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소울 한장면
디즈니·픽사의 영화 ‘소울’을 다시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른을 위한 철학을 담고 있으며, 무엇보다 재즈를 중심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더 깊이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그 감정적 계기로부터 글은 자연스럽게 재즈라는 음악이 어떻게 ‘아메리칸 뮤직’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길을 통해 미국 문화의 정체성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따라간다.
미국이 건국 초기 “내세울 문화가 없다”고 평가받던 시절, 유럽의 비평가들은 미국 음악과 예술을 조롱했다. 대성당도, 수백 년의 대학도, 고전 예술 전통도 없었던 나라. 그 척박함 속에서 재즈가 등장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정글로 돌려보내야 할 음악”, “잡것들의 음악”이라 불리던 재즈가 어느 순간 미국을 대표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음악 장르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생 국가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의 문화사적 장면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콧 피츠제럴드가 ‘재즈 에이지’라고 명명할 만큼 재즈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젊은이들에게는 구세대와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도시에서는 인종을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통의 리듬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색소폰 연주자 소니 롤린즈가 “재즈는 흑인·백인 모두의 음악”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후 재즈는 냉전 시대 공공외교의 무기가 되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재즈 공연단을 해외에 파견하며 “자유로운 나라의 소리”를 전파하는 전략을 펼쳤다. 디지 글리스피, 데이브 브루벡, 루이 암스트롱 같은 거장이 유럽·아시아·중동까지 공연을 다니며 미국의 이미지를 바꿨다. 사람들은 음악을 넘어 “이 나라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오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고, 이는 자연스럽게 문화적 호감으로 이어졌다.
재즈의 지리적 이동 역시 인상적이다. 블루스의 고향이 미시시피 델타라면, 재즈는 뉴올리언스를 근원지로 삼는다. 뮬라토라 불린 흑백 혼혈, 렉타임 피아노 스타일, 브라스 밴드 문화가 결합하며 재즈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곧 대이동이 시작된다. 남부의 흑인들이 일자리와 안전을 찾아 북부로 이동했고, 철도의 종착지는 시카고였다. 자연스럽게 시카고는 블루스와 재즈의 거대한 무대가 되었다. 여기에 금주법 시대의 스피기지 문화까지 더해져 시카고는 한동안 재즈의 수도가 된다.
그러나 재즈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뉴욕이었다. 시장 지미 워커가 당선된 이후 스피기지 문화가 뉴욕에도 확산되며 할렘을 중심으로 재즈의 황금기가 열린다. 이 시기를 결정적으로 이끈 인물이 바로 듀크 엘링턴이다. 거리의 음악이던 재즈를 악보로 정리하고 수천 곡을 작곡하며 재즈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 그가 없었다면 재즈는 여전히 즉흥과 열정으로만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듀크 엘링턴의 빅밴드는 재즈가 고급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세계에 증명했다.
1950년대에는 재즈가 잠시 할리우드의 품으로 이동한다. 영화 산업이 성장하며 OST로 재즈가 쓰였고, ‘백설공주’나 ‘오즈의 마법사’의 유명곡들도 재즈 스탠다드가 되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관객들은 음악을 직관하기보다 스크린을 통해 소비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에, 결국 재즈의 중심은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재즈는 관객과 연주자의 호흡, 공간의 열기, 즉흥의 긴장감이 살아 있어야 완성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재즈 클럽 ‘하프 노트’는 실제 뉴욕의 ‘블루 노트’와 ‘빌리지 뱅가드’를 합쳐놓은 듯한 상징적 장소다. 영화는 또한 재즈의 오랜 남성 중심 문화를 넘어, 여성 색소폰 연주자 도로세아 윌리엄스와 트럼본을 연주하는 여학생 칸 같은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이는 실제 재즈계에서 확산되는 변화의 흐름을 반영한 장면이다.
결국 재즈의 본질은 즉흥 연주다. 악보에는 멜로디가 적혀 있지만,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소리로 확장하느냐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몫이다. 화자는 이 점에서 재즈와 삶이 닮았다고 말한다. 삶은 정해진 답이 없고, 같은 선율이라도 누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그렇다.
화자는 유학 시절 힘들 때마다 타워 레코드에서 들었던 음악을 떠올린다. 사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 빌리 할리데이. 그리고 지금도 종종 듣는 커티스 플레밍의 곡 “Love Your Spell Is Everywhere”. 영화 ‘소울’을 다시 본 날, 그는 집에서 레드 와인과 함께 그 곡을 들으려 한다고 말한다. 음악도, 삶도, 결국은 각자의 즉흥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조용히 남기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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