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N] 핵전쟁 이후 베로나에서 되살아난 사랑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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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N] 핵전쟁 이후 베로나에서 되살아난 사랑의 감각

뉴스컬처 2025-11-27 16:28:40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셰익스피어의 대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2025년 겨울, 완전히 새로운 미학으로 관객을 찾아온다.

오는 12월 12일부터 공연되는 연극 ‘줄리엣’은 고전과 동시대 사이의 간극을 과감히 뛰어넘으며, 오래된 서사를 근미래 디스토피아의 감각으로 재창조한다. 

사진=연극 '줄리엣' 포스터
사진=연극 '줄리엣' 포스터

이번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는 배경을 근미래 핵전쟁 이후의 폐허로 재구축해 ‘베로나’를 새로운 신화적 공간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오래된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스산하게 썩어가는 도시, 그리고 규율과 억압 속에서 감각을 잃어버린 채 생존만을 이어가던 줄리엣. 이러한 설정은 고전 속 비극적 사랑을 전혀 다른 톤으로 재조명하며, 인물들의 감정이 극한의 환경에서 어떻게 변주되는지 탐구한다.

줄리엣의 변화는 이번 재창작의 중심에 있다. 기존 줄리엣이 금지된 사랑의 희생자이자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면, ‘줄리엣’은 그녀를 억압적 세계에 맞서는 주체적 인물로 그려낸다. 시인을 꿈꾸는 로미오를 만나며 잊혀졌던 감각과 생명력을 되찾는 과정은, 사랑을 통해 자아를 회복하는 여정으로 그려진다. 이는 ‘금기를 뛰어넘는 사랑’이라는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랑이 개인의 실존을 되찾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질문한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가 극 중 대사로 활용된 점도 이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폐허 속에서 울려 퍼지는 고전의 언어는 디스토피아적 풍경과 묘하게 충돌하며 독특한 감성을 자아낸다. 말의 아름다움이 감각의 부재를 상쇄하고, 언어가 인물의 생존 욕구로 확장되는 순간들은 관객에게 새로운 연극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는 고전 언어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동시에, 무대 언어의 가능성을 넓힌다.

창작진의 조합도 탄탄하다. 2024년 국립극단 희곡공모 대상 수상자인 김주희 작가가 동시대적 감각으로 대본을 재창작했고, 작품의 연출은 예란희가 이끄는 저스트키즈스튜디오가 맡았다. 패티 스미스의 예술세계에서 영감을 받은 이 단체는 특정 장르에 머무르지 않는 실험적 시도를 추구하며, 그 움직임은 ‘줄리엣’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장르적 경계를 넘나드는 연극적 언어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사진=연극 '줄리엣' 캐스팅
사진=연극 '줄리엣' 캐스팅

출연진의 조합 또한 작품의 기대감을 높인다. 신윤지가 줄리엣 역을 맡아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선을 펼치며, 로미오 역은 연극 ‘벚꽃동산’ 해외투어로 주목받은 이주원이 맡는다. 김원정, 남수현, 박현숙, 조윤정, 김유남, 이경우 등 총 9명의 배우가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며 디스토피아 베로나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구성한다. 원작의 인물과 구조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의지가 배우들의 움직임과 서사 속에서 유기적으로 드러난다.

무대 공간 역시 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아리고개 구름다리 아래 위치한 미아리고개예술극장의 원통형 구조와 독특한 외벽은, 핵전쟁의 위기감이 감도는 도시라는 설정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김혜지 디자이너가 맡은 무대와 소품은 미니멀하면서도 강렬한 디스토피아적 미학을 구축하며, 조명과 음악, 배우의 움직임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특히 채석진 음악감독과의 협업은 서사적 밀도를 높이며 감정의 결을 섬세하게 다듬는다.

결국 ‘줄리엣’은 고전을 현재의 시선으로 재탐색하며, 현대 사회의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사랑이 인간에게 회복과 생명력을 제공하는 힘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완성된다. 절망과 위험 속에서도 서로를 통해 살아가는 존재의 가능성을 관객에게 선명하게 전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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