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지역 필수의료 붕괴가 가속하는 가운데 정부가 지역의사제를 법제화하며 의료 인력 재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제도 취지가 지역 의료격차 해소임에도, 복무 부담·열악한 정주여건·수련환경 격차 등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방치돼 있어 실효성 논란이 거세다.
의대 정원 확대 갈등이 수습된 지 불과 몇 달 만에 의료계가 다시 강하게 반발하며 ‘제2의 의정 대치’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법안 통과가 지역 의료 개편의 전환점이 될지, 또 다른 불안 요인을 키울지는 향후 제도 설계와 현장 대응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지역의사 양성 및 지원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은 의대 신입생 중 일정 비율을 선발해 학비를 지원하고 졸업 후 해당 지역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하도록 하는 복무형과, 이미 배출된 전문의를 계약 기반으로 지역 의료기관에 배치하는 계약형으로 구성된다.
복무형은 2027학년도 이후 적용이 가능하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면허정지·취소까지 가능한 강한 제재 규정이 담겼다. 정부는 지역의사제가 지역·필수·공공의료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핵심 제도라고 강조하지만, 의료계는 근본 진단이 잘못됐다며 반대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계가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은 지역의사제를 ‘인력 공급 확대의 문제’로만 파악한 정책 방향이다. 지역 의료 취약의 본질은 의사 수가 아니라 정주 환경과 인프라 격차에 있다는 게 의료계의 일관된 주장이다. 지방 의료기관은 전공의 미달에 따른 당직 공백, 소아·산부인과·응급과 같은 필수과 붕괴 등으로 교육·진료 여건이 수도권 대비 열악하다는 평가다.
의사단체는 특히 10년 의무복무 구조가 젊은 의사의 경력 형성, 연구 활동, 학회 참여 등 전문성 축적에 실질적 제약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녀 교육, 배우자 직장 문제 등 생활 기반 역시 수도권 대비 선택지가 크게 줄어 ‘정주 여건’의 벽이 더 높게 작용한다는 지적도 제기, 의무복무 기간 동안 지속적 이탈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수련환경의 격차도 큰 문제로 꼽힌다. 지방 병원은 환자 구성·증례 다양성·지도 전문의 수 등에서 수도권에 뒤처져 필수과 교육 기반이 취약한 상황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교육기관과 지도전문의 확충 없이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면 양적 배치만 만들어질 뿐 질적 역량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의 전문성뿐 아니라, 지역 주민의 의료 신뢰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이다.
반면,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예상보다 높은 충원율로 초기 안착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원·경남·전남·제주 4개 지역에서 모집 정원 96명 중 81명(84%)이 채워졌다. 정부의 월 400만원 수당 지원과 지자체의 주거·자녀지원·이전비 등의 보조가 직접적으로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강원은 정원 전원을 채웠고, 경남·전남·제주도 비교적 높은 충원율을 기록했다.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시범사업 지역을 확대할 방침이다. 계약형은 의사가 ‘이미 전문성을 갖춘 상태에서 지역 의료에 바로 투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복무형보다 실효성이 높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계약형 역시 장기 정착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대부분 5년 단위 계약이며, 수련·경력 개발의 제약, 의료 사고 리스크 부담, 낮은 지역수가 등은 결국 수도권 이동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남는다. 지방 병원의 인력 교체 주기가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계약형의 성공이 복무형의 정당성을 곧바로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책학적 측면에서도 지역의사제는 ‘인구 구조 변화’와 ‘지역 소멸’이라는 장기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있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는 “지역 보건의료의 해법은 지방분권 구조 속에서 관리와 재정이 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단기 공급 정책은 지속가능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와 농어촌 인구 감소 속도는 OECD 최고 수준으로, 주민의 의료 요구는 증가하는 반면 지역 의료 수요 자체는 구조적으로 축소되는 이중적 상황이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단순한 배치 정책을 넘어 의료 인프라·수가·응급체계 개편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정치적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역의사제를 둘러싼 대립 구도가 과거 의대 정원 증원 사태를 연상, 정부·여당 역시 강행 기조를 유지할 경우 의정 관계가 다시 경색될 가능성이 크다. 의사단체는 이미 집회와 반대 성명을 통해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병원협회와 전공의 단체 또한 “제도 시행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공동 우려를 표했다.
정부는 이번 법제화를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지역의사들이 지역의료의 핵심 주춧돌이 되도록 전폭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장의 우려를 반영한 정주여건 개선, 지역수가 신설, 수련환경 확충,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후속 정책 없이는 제도 자체가 정착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대학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한 전공의는 “지역에서 의사가 ‘머물 이유’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지역의사제는 제도만 남고 배치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며 “수요 예측과 현실 진단 없이 의무복무를 강제하면 인력 유입이 아니라 이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병원 관계자 역시 “정원 확대 없이 지역 배치만 늘리면 수도권 의료 공백이 커지는 역효과가 우려된다”며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보상 체계가 먼저 갖춰져야 제도가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격차를 그대로 둔 채 인력만 옮기는 방식으로는 지역의료 신뢰도 자체가 회복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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