다. 압력은 조금 낮겠지만 도수는 적당할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읽는 게 즐겁다면, 당신은 이미 샴페인 추종자의 자질을 갖췄다. 다음 페이지에 이어지는 앙셀름 셀로스와 올리비에 크루그의 인터뷰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샴페인을 사랑하는 일은 종종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지적인 노동이다. 샴페인에 열광한 사람은 케인스만이 아니다. 찰스 디킨스, 오스카 와일드, F. 스콧 피츠제럴드, 오노레 발자크, 알렉상드르 뒤마, 살바도르 달리가 샴페인을 사랑했다. 샴페인을 사랑한다고 지적인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만, 지적인 사람들이 샴페인을 사랑한 것은 사실이다. 그건 샴페인이 다른 술들보다 직관적인 정보를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 병의 샴페인은 마치 한 권의 책과도 같다. 샴페인 한 잔을 마실 때면 샴페인의 색, 올라오는 기포의 크기, 탄산의 강도, 산도의 세기와 산미의 질감, 연상되는 과실과 꽃의 종류, 산화와 환원의 뉘앙스, 효모의 풍미 등등의 수많은 정보가 직관적으로 전달되고, 가끔은 마치 샴페인 생산자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샴페인을 맛본 뒤 우리가 그 와인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너는 누구야?”

Copyright ⓒ 에스콰이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