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라는 장르 - 그림책의 주제① 프롤로그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그림책을 보는 첫 번째 기준은 ‘책이라는 물성’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림책에서 책의 물질적인 특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야기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글과 그림으로 만든 이야기를 책에 입힌 결과가 그림책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실제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책이 많다. 그러나 모든 그림책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림책 수업을 할 때마다 ‘인생 그림책’으로 꼽는 단 한 권의 책이 있다. 바로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리고 올가 토가르축이 글을 쓴 ‘잃어버린 영혼’이다.
몇 년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우연히 처음 만났다. 직장 일을 마치고 마음 한구석이 공허했던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이어서 지금보다 서점 곳곳에 의자와 소파가 많았다.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보다 적당히 앉아서 쉴 요량으로 별생각 없이 푹신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뒤편에 작은 책장이 있어 손을 뻗었을 때, 손끝에 운명처럼 닿은 책이었다.
나는 지금도 이 작품을 통해 그림책의 시적인 가능성을 처음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시적인 가능성’이라는 건 그때 느낀 전율을 뭉뚱그린 표현인데,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책이 가진 시간성 때문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야기는 일차적으로 글과 그림을 통해 묘사되지만, 책이라는 물질에 담긴 이후에는 독자가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발생하는 시간적인 감각을 통해 이야기가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때 책 구조가 이야기에 어떻게 가담하는지 직관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최초의 경험이었다.
책이 지닌 시간성을 기반으로, 특히 신선하게 다가온 점은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동시에 펼쳐 보여준다는 전략이었다. 이 책은 가장 일반적인 코덱스Codex 구조로 만들어졌다. 낱장을 이어 제본하는 방식 특성상 가운데 접지선이 생긴다. 너무 당연한 사실 같지만, ‘잃어버린 영혼’의 저자는 바로 이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나란히 놓인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에서 같은 시간대지만 서로 다른 공간을 보여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접지선 역할도 다채로워졌다. 전반부에서는 영혼과 육체의 단절을 상징하는 선이었지만, 후반부에 이르면 두 존재가 다시 만나는 전환점으로 기능한다.
위에서 얘기한 내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코덱스 구조의 책은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를 동시에 펼쳐서 본다.
1-1) 왼쪽과 오른쪽 페이지는 하나의 장면이 될 수도, 분리된 두 개 이상의 장면이 될 수도 있다.
2) 책 접지선은 오른쪽과 왼쪽 페이지를 분리하거나 잇는다.
2-1) 한 권의 그림책에서 두 가지 기능을 같이 쓰면 극적인 효과를 살릴 수 있다.
3) 페이지를 넘기면 시간이 흐르거나 공간이 변한다.
3-1) 변화는 성장을 의미한다.
그림책을 단순히 ‘글과 그림이 있는 책’ 정도로 이해하는 것과 위의 사실들로 이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창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책 구조를 하나의 잠재력으로 보길 추천한다. 작가가 이야기에 어울리는 특별한 책 구조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위 책의 경우 작가가 특별한 장치를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기보다, 이미 주어진 물성을 최대한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활용도 충분히 가능하리란 가정을 하게 된다. 필요한 건 작가의 적극적인 해석과 더 많은 시도일 것이다.
그림책 읽기 활동이나 수업을 하는 강사 혹은 선생님들은 그림책의 시각적인 부분에 관해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잃어버린 영혼’ 내용을 요약한다면 ‘영혼을 잃어버린 육체가 기다림 끝에 영혼을 만난다’ 정도가 되겠지만, 두 주인공의 기다림과 다가감이 그림책에서 시각적으로 구현되는 방법은 직접 봐야만 경험*할 수 있는 종류다. 요약문은 그림책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자명하다.
책의 물성은 이야기에 관여한다. 어쩌면 이야기 자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왕 그림책을 만들 거라면 책의 구조와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그림책을 볼 때도 물성과 이야기의 관계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이론이라기보다는 의견에 가깝지만, 그림책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이런 관점이 더 자주 드러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첫 번째 기준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조금 더 살펴보고자 한다.
*본다는 것은 하나의 경험이자 사건이다. 나는 사건의 정의를 ‘겪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이라 알고 있다. 실제로 이 그림책을 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장을 관두고, 그림책 학교로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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