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 블랙호크 착륙한 국회… '관·군'의 충성은 그날 누구를 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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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전] 블랙호크 착륙한 국회… '관·군'의 충성은 그날 누구를 향했나

뉴스로드 2025-12-03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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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3일 계엄군 진입과정에서 파손된 국회 본회의장 정문 [사진=최지훈 기자]
2024년 12월 3일 계엄군 진입과정에서 파손된 국회 본회의장 정문 [사진=최지훈 기자]

2024년 12월 3일 23시 48분. 블랙호크 12대가 여의도 국회 상공을 가르며 내려앉았다. 707특수임무단과 1공수여단, 수방사 군사경찰과 경비병력이 차례로 국회 경내를 점령했고, 일부 병력은 2층 의원실 유리를 깨고 본청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은 지휘선상에 있는 장성들에게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끌어내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고 재차 지시한 것으로 검찰 진술에 적시됐다.

1년 뒤 맞는 ‘12·3 불법 비상계엄’ 1주기. 국회입법조사처가 발간한 292쪽 분량의 ‘헌정위기(12·3 비상계엄) 극복 특별보고서’는 이 사태를 “즉흥이 아니라 상당 기간 준비된 비상조치”로 규정하며, 군 수뇌부 인사와 국방부 직할부대 구조가 헌정위기를 키운 결정적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국회입조처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이미 2023년 말부터 비상대권·비상조치 필요성을 군 지휘부에 수차례 언급했다. 2023년 11월, 이른바 ‘12·3 계엄의 주역’ 네 명이 일괄 임명된다.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이다.

작년 6월 17일 삼청동 안가에서 윤 전 대통령은 이들 네 명과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을 불러 모은다. 이 자리에서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은 “이 4명이 각하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이라고 소개했다는 진술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입조처는 이를 두고 “안정적인 병력 동원을 위한 군 수뇌부 인사가 계엄 준비의 출발점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개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장군들’을 골라 배치한 인사 방식이, 결과적으로 군을 통치권자의 정치 프로젝트에 동원하는 통로가 됐다는 의미다.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하반기에도 “현재 사법체계와 방탄 국회, 재판 지연 상황에서는 특정 정치인을 어떻게 할 수 없다. 비상대권으로 조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한 것으로 방첩사령관 진술에 나타난다. 입조처가 이 발언을 보고서 본문에 인용했다는 점에서, 계엄이 단순한 안보 대응이 아니라 정적 제거 수단으로 기획됐다는 의심은 더 이상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입조처에 따르면, 12월 3일 22시 48분경, 서울지방경찰청 국회경비대와 기동대 등 약 1700명이 국회 출입문에 차벽을 설치하고 국회 외곽을 봉쇄했다. 이는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조지호 당시 경찰청장과 김봉식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안가로 불러 “국회를 잘 통제하라”고 지시한 뒤, 계엄사령관을 통해 국회 봉쇄를 명령한 결과였다.

이어 23시 48분부터 4일 1시 14분까지, 12대의 블랙호크 헬기로 특전사 197명이 국회 운동장에 두 차례에 걸쳐 투입됐다. 707특임단 15명은 4일 0시 33분부터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실 창문을 파손하며 2층으로 진입했고, 1공수여단 병력 174명도 차량으로 국회 경내에 들어와 후문까지 전진했다.

검찰이 국회에 보고한 수사 결과에 따르면, 12·3 계엄 당시 국회의사당에는 특전사 466명, 수방사 212명 등 군 678명과 경찰 약 1768명이 동원돼, 국회에만 군·경 2446명이 투입됐다. 여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각지 선관위, 더불어민주당사, 여론조사 업체 등에 배치된 특전사·방첩사 병력까지 합치면 계엄 작전에 동원된 군·경 인원은 약 4749명에 이른다. 

입조처는 “국회 출입을 통제하고, 계엄군에는 국회 출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군·경이 긴밀히 협조해 민의의 전당을 봉쇄했다”고 적시했다.

국회는 계엄군이 국회 담장을 넘어 진입을 시도하던 그 시간, 본회의를 강행해 4일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의결했다. 그러나 결의 직후에도 윤 전 대통령의 지시는 멈추지 않았다. 보고서에 인용된 증언에 따르면 그는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해제됐다 하더라도 내가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는 거니까 계속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국회 전기를 차단하려던 시도도 있었다. 계엄군 7명은 중앙홀 진입이 무산되자 지하 1층 분전함을 열어 일반·비상조명 차단기를 내려 지하 전력을 끊었다. 이 시각은 계엄해제 결의 가결 시각(1시 1분)과 불과 6분 차이였다. 입조처는 “10분만 앞서 본관 전체 전력을 차단했더라면 국회는 단전 혼란으로 계엄 해제 요구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평가했다.

입조처는 이 일련의 정황을 종합해, 12·3 계엄을 “헌법상 요건과 절차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권력 유지와 정적 제거를 목적으로 시도된 비상권 행사”로 규정했다.

계엄군은 국회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된 이후인 4일 새벽부터 철수를 시작해, 707특임단은 4시 19분, 1공수여단은 4시 30분, 수방사 경비·군사경찰, 방첩사 병력은 2시 25분~4시 50분 사이 부대로 복귀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옛 육군본부 본관)에 국방부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곳은 순국 장병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으로, 헌정위기 1년을 맞아 군이 지켜야 할 본령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시키는 상징적 배경이 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옛 육군본부 본관)에 국방부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곳은 순국 장병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으로, 헌정위기 1년을 맞아 군이 지켜야 할 본령이 무엇인지 다시 상기시키는 상징적 배경이 되고 있다. [사진=최지훈 기자]

국민에게 각인된 장면은 따로 있다. 철수 과정에서 한 계엄군이 휴대전화로 촬영하던 시민을 향해 연신 “죄송합니다”라며 허리를 숙였던 모습이다. 계엄 작전의 최전선에 섰던 장교들조차도, 자신들이 겨눈 방향이 ‘적’이 아니라 국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입조처는 보고서 말미에서 12·3 계엄에 연루된 다섯 개 부대(방첩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육군특수전사령부, 국방정보본부, 드론작전사령부) 가운데 세 개가 국방부 직할부대, 두 개가 육군 소속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국직부대는 국방부 장관의 지휘를 받음으로써 다른 부대에 비해 정치적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계엄을 실행한 병력보다, 국방부 직할·육군 핵심 전투부대를 ‘충성 장군’ 중심으로 묶어놓은 인사 구조와, 이를 활용해 군을 정치 도구로 쓴 대통령과 군 수뇌부에 1차적 책임이 있다는 취지다.

입조처는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개혁 방향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첫째, 국방장관의 문민화를 법제화하는 문제다. 미국의 경우 전직 군인이 국방장관이 되려면 전역 후 10년이 지나야 하며, 이는 군 인맥을 끊고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어 “새 정부가 문민 출신 국방장관을 임명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지속적인 문민화를 위해서는 전역 후 일정 기간 내 장관 취임을 제한하는 등 법적·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둘째, 국방부 직할부대(국직부대)의 난립을 정리하고 합참 예하부대로 재편하는 군 구조 개혁이다. 입조처는 "국군수송사령부, 사이버작전사령부, 드론작전사령부, 전략사령부, 국군지휘통신사령부, 국군심리전단,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 등 국직부대들이 기능 중첩과 비효율, ‘자리 만들기’ 논란을 낳고 있으며, 합동참모의장이 군령권을 행사하는 우리 군 구조상 미국처럼 국직부대를 다수 운용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는 곧, 군 핵심 기능을 장기간 한 조직·한 출신 집단이 독점하는 구조를 허물지 않는 한, 언제든 또 다른 ‘충성 장군 그룹’이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12·3 계엄의 후유증은 안보·정치 영역을 넘어 경제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계엄 선포(12월 3일)와 1차 탄핵소추안 부결(12월 7일) 이후 원·달러 환율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계엄 선포일부터 윤 전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전날까지(12월 3일~이듬해 1월 20일) 원·달러 환율 상승 폭(종가 기준 2.95%)은 같은 기간 달러인덱스 상승 폭(2.80%)을 상회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100.7에서 계엄 직후인 12월 88.2로, 코로나19 이후 최대 폭으로 떨어졌다.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은 –0.2%로 역성장을 기록했고, 민간소비 역시 감소했다. 이후 분기별 성장률과 소비가 회복세를 보이긴 했지만, 입조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환율·자산시장 변동성과 소비 위축을 통해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헌정질서 파괴 시도가 ‘정치적 사건’을 넘어, 금융·실물경제 전반에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금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파면됐다. 같은 날 국회는 ‘12·3 윤석열 비상계엄을 해제한 대한민국 국민께 드리는 감사문’을 의결하며 헌정위기 극복의 주체가 ‘국민과 국회’였음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입조처 보고서가 제시한 구조 개혁 과제가 충분히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민국방장관 제도화는 아직 입법 단계에 머물러 있고, 국직부대 재편 역시 본격적인 법·제도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보고서는 “12·3 계엄은 헌정질서와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인 동시에, 국민과 국회가 헌정을 지켜낸 날”이라고 정리하며, 12월 3일을 ‘헌정질서를 지켜낸 날’로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헌정을 무너뜨리려 했던 권력과 그 명령을 집행한 군 수뇌부의 인사 구조가 그대로라면 이 날은 ‘기념일’이 아니라 ‘경고의 날’로 남을 수밖에 없다.

육군·육사 중심의 폐쇄적 인사와 국방부 직할부대에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손보지 못한다면, 언제든 또 다른 대통령이 “이게 나라냐”는 말로 비상대권을 입에 올리고, 충성 장군 집단이 또 다시 국회를 둘러싸는 악몽이 반복될 수 있다.

12·3 계엄 1주기, 국회입법조사처의 두꺼운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군과 권력의 작동 방식은 정말 달라졌는가"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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