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정 칼럼] 영화가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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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묘정 칼럼] 영화가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

문화매거진 2025-11-30 17:07:14 신고

▲ '서울독립영화제' 슬로건으로 만든 노묘정 작품
▲ '서울독립영화제' 슬로건으로 만든 노묘정 작품


[문화매거진=노묘정 작가] 이번 칼럼의 제목은 올해 2025 ‘서울독립영화제’ 슬로건이다. ‘영화가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 감독 입장에서 매우 공감하는 말이다. 나 역시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제일 중요한 것은 첫 번째도 관객, 두 번째도 관객, 세 번째도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점점 없어지고 있고, 그러다 보니 영화 제작이나 투자가 또 줄고 있고, 그러다 보니 볼 영화가 없어서 관객들은 점점 더 영화관과 멀어지고 있다. 영화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작은 영화관들이 사라질까 봐 걱정이 많다. 그래서 영화관을 가야만 하는 이유 중에 하나인 영화와 관련된 이벤트 ‘GV’에 대해서 다뤄보려고 한다.

사실 GV는 콩글리시 표현으로, ‘Guest Visit’의 줄임말이다. 조금 더 쉽고 정확한 명칭은 ‘관객과의 대화’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나 배우, 프로듀서 등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과 관객이 만나서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뜻한다. GV는 한국 영화계에서 행사 명칭을 줄이기 위해 만든 표현이 굳어지고 대중화되어서 지금은 넓게 사용되고 있다.

나의 첫 GV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우리들’을 상영한 뒤에 작품을 만든 윤가은 감독과 함께 진행되는 자리였다. 관객들의 질문이 쏟아져서 차마 손을 들 수 없었지만, 모든 질문들이 다 흥미로워서 아주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님이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고,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에피소드들도 매우 흥미로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영화에 ‘오이김밥’이 나오는데 왜 많은 김밥 중에 오이김밥을 골랐는지 물어보는 관객이 있었다. 감독님이 함께 만드는 촬영 스태프 중에 부모님이 오이김밥을 잘 만들었다는 답변을 받았던 것 같은데, 너무 재밌는 질문과 답변이었다. 우리가 방금 본 영화가 때로는 아주 사소한 이유에서 결정될 때도 있고, 때로는 굉장히 치열한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다 느낄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 질문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도 기억에 남는다. 같은 장면을 놓고도 굉장히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또 호불호가 나뉘는 캐릭터에 대한 관객들의 토론도 이어졌다. 첫 GV이기도 했지만 굉장히 열띤 분위기였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았다. 이렇게 다양한 반응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는 정말 몰랐다. 내가 GV를 하게 될 감독이 될 것이라고는. 물론 내가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는 여러 명의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함께 진행한 것이라 단독으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 작품을 본 관객들의 직접적인 피드백을 만나서 듣는다는 것은 감독으로서 굉장히 긴장이 되면서도 설레는 순간이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기 때문에 부족한 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스스로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지만 동시에 그들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간에 상영관을 나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시간을 내어준 그분들이 너무도 고맙다.

아울러 모든 질문은 다음 작품을 만드는 것에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칼럼을 썼다. 여러분의 모든 질문이 감독에게는 정말 소중한 피드백이 된다. 그것이 본인의 개인적 해석이든, 감상평이든,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나 제작 방식에 대한 호기심이든 간에 그 모든 관심이 정말 괴롭고 깜깜한 감독의 창작 세계의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또 이해가 가지 않아서 질문하는 것 또한 다음 작품을 만들 때 유념해야 할 지표가 되기도 한다. 물론 가끔 자신의 지식을 많은 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작품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질문인 척 하는 GV 빌런도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무관심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GV 빌런들과의 에피소드조차도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로 아주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GV 때 관객으로 간다면 더 용기 내서 많이들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꼭 감독에게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함께 영화를 본 관객 입장에서 작품에 대한 자신만의 감상평을 듣는 것도 매우 즐거운 시간이다. 그러니 혹시 내가 남의 시간을 뺏는 것은 아닐까, 이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해서 눈치가 보인다면 걱정하지 말기를.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다른 관객들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궁금해하고 의문이 가는 부분은 어쩌면 그 작품의 가장 중요한 쟁점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고민이 많다. 이번 칼럼은 수많은 방법 중 기존에 있던 방법의 장점에 대해서 적었을 뿐, 다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내년까지도 계속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영화가 오려면 정말로 ‘당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말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비록 그 영화들이 여러분이 시간을 내서 기대감을 갖고 본 만큼 화려한 볼거리가 많지 않고, 이야기적 완성도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렇게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든 감독들이 실패와 좌절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는 빛나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도록 계속 영화관을 찾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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