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낭만과 붕괴 사이, 쿠바라는 나라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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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낭만과 붕괴 사이, 쿠바라는 나라의 진짜 얼굴

월간기후변화 2025-12-01 13:15:00 신고

▲ 1950년대 올드카가 달리는 하바나 거리의 풍경.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흔히 쿠바를 떠올린다. 체 게바라의 초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리듬, 1950년대 올드카가 달리는 하바나 거리의 풍경.

 

그러나 이 화려한 이미지는 오늘의 쿠바를 설명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20년대의 쿠바는 인구의 88%가 절대 빈곤에 놓여 있고, 하루 8시간 정전이 일상이며, 식량과 기름 부족 때문에 자동차를 밀고 다니는 장면까지 흔해진 나라다.

 

그럼에도 쿠바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자료가 쏟아지는 작은 섬이다. 미국 코앞에 위치한 지정학,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 자원과 이주의 문제, 그리고 미국의 강력한 쿠바계 유권자들까지 얽힌 복잡한 구조 때문이며, 한국과의 수교 또한 이 국제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 석양이 아름다운 쿠바    

 

쿠바의 낭만적 이미지는 주로 음악과 영화가 만들어 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세계적 성공은 하바나의 레트로함을 신비화했고, 체 게바라를 영웅으로 그린 영화들이 혁명을 아우라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신화 뒤에는 자원을 갖고도 가난에 갇힌 구조적 문제가 있다.

 

쿠바는 한때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이었고, 지금도 최고의 시가를 만든다. 니켈 매장량은 세계 3위이며 코발트 역시 세계 5위 수준이다. 하지만 이 자원을 개발할 자본과 기술은 미국 제재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고, 쿠바 내부의 극심한 관료주의와 비효율적 계획 경제는 자원을 묶어 두었다.

 

쿠바의 경제 쇠락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설탕 산업의 몰락이다.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만 해도 연간 800만 톤을 생산하던 설탕은 2022년 48만 톤까지 추락했다. 쿠바는 설탕을 소련에 넘기고, 그 대가로 석유를 할인받아 제재의 압박을 버텼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이 구조가 무너지면서 생산 체계 전체가 붕괴했다.

 

제당소의 절반이 문을 닫았고, 지금 가동되는 공장은 두 곳뿐이다. 연간 소모량조차 충당하지 못하게 된 설탕은 암시장에서 더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이 되었다. 이는 쿠바 경제 현실을 상징하는 단면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계획 경제는 시장의 조절 기능을 잃어, 어떤 날은 휴지가 없고 다음 날은 비누가 없으며, 비료가 끊기면 한 해 농업이 통째로 무너지는 구조적 취약성을 반복한다.

 

그러나 쿠바가 가진 독특한 모순을 보여주는 분야는 단연 의료다. 쿠바는 1천 명당 의사 8.4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예방 중심의 1차 의료 시스템, 동네를 구역 단위로 관리하는 왕진 체계, 산모와 영유아 관리를 세트로 운영하는 공중보건 모델은 적은 예산에도 높은 기대수명을 달성해 온 비결로 평가받았다. 쿠바의 평균 수명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체계는 결국 경제난 앞에서 균열이 생겼다. 약이 없고 장비가 없으며, 의사들이 해외 파견 중 미국이나 제3국으로 대거 망명하면서 공급망이 붕괴했다. 지난 10년간 7천 명 이상의 쿠바 의사가 미국으로 떠났고, 2022년에는 1만 2천 명이 의사직 자체를 포기했다. 무료 의료라는 헌법적 권리는 사실상 유지되기 어렵게 되었고, 외화벌이를 위한 외국인용 병원이 별도로 운영되는 이중 구조가 고착됐다.

 

야구는 쿠바에 가장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 쿠바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스페인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혁명기에는 피델 카스트로가 직접 옹호한 ‘사회주의적 스포츠’가 되었다. 20세기 후반 쿠바 야구는 세계 최강이었다.

 

한국은 13번 맞붙어 9번 패했고, 올림픽에서도 쿠바는 정식 종목 5회 중 3회 우승했다. 그러나 나무 배트 도입, 장비 부족, 해외 망명 등으로 쿠바 야구는 21세기 들어 빠르게 쇠퇴했다. 지금 쿠바 리그는 미국 기준으로 싱글 A와 더블 A 사이로 평가받고, 축구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로 인해 야구의 기반도 약화되고 있다. 일본이 제안한 합리적 임대 제도도 선수들이 일본에서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며 무산됐고, 2018년 미국 메이저 리그와의 협정도 트럼프 정부가 뒤집으면서 야구 인재 유출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한편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긴 외교적 역사의 마무리였다. 쿠바는 북한과의 오랜 관계 때문에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한 한국 비수교국이었는데, 2024년 2월 양국이 뉴욕에서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하면서 이 오랜 공백이 사라졌다.

 

그 이후 한국인들의 쿠바 여행 관심이 급증했지만, 쿠바 방문 이력이 있으면 미국 ESTA가 불가능해지는 역설적 상황도 함께 생겼다. 미국은 쿠바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쿠바를 다녀온 사람은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통해 비자를 따로 받아야 한다. 반대로 미국인들은 플로리다에서 50분 비행으로 하바나까지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있어, 이 역시 미국 정치 내부의 이해관계가 만들어 낸 이중 구조이다.

 

오늘의 쿠바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카리브의 빈국을 보는 일이 아니다. 쿠바는 자원 부국이면서 빈곤국이고, 의료 강국이면서 의사 부족 국가이며, 야구 강국이면서 선수 유출로 흔들리는 나라다.

 

 

미국과 가장 가깝지만 가장 복잡한 외교적 갈등을 겪는 나라이고, 사회주의를 유지하지만 시장의 논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나라다. 낭만과 붕괴, 혁명과 관료주의, 자원과 빈곤 사이의 모순 속에 놓인 나라. 그 복잡함과 모순의 층위를 이해할 때 비로소 쿠바라는 나라의 진짜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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