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김연정 작가] 얼마 전, 합정에 위치한 서점 비플랫폼에 아트북 페어 참가를 위한 책들을 택배로 부쳤다. 한밤중에 책을 박스에 담아 포장하고 택배 예약접수를 마친 뒤 소파에 앉자 차분한 희열과 안도감이 샤워 부스의 수증기처럼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예측했던 마감 일정보다 훨씬 늦어졌지만 그래도 별탈 없이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책을 완성하는 일, 전시와 아티스트 토크를 준비하는 일, 그리고 페어를 위한 책을 만드는 일까지 모두. 이제 며칠 후면 아기가 태어나기 때문에 당분간은 작업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긴 산책길처럼 펼쳐볼 수 있는 ‘Trees Outside the Room’은 몇 년 동안 산책길에 모은 나무들의 사진을 리소프린트로 인쇄해 만든 플래그북 형식의 아트북이다. 일산에 사는 동안 나는 집 앞 호수공원을 자주 산책했다. 고립감에 파묻혀 있던 시기에 아름다운 호수공원을 걷는 일은 일상을 버티게 해주는 작은 위로였다. 특히 길을 따라 서 있는 나무들은 상상할 수 있는 모습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지를 뻗고 있었는데, 그 비정형의 가지들이 겹쳐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가지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빗방울이 만든 파동처럼 하늘을 초록으로 일렁이게 하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일은 잔잔한 행복이었다.
나는 이따금씩 산책길에서 나무와 호수를 휴대폰으로 찍어 왔는데, 몇 년이 지나고 보니 1000여장의 사진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가볍게 마무리하자는 처음의 취지와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작업은 점점 무거워졌고 지난해졌다.
그런 가운데 2025년이 되었고, 연초에는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맞닥뜨려야 했다. 불행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고 한다. 불과 몇 달 전 결혼을 하고 새출발을 다짐하며 맞이한 신년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어떤 준비도 없이 영원한 이별을 이런 방식으로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영영 불가능해 보였다.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 자체를 유지하는 것마저 버겁게 느껴졌다.
그 이후 임신을 계획한 일, 지난해부터 이어오던 작업을 마무리하기로 한 결정은 비장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더는 자녀의 자리에서만 머무르고 싶지 않았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할 수 있도록 생명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철저히 이기적인 욕망이었다.
반면, 나무의 사진들로 책을 만드는 일을 마저 하기로 한 건 전혀 다른 결이었다. 뜨거운 열정도, 작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선택도 아니었다. 그것은 거의 기계적으로 몸을 떼어낸 채 움직이는, 유체이탈에 가까운 행동지침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 올린 욕심과 애정의 무게는 어느 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졌고, 먼지 털 듯 훌훌 날려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마음이라면 모두 놓아버리면 될 것을, 나는 왜 굳이 이 작업을 올해에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던 걸까. 하고 싶은 마음도, 열정도 사라졌지만 그것마저 놓아버린다면, 지금보다 더 깊은 곳으로 영영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온종일 빛이 들지 않는 공간에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아래로 계속 가라앉는 삶을 이어 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그래서 비플랫폼에서 올해도 아티스트랩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여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다가 결국 좌절과 슬픔의 늪에 빠져 죽을지도 모르겠으니, 제발 멱살을 잡고 저좀 끌어올려 주세요’ 하는 마음으로. 마음 한가득 슬픔을 품은 채,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를 돌봐야 했던 동생의 일상의 버거움이 내게도 필요했으므로.
나는 아티스트랩에 봄 무렵부터 참여했지만, 여름이 지나기까지는 책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었다. 엄마의 장례식은 3일만에 끝났지만, 그 뒤로 이어진 각종 보험 처리와 상속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는 6개월이 걸렸다. 임신 중에 찾아온 문제들까지 겹치면서 한동안은 작업을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아니었다.
전시는 9월 24일부터 10월 12일까지, 추석 연휴를 끼고 진행되었다. 나는 8월이 되어서야 비로소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전시 오픈 직전까지 정신없이 마무리를 이어갔다.
전시 기간 중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진행한 아티스트 토크를 끝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자랑스러움과 뿌듯함, 다독임 같은 감정을 한꺼번에 느꼈다. 이전 작업을 마무리했을 때와는 결이 다른, 조금 더 따뜻하고 다정한 온기를 가진 마음이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사랑하는가.
가족을 사랑한다고-즉, 사람을 사랑한다고-확신할 수는 있지만, 작업을 사랑한다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머뭇거림 없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림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작업자의 삶을 이어가기를 분명 바라는데도, 이것이 곧 ‘사랑’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작업하는 시간은 몰입의 순간이지만, 행복하고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고통스러운 시간이 훨씬 많고, 고생 끝에 찾아오는 뜨거운 눈물이나 괴로움 끝의 도파민 같은 순간도 내게는 거의 없었다. 마무리한 순간 느껴지는 건 늘 침착하고 담담한 마음에 가까웠다.
드디어 끝났구나.
가장 솔직한 마음은 그것이었다. 이런 마음을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번 전시를 지나며 나는 조금씩 다른 결론에 닿았다.
나는 창작하는 일을 사랑한다. 작업하지 않는 고통에서 나를 구해준 것이 작업이었고, 무너진 일상과 좌절, 슬픔의 바닥에서 다시 정신없는 일상으로 복귀시켜준 것 역시 작업이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서서히 몰입으로 이끌어 준 이 일을, 이제는 내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일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런 것에 가까운 듯하다. 누군가를 뜨겁게 껴안듯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나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알아보는 것.
그리고 그 힘을 놓치지 않으려 묵묵히 다시 손을 뻗을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다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종종 슬퍼하고 좌절하면서도, 행복한 순간들도 있는 무난한 일상의 모습을 계속해서 그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일로 여전히 품고 있는 슬픔과는 별개로, 잃어버렸던 작업에 대한 욕망을 이 글을 쓰며 다시 발견한다.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대의나 자격을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를 구하는 방법으로서 작업하는 일을 사랑스럽게 여겨본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단단함을 떠올려본다.
정확히 3일 후면 엄마가 된다. 폭풍처럼 몰아쳐올 정신없는 나날을 잘 버텨봐야겠다. 곧 다가올 아빠의 생일에 축하 인사를 전하는 것, 그리고 몸을 잘 회복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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