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지도와 그림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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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지도와 그림①

문화매거진 2025-11-30 17:16:34 신고

▲ 전시 전경 / 사진: 정서원 제공
▲ 전시 전경 / 사진: 정서원 제공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규장각 특별전의 제목 ‘규화명선(奎畵名選)’은 이번 전시가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은근하게 드러낸다. 정조가 규장각 신하들의 글을 모아 엮은 ‘규화명선(奎華名選)’의 제목에서 ‘화(華)’를 걷어내고 ‘그림 화(畵)’를 넣어 만든 이름. 글의 집으로 알려진 규장각이 스스로의 오래된 역할을 잠시 비껴서, 책 뒤편에 조용히 보관되어 있던 그림들을 마침내 전면에 내놓는 자리다. 

묵묵히 쌓여 있었을 그림들이 기록과 나란히 있었음을 보여주는, 규장각다운 복합적 시선의 전시다. 조선 시대의 회화, 의례 기록화, 초상, 판화, 그리고 지도까지 다양한 형식의 이미지들이 한 공간에 모여, 글로는 다 잡히지 않는 시대의 기운을 한 번에 펼쳐놓는다.

전시장을 천천히 걸으며 문헌과 그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두드러졌다. 기록이 사건과 제도의 흐름을 남긴다면, 그림은 그 사이사이의 호흡을 남긴다. 왕실의 의례를 그린 한 장의 기록화에는 그림자와 색의 농담으로 당시의 긴장감이 배어 있고, 초상화의 눈빛에는 글에서는 포착할 수 없는 한 시대의 윤리가 스며 있다. 글이 전체의 구조를 말한다면, 그림은 그 구조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기운’을 말한다. 전시는 기록과 이미지가 다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는 순간을 관람객에게 체감시키려는 듯하다.

▲ 전시 전경 / 사진: 정서원 제공
▲ 전시 전경 / 사진: 정서원 제공


그 가운데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오랫동안 시선을 붙들어 두는 작품이 있다. 전주를 그린 지도, 지도라고 부르지만, 처음 마주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건 지도라기보다 하나의 산수화다’였다. 성곽과 관아, 마을과 강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적 목적은 분명히 있지만, 그 모든 요소가 산수화의 문법으로 풀려 있다. 산은 방향과 굴곡을 따라 호흡하듯 이어지고, 강은 수평적 기호가 아니라 실제로 흐르는 듯 화면을 가로지른다. 마을은 격자 형태의 기호가 아니라 정말 그 자리에 있을 법한 삶의 밀도로 펼쳐져 있다. 전주라는 도시가 지도 위에 얇게 평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가 가진 결이 살아 있는 육체처럼 보인다.

조선의 지도들이 근본적으로 회화적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전주지도는 그 회화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지도 중 하나다. 산세는 실제 지형과 다소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의 눈이 읽어낸 풍경의 흐름은 오히려 더 정확하게 남아 있다. 산줄기의 흐름을 따르고, 주요 봉우리를 크게 올려 도시를 둘러싸는 자연의 구조를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산과 물의 관계가 실제 생활과 정치, 도시의 질서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기 때문이다. 지형의 맥을 읽는 것은 곧 도시의 성격과 기세를 읽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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