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바다에서 2025년 한국 시청자들이 건져 올린 키워드는 ‘세계관의 확장’과 ‘꾸밈없는 캐릭터’였다.
유튜브가 3일 발표한 ‘2025 연말 결산 리스트’를 뜯어보면 단순한 흥행 순위 이상의 흐름이 읽힌다. 거대 팬덤을 거느린 가상 IP(지식재산권)가 차트를 집어삼키는 동안, 크리에이터 진영에서는 오히려 사람 냄새 나는 ‘아재’와 현실 고증 캐릭터가 정상을 차지했다. 플랫폼의 성숙과 함께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정교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듣는 노래’ 넘어 ‘노는 노래’로… 차트 씹어먹은 ‘데몬 헌터스’
올해 유튜브 데이터에서 가장 압도적인 지표를 보인 것은 단연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단순히 인기가 많은 수준을 넘어섰다. 인기 주제, 최고 인기곡, 쇼츠 최고 인기곡 리스트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특정 콘텐츠가 플랫폼 전 영역을 이토록 완벽하게 장악한 사례는 드물다.
특히 최고 인기곡 차트 10위권 내에 ‘Golden(1위)’, ‘Soda Pop(3위)’, ‘Your Idol(10위)’ 등 무려 세 곡을 진입시켰다. 이는 음악이 더 이상 감상의 영역에 머물지 않음을 시사한다. 미국 ‘올해 최고 인기곡’ 차트에서도 10곡 중 5곡이 K-팝 관련 곡이었다는 점은, 이제 음악이 2차 창작과 밈(Meme)의 재료로 소비될 때 비로소 폭발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오징어 게임’이 영상 콘텐츠로서 영향력을 과시했다면, 데몬 헌터스는 ‘팬들이 가지고 노는’ 놀이터를 제공했다. 댄스 커버, 코스프레, 상황극(POV) 등 쇼츠를 통해 재생산된 콘텐츠가 원작의 인기를 다시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 셈이다.
◇ ‘추성훈’이 1위?… ‘멋짐’ 버리고 ‘망가짐’ 택한 전략 통했다
크리에이터 부문 1위가 추성훈(ChooSungHoon)이라는 점은 다소 의외이면서도 상징적이다. 화려한 편집이나 자극적인 소재 대신, 파이터의 이미지를 내려놓은 소탈하고 코믹한 일상이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2위에 오른 코미디언 이수지의 ‘핫이슈지’ 역시 맥락을 같이한다. 시대상을 반영한 페르소나(부캐) 연기는 단순한 코미디를 넘어 시청자들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6위 안성재 셰프(Chef Sung Anh)의 진솔함이나, 7위 ‘정서불안 김햄찌’가 보여준 하이퍼 리얼리즘 직장 생활 역시 ‘공감’이라는 코드가 관통한다.
과거 유튜브가 동경의 대상을 보여주는 창구였다면, 2025년의 유튜브는 ‘나와 닮은’, 혹은 ‘내가 보고 싶은 솔직한 모습’을 투영하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기획된 연출보다 투박하더라도 진정성 있는 캐릭터가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 증명됐다.
◇ 쇼츠, 신인 등용문이자 음원 차트의 ‘선행 지표’
쇼츠(Shorts)는 이제 명실상부한 ‘트렌드 메이커’다. 인기곡 순위와 쇼츠 인기곡 순위의 동조화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Soda Pop’이 쇼츠 1위를 차지한 것은 댄스 챌린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형 기획사 아이돌뿐만 아니라 조째즈(4위), 마크툽(6위) 등 유튜브 발(發) 아티스트들의 약진이다.
특히 쇼츠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입소문을 탄 인디 아티스트 현서의 ‘춘몽’이 9위에 오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방송 출연이나 거대 자본의 홍보 없이도, 60초 남짓한 짧은 영상 속 배경음악으로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으면 메인 스트림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 게임과 K-콘텐츠의 결합, 그리고 과제
게임 카테고리에서는 ‘로블록스’의 건재함 속에 ‘마비노기 모바일’의 성공적인 안착이 눈에 띈다. 클래식 PC IP를 모바일로 옮겨오면서 유튜브 내에서 새로운 화제성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오징어 게임’과 ‘폭싹 속았수다’ 등 K-콘텐츠들이 인기 주제를 휩쓴 것도 여전한 한국 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준다.
다만, 차트 상위권이 특정 대형 IP나 이미 인지도가 있는 셀럽(추성훈, 이수지, 지드래곤 등) 위주로 재편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신규 크리에이터나 중소규모 채널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선 데몬 헌터스처럼 강력한 팬덤을 구축하거나, 추성훈처럼 확실한 캐릭터 반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높은 진입장벽이 확인된 셈이기도 하다.
2025년 유튜브는 ‘참여’와 ‘캐릭터’로 요약된다. 보는 것을 넘어 함께 떠들고 놀 수 있는 ‘판’을 깐 콘텐츠만이 살아남았다. 내년에도 이 흐름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자가 2026년의 차트를 지배할 것이다.
한편, 유튜브가 공개한 2025년 한국 인기 트렌드 세부 리스트와 리포트 전문은 유튜브 공식 트렌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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