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K-드라마·K-푸드가 세계를 흔드는 동안, 정작 '빛을 다루는 산업'인 주얼리는 왜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까. 한국 주얼리 시장은 명품을 독점한 해외 브랜드와 돌반지·커플링 등 생활용을 지탱하는 영세 브랜드로 극단적으로 갈려 있다. 디자인·유통 혁신도, 투명한 제도 개선도 더디기만 한 현실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관련 법안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번 기획은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보석감정원, 업계 전문가 등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한국 주얼리 산업의 현주소와 한계를 짚어본다. 그리고 세계무대에서 ‘K-주얼리’가 진정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지, 제도와 시장, 디자인까지 총체적 해법을 모색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다음 빛나는 이름이 ‘K-주얼리’가 되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산업과 정책, 소비가 함께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편집자주] |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휩쓰는 K-컬처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산업'이 되어야 할 K-주얼리는 아직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투명성이 낮은 유통 관행과 영세 기업 난립으로 양극화된 산업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신뢰 확보', '한국적 서사를 담은 브랜딩 철학', 그리고 '마케팅 혁신'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여성경제신문이 월곡주얼리산업진흥재단, 한미 보석감정원 등 현장 전문가들의 취재를 통해 K-주얼리의 새로운 부흥을 위한 3대 핵심 전략을 짚어봤다.
K-주얼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첫 단추는 '신뢰'다. 국내 주얼리 시장은 오랜 기간 세금 탈루 및 비표준 거래 관행, 원자재 유통의 음성화 등으로 인해 소비자 신뢰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국내 주얼리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해 온 차지연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책임 연구원은 산업 전반의 구조적 한계를 꼬집었다. 차 연구원은 여성경제신문에 "국내 주얼리 산업은 디자인, 제조, 유통이 융합되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매우 큰 산업이지만, 현재 전체 주얼리 사업체의 약 90%가 5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체로 구성되어 있다"며 "인적 자원과 경영 역량 측면에서 체계적인 브랜드화나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차 연구원은 "특히 금 등 주요 원자재의 유통은 세제 및 제도적 한계로 인해 여전히 음성 시장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 합법적 거래 구조의 확대와 투명한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유통 구조와 더불어, 기관마다 기준이 다른 감정 시스템 역시 소비자 신뢰를 약화시키는 주범이다. 이에 감정 부문의 과학화와 표준화가 필수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김영출 한미감정원장은 본지에 "현재 국내 감정 시스템은 기관마다 기준이 달라 소비자 신뢰가 약하다"며 감정 시스템의 투명성 강화와 합성보석과 인공 처리 표기, 데이터 공개를 촉구했다.
아울러 K-주얼리의 국가 브랜드 구축을 위해 검증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김 감정원장은 "소비자 신뢰는 '국내 감정서=글로벌 감정서' 수준으로 신뢰 구축이 가능해야 하며, 전문 감정기관이 원자재부터 최종 상품까지 필터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K-주얼리는 이제 '패션이 아닌 과학·문화산업'으로 발전해야 하며, 'Made in Korea'보다 'Verified by Korea'가 되어야 한다"며 "품질 관리 인증제 도입을 통해 검증된 상품으로 한국이 감정·표준·신뢰의 중심국가로 자리를 잡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K-주얼리가 해외 명품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한 두 번째 전략은 '디자인 철학의 체계화'다. 디자인은 단순한 세공을 넘어, 문화적 서사와 감성적 가치를 전달하는 핵심 콘텐츠가 되어야 한다.
차 연구원은 "K-주얼리가 세계 시장에서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한국적 정체성의 현대적 해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현재 글로벌 명품 주얼리 브랜드들은 헤리티지와 서사적 브랜딩을 통해 감성적 가치를 선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단순한 소재와 형태의 차별화가 아닌, 한국의 미적 질서와 문화 서사를 담은 디자인 철학의 체계화가 K-주얼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하이 주얼리 브랜드들이 기술과 예술, 철학을 결합하는 것처럼, 한국 역시 창의적인 기술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김 원장은 "창의적인 국민성을 기반으로 한 첨단의 AI 기술을 활용한 디자인 스토리텔링 개발이 필요하다"며 "한국은 아직 단순한 '제품' 중심이므로, 단순한 보석 판매에서 벗어나 문화, 철학, 장인 정신을 담은 스토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기업 중 골든듀는 독보적인 기술력과 독창적인 디자인, 장인 정신을 갖춘 국내 대표 파인 주얼리 브랜드로 꼽힌다. 이들은 특히 한국의 역사와 미감을 현대적으로 구현해 내는 '서사적 브랜딩'의 모범 사례다.
골든듀의 디자인은 모던하고 심플한 형태 속에 금의 고유한 질감과 조형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한국 문화의 깊이를 더한다. 지난달 롯데백화점 잠실점 전시에선 안상수 작가와 협업해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주얼리 디자인에 접목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의 문화를 담아냈다.
또한 지난 6월에는 성수동에선 파인 주얼리 브랜드 팝업 전시회 '뉴 아이콘'을 통해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개나리꽃'의 찰나에서 영감받아 탄생 골든듀의 새로운 아이코닉 컬렉션을 전시했다. 아울러 지난 5월에는 한국 전통 미학의 상징인 사군자를 모티브로 한 헤리티지 컬렉션을 발표하며, 사군자의 정수를 현대적인 주얼리에 세련되게 담아내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의 역사와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며, 장인 정신과 첨단 기술, 그리고 청년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창의적 인력 생태계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K-주얼리의 부흥을 위한 세 번째 전략은 유통과 마케팅의 혁신이다. 차지연 연구원은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세계 시장에서 주얼리는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스토리 기반의 럭셔리 콘텐츠로 소비된다"며 "국내 기업이 경쟁하기 위해선 브랜드, 콘텐츠, 플랫폼이 결합된 전략적 유통 모델이 필수"라고 했다. 차 연구원은 "주얼리 제품도 물론 중요하지만, '브랜드 스토리와 경험'을 판매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K-주얼리의 글로벌 진출 핵심 전략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주얼리를 도시, 산업, 문화가 결합된 복합 콘텐츠로 전환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 감정원장은 프랑스의 '방돔 광장', 태국의 'GIT Gems City' 같은 사례를 들며 관광과 연계된 산업 모델 마련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그는 "보석을 '상품'을 뛰어넘어 경험과 교육의 콘텐츠로 전환해야 하며, 한국도 단순히 공방이나 보석점 및 백화점 수준의 시장이 아니라, 도시·산업·문화가 결합된 주얼리 클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며 보석 공방, 체험관, 박물관이 결합된 한국형 모델 'K-Jewelry Village' 조성을 제안했다.
이 모든 혁신을 뒷받침할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중장기적인 정책 지원이다. 차 연구원은 "현행 정책은 주로 창업 지원, 전시 참가, 소규모 융자 중심으로 단기적 지원에 집중되어 있어,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를 형성하기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K-주얼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보조금 중심의 지원을 넘어, 산업 구조 전환을 견인할 수 있는 중장기 전략과 제도적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차 연구원은 "주얼리 기술 혁신과 경영 고도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강소기업 중심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산업 관광 자원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국회에서 다수의 의원이 발의하고 논의 중인 '주얼리산업진흥법'의 조속한 통과와 함께, 세법 및 환경제도 개선, 산업 표준화 제정 및 정비, 기술 디자인 융합형 전문 인력 양성 등을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트렌드 해석력과 한국적 미감을 접목한 창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AI 기반 제품 개발 역량 강화 및 산업-학계 연계 실무형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러한 다층적 노력이 유기적으로 맞물릴 때 K-주얼리는 세계 시장에서 독자적 정체성과 신뢰를 갖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K-주얼리가 K-컬처의 다음 빛나는 이름이 될지 여부는, 지금 산업계와 정부, 디자인 인력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여 신뢰와 서사를 담은 전략을 펼치느냐에 달렸다.
◇ 시리즈 순서
본 기획은 3회에 걸쳐 한국 주얼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개선 과제를 짚는다.
①편: 해외 명품 ‘훨훨’ vs 국산은 ‘위축’···양극화 늪에 빠진 K-주얼리
②편: K-주얼리, 빛을 잃은 산업···법·제도 없는 무방비 시장
③편: K-주얼리 르네상스를 위하여···글로벌 경쟁력 회복 위한 해법은?
여성경제신문 서은정 기자 sej@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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