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 칼럼]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에 이어
[문화매거진=유정 작가] 우습게도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줄 알고 말문을 열었던 이전의 칼럼에서 엉뚱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아직 그 방법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지금처럼 지내다 보면 어느 날 그것이 뚜렷해지겠지만 그래도 다시 따져보고 싶다.
유정의 최근 지각이다. 올 하반기, 소작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지금 유정이 혼란스러워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다. 컬러도 모양도 정돈할 의지를 갖지 않고 붓이 가는 대로 낙서한 것에 가까움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어찌 보면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지-라고 일찍이 묻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안 되는 정리는 치우고 그 낙서할 수 있는 대로 해봐-라고.
세계를 지각한다라. 다시 나열해보자.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01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결국 ‘지각’이라는 것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다. 세계를 특별히 이해한다고 해서 예술가가 되고, 세계를 특별히 바라보지 못한다고 해서 보통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의식하든 하지 않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느끼고 이해하며 하루를 살아낸다.
예를 들어 같은 아침 햇살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날씨를 먼저 떠올리고, 어떤 사람은 일정표를 떠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어젯밤의 감정을 떠올린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리듬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각은 특별한 훈련의 결과라기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무늬가 자연스럽게 몸에 밴 자취다.
02 살아가고 있는 나의 루틴
루틴 또한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아침에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정돈하고, 누군가는 출근길 이어폰 속 음악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반복되는 행동이야말로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대하는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다. 루틴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맺는 관계의 방식이다.
03 내가 공동체 속에서 지내는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공동체 속에서의 가치관 역시 ‘지각’의 일부다. 누군가는 배려를 우선하고, 누군가는 경계와 단호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이에게는 자유가 가장 소중하고, 어떤 이에게는 안전과 질서가 그렇다. 이런 가치관은 우리가 세계를 어쩧게 보느냐를 결정한다.
04 내가 한 사람으로서 구분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이유’. 이 질문에 답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각의 본질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떤 순간에 기뻐하고 불편해하는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지-이 모든 것이 바로 나만의 지각이다.
즉, 세계를 지각한다는 것은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아주 작은 행동, 사소한 선택, 매일의 호흡 속에 이미 존재하는 일이다. 예술가가 세계를 캔버스에 기록하듯, 대부분의 사람도 자신의 세계를 일상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만 표현의 도구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표정과 말투로, 누군가는 행동과 선택으로 자신의 세계를 남긴다.
작업노트에 쓰는 말이 있다. “반복, 반복의 위대함을 좋아한다.”라고 말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유정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법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반복되는 모양새’를 ‘반복하여 기록’하는 것이었다.
세계는 거창한 어느 날에 깨닫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되짚고, 반복하고, 다시 바라보는 그 작은 방식 속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었다. 이러저러하게 세계를 지각하며 살아가고 있다면- 하는 질문속에서 말이다. 하여.
당신은 어떠한가? 오늘 당신의 세계에서는 무엇이, 어떤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는가?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